내가 돌을 갓 지낸 무렵 , 나의 부모님은 각자의 길로 갈라 서게되었다.
고등학교 까지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내딛기까지 여러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그래서 내 꿈을 누가 물어보면 난 어서빨리 결혼해서
우리 집, 내 남편, 내 아이와 사는것이라고 대답했다..
외롭게 눈물지으며 지낸 지난날을 그렇게 보상받으리라 생각하면서..
내가 암환자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건 작년 겨울, 내 나이 28세..
하혈하는 것을 그저 평소 규칙적이지 못했던 월경 쯤으로 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오른쪽 허벅지만 부은 느낌이 들었고 오른쪽다리만 걸을때마다
쑤시고 당기는 듯한 느낌에 허리도 오른쪽만 계속 아파오는게 아닌가..
밤 낮으로 매일 찜질을 하고 파스를 붙히고 결국 안되겠다 싶어서
한의원 치료도 해보고 정형외과에서 CT도 찍어보았으나 별 이상은 찾기가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 속이 거북하고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임신 테스트기 두줄. 예감이 맞았다. 병원 검진결과 10주를 넘긴 것이다..
아이심장소리를 듣고 초음파 사진을 받아들고 병원을 나설때 나는 처음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남편은 나한테 표현은 안했지만 여기저기 임신소식을 전하는 얼굴을 보니 입이 귀에걸린듯 했다..
그런데 자꾸 날이 갈수록 나는 밤잠을 설치며 다리 통증을 호소했다..
내 다리를 주물러가며 족욕까지 시켜가던 남편도 같이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근처 산부인과를 찾는 일이 잦았다. 배가 개월수 보다 너무 나왔고 너무 당기는 느낌이 든다고
아프다고 말하는 나에게 의사는 그저 개월수도 얼마 안된 산모가 엄살을 부린다는 듯한 표정만
지으며 아무 말이 없었다. 유통기한이 며칠 지난 과자를 먹고 며칠을 입원을 했는데
퇴근하고 병원을 찾은 남편이 내얼굴을 보며 깜짝 놀랐다.
"얼굴이 왜그래?"
-모르겠어.. 어제부터 오른쪽 얼굴이 퉁퉁 붓고 다리도 너무 무겁고 아파.. 손도 저리고.
나.. 볼일도 못보고 미치겠어 배가 너무아파. 소변도 잘 안나오는것 같아..
그랬다. 나는 한달새에 몸무게가 10키로가 넘게 불었고 소변을 볼때마다 뭔가가 막혀서 나오지 않는 듯한 느낌만 받았다.
밤새 잠을 설쳐가며 통증을 호소해도 병원에선 임신중이라 진통제를 함부로 쓸수 없다는 말만했다.
3일입원 동안 하루에 수액을 3개씩 맞아가다 그냥 퇴원을 했다..
퇴원을 하고 집에온날, 걸을때마다 다리가 저렸고 배는 계속 아팠다.
결국 뒷날 다시 병원을 찾았을때 검진도중 하혈을 했다.
신장쪽에 문제가 있는듯 하다고 큰 병원을 가보라고 한다..
서둘러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여러 검사를 하다보니 초저녁에 입원했는데 다음날 새벽이되었다.
입원을 해야된다고 해서 병실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남편은 의자에서 쪽잠을 자고 자다 깨다를 반복했고 나는 그때까지도 무슨일이 닥칠지 모른채
배를 쓰다듬으며 뱃속 아이에게 괜찮을거다.. 엄마가 지켜주겠다고 말을 했다.
검사 결과, 자궁경부암 3기 말 이라고 한다.
암세포가 양쪽 요관을 막고 있어 대, 소변도 제대로 해결 못하고 순환조차 되지않아
다리가 부은것이다.. 골반에도 이미 다 퍼져있다고 했다.
아이는 포기해야 할것 같다고 지금 이 상태로는 3개월도 넘기기 힘들다 했는데
그 순간 내 머릿속은 멍 해졌고 아무 말도 귀에 들리지 않는듯 했다.
