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에서 처음 백일장 이벤트를 봤을때..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않하는데 김치국을 마시듯
장원해도 상품 받을 수 없겠네 .. 하며 쓸 생각도 안했다
하지만 오늘 거래처 세미나 설명 보조원으로 요청을 받아
전시장으로 끌려 왔다
한국은 추석 다음날이라 느긋한 하루를 보낼텐데..
하며 멍하니 앉아 있다가 특별히 부스에 들리는 손님도 없는
지루한 시간을 달랠겸 가지고 온 노트북으로
세상과의 동행이라는 생각에 과거의 나를 생각 하며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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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간혹 나이드신분을 만나 살아온 얘기를 듣노라면
내가 살아온 얘기를 하자면 책한권으로 모자란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나도 긴 인생을 살아 온것은 아니지만 남과는 참 다른 인생을 살아 온듯 하다
그렇다고 풍요로운 삶을 산것도 아니고 특별한 삶을 산것도 아닌
시간에 쫓기어 무척 바쁜 생활을 살아 온것 같다.
해야 할일....... 가족의 하고 싶다는 일들을
다음에.... 좀더 나아 지면.... 이라는
변명으로 일축하며 여유가 없는 삶을 살아 온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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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이른 아침 졸린 눈을 떼고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어제 알바 끝나고 바로 잠들지 못한 것이 영향이 큰것 같다.
일본어 학교에 도착 했지만 역시 10분지각...
지각에 대해서는 꽤 엄격한 오이카와 선생 수업인 것이 맘에 걸린다
슬그머니 교실문을 열고 뒷자리에 앉았더니
교단에 선생님은 있는데 아직 수업을 시작 하지 않고 아이들과 테레비를 보고 있다.
테레비에서는 재난 영화인지 다큐멘터리인지
고속도로가 엿가락 같이 휘어 있고 집이 무너져 있으며 불이난듯한
외계인의 침공을 맞이한 듯한 광경이이다..
알아 듣지 못하는 선생의 얘기 속에 사전을 뒤적이며 겨우
알게된 내용은 저 아랫지방 오사까 쪽에 큰 지진이 났다한다.
내가 있는곳은 동북 지방의 센다이라. 꽤 먼거리여서 그런지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일처럼 보인다.(모 사실 남의 나라지만)
수업을 끝나고 집에 돌아와 보니
큰누나가 뉴스를 보고 수십번 전화한듯 하다
거리가 멀어서 여기는 아무 피해 없다고 설명해주고서야
누나가 안심한듯 전화를 끊는다.
하긴 한국에서 오사카나 센다이가 어디 붙어 있는지 알겠어...
막내동생이 유학한다고 한국을 떠나 처음 걱정을 끼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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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72년 1월 2남2녀의 집에 막내로 태어났다
맨위의 큰누님과는 16살 차이가 나고 작은 누님과는 14살 형님과는 12살차이의
태어나서 3살까지 땅에 발붙여 본적이 없다는 늦동이 막내로 태어났다.
유년 소년기는 어렵지 않은 집안 살림에 나름대로 별탈 없이 살아 왔지만
고등학교 3학년때 아버지가 돌아 가시고
그후 3년후 어머니가 당뇨로 돌아가신후 삶은 많이 바뀌었다
형 밑에서 생활중 독립하고자 하는 생각에 1994년 10월 만 22살의 나이로
처음 일본 동북지방의 센다이란곳에 유학을 왔다
알바와 생활의 바쁜 와중에 한신 대지진을 겪었다. 아니 들었다
(발생지와 먼 거리에 있었지만 한국의 가족이 알길은 없었다)
그후 1년여의 유학생활을 거쳐 유학 2년째부터 IT기업에 취업을 하여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 하였고 매일 같은 생활과 업무에 싫증을 느낀나는
일본 생활 5년만에 일본 생활을 정리 하게 되었구
1999년 11월 미국 뉴욕으로 향했다
특별히 목적은 없었다 ..
그냥 미국에서 살아볼까 한 것뿐
ESL을 다니며 바로 취직할 회사를 찾아 영주권을 신청하고 기다릴때였다
맨하탄의 어학교에서 1교시 수업이 끝났을때 선생님이 놀란 얼굴로
교실에 들어와 테러가 일어 났으니 집에 돌아 가라한다
미국에서 테러야 모 가끔 일어 나니 별다른 생각 없이
오후 회사를 출근 하기 위해 지하철 역으로 가니 전차가 올 스톱이다
버스도 올스톱이다. 먼가 이상하다 생각 하고 테레비를 보니
저기 다운타운 쪽에서 연기가 나고 난리다
그때서야 보통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 하게 되었다.