걷지도, 눕지도 못하는 통증에 모르핀을 맞아가며 잠이들었고
밤마다 병실에서 소리없이 혼자 울었다.. 뱃속 아이는 이제 손발 생겨가며 심장이 쿵쾅 뛰던 그 모습이
자꾸 생각이나고 미안했다.. 수술조차 할수 없다고 항암, 방사선으로 치료하면 자연유산이 될꺼라 했다.
치료도중 아이 상태를 확인한다고 초음파를 했다.
화면을 보지않겠다 생각하면서도 내 눈은 이미 화면을 향해 있었다..
아이는 여전히 심장이 뛰고 움직이고 있었다. 손 발이 움직이던 그 모습이 마치 고통스러워서
몸부림 치는것 같아 너무나 슬펐다.마치 내가 죄인이 된 것 같았다.. 나 살자고 그런 고통을 주는것만 같아서..
두달가까이 입원하면서 남편이 내옆을 지켰다.
내 수발 들어가며 좁고 추운 보조 침대에서 두 다리도 제대로 펴지못한채 잠을자고,
끼니마다 라면에 병원에서 나온 내 밥을 나눠가며 먹었다.
면역력이 떨어졌다하여 외출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눈이 하염없이 내리던 바깥으로 너무나 나가고 싶었다.
두 달여간 입원하며 치료를 받고 퇴원할때 이미 달력은 또 크게 한장 넘어가 해가 바뀌어있었다.
뱃 속 아이는 그렇게 자연유산이 되었고 자연적으로 나오기만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과에선 치료가 끝났으니 퇴원처방을 했고 산부인과에서는 아직 뱃속에 남은 사산아 때문에
위험하다 하여 계속 퇴원을 미뤘으나 너무 힘들어하는 나 때문에 긴급한 상황이 되면 재빨리 병원으로
오겠다고 하고 그렇게 집에 올 수 있었다.
그렇게 퇴원한지 열흘 쯤 되었을 무렵, 남편을따라간 지방에서 근처에 하루 묵을 숙소를 잡고
배가아파 화장실을 갔다가 거기서 사산된 아이가 나와버렸다.. 비닐 봉투를 가져다 담고
남편에겐 충격받을까봐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하면서 병원을 갔다..
그렇게 또 며칠을 입원했다 나왔다.
며칠 후 남편과 함께 나는 시어머님의 산소를 찾아갔다.
눈이 하얗게 쌓인 그 산소 옆에서 미리 준비해간 배냇저고리를 태우며
세상 빛도 보지못하고 먼저 보낸 그 아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3개월을 넘기기 힘들다고 한 나는 지금 비록 재발이 되어 다시 항암 치료를 받고 있지만,
첫 진단을 받았을때 걷지도 못하고 양말 한쪽도제대로 신기 힘들던 그때에 비하면
사람이 된것 같다. 내가 아픈 걸 그 아이가 대신 가져간것만 같다..
아이가 찾아옴 으로 인해 나는 암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남편은 끝까지 내 손을 놓지 않았다.
다시는 아이를 가질수 없을 지도 모르는데.. 젊은 나이에 암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병원을 얼마나 다녀야 할 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내 옆에 계속 있겠단다..
항암으로 다 빠져버린 내 머리도 쓰다듬어준다. 거울을 보며 속상해 하는 나한테도
치료 끝나면 다시 날꺼라고 신경쓰지 말라고 한다.. 머리빠진 모습도 예쁘다고 해주는 그런사람..
그런 남편을 보면서 나는 꼭 이겨내겠노라 마음 먹었다.
내가 아프다고 누워버리면 한끼 대충 라면으로 떼워버릴 테니까 밥은 꼭 해줘야지 하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말 하기보다 힘을내서 이기겠단 의지를 보여줘야 할 것 같아서..
''여보, 당신은 내 은인이야.
만약 내가 혼자 였다면 이렇게 참아내기도 힘들고 밝게 지내지도 못했을꺼야..
나 꼭 이겨 낼께. 그동안 고생한 당신 노력 헛되지 않게 할께.. 끝까지 우리 손 놓지말자. 고맙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