,
여러분이 다 아는 911.. 그때 맨하탄에 있었던 거였다
그때만 해도 비행기가 5대 하이젝킹 되어서
그중 2대가 월드 트레이드 센터, 한대가 펜타곤
나머지 2대가 아직 하늘에 있다고 이야기가 난무 하고 있었다.
내가 있던곳은 34스트릿 코리아 스트릿 이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옆이었다
타겟으로 명분이 충분한 곳...
서둘러 업타운쪽으로 몇천 명의 사람과 같이 걸어서 피난 하여
호텔을 잡고 테레비를 보니 재난 영화의 한장면이 연출 되고 있었다
이전 뉴욕의 버스 테러 영화를 본 기억이 있는데
영화의 스케일을 10배정도 넘어 서는 영화 같은 현실이었다
옴짝 달짝 못하는 상황이 지속 되다가 오후 4시정도가 되서야
맨하탄에서 나가는 버스만 운행 한다는 방송을 보고
서둘러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 왔다
그떼 집에 자동 응답기에 저장되어있는 큰누나 작은누나 형의 녹음이 30개 이상...
막내동생이 한국을 떠나 두번째 걱정을 끼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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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니던 회사도 어려워지고 . 그때만 해도 전쟁이 난다..
화학 폭탄등의 얘기가 떠돌던 어지러운 상황이 지속 되었다
미국주류 사회에 들어 가지 못하고
한국 회사에서의 생활에 만족 하지 못하던 나에게 영주권이고 모고
다 포기 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결국 2001년 10월 2년여의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 왔다
그후 한국의 회사에 들어가 2년정도 회사 생활을 했지만
한국 IT회사 특유의 생활에 적응 못한 나는
다시 2004년 10월 일본에서 평생 살것을 결정 하고 일본행을 선택 하였다
일본에서 착실히 회사 생활을 하다가
2005년 9월에는 한국의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결혼하고
2006년 11월에는 지금의 아들을 낳았다
이제야 긴 방황의 생활을 정리하고 내 가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후로는 평화로운 회사 생활... 아니 책임질 사람들이 생겼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바쁜 생활을 보내던중 ...
2011년 3월 11일
늦은 점심을 먹고 직장 동료와 커피를 한잔 하고 있을때
이때 까지 겪어보지 못한 땅의 흔들림을 느꼈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것이다 ..
막내동생이 한국을 떠나 세번째 걱정을 끼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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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만으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후쿠시마 원자로의 멜트다운... 방사능의 유출...
결국 아이의 건강을 염려해 아내와 아이는 친정으로
돌아가 한국에서 생활 하기로 했다
생계를 위해 난 혼자 남아 직장 생활을 하기로 했다.
작은 회사의 매니져란 위치때문에
3-4인의 역량을 발휘 하지 않으면 않되는 상황....
매일 같은 잔업 철야에 바쁜 생활,술 마시고 담배 피고 몸관리를 않하는 생활습관때문에
당뇨와 단백뇨가 나오는 자가면역 이상의 막성신염이라는 병을 얻게 되었다.
더이상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견지지 못해
전직을 결심하고 회사를 옮기기로 했다.
어찌어찌하여 한국서 따로 살던 와이프와 아들도 년말에 돌아 오고
150명 규모의 중기업의 경력사원으로 입사하였다.
전직후 인정 받기 위해 철야는 없어 졌어도 10시까지의 잔업은 계속 되었다.
매일 같이 바쁜 일과..정신없이 살아가던 생활....
그러던중 2013년 1월 총무부에서 호출이 있었다.
전직한 회사에서는 건강 검진은 필수이므로
작년에 받지 않은 건강 검진을 받고 오라는 명령이었다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바쁜 일정인 관계로 다음으로 미루겠다 했지만
회사 룰이라는 말에 결국 유급 휴가을 써서 건강 검진을 받기로 했다.
(지금 생각 하면 하나님이 도우신듯 하다)
검사당일 오전중에 검사를 빨리 마치고
빨리 집에 들어가 밀린 잠이나 자야겠다 생각 하며
집에 가려는 순간에 이름이 호명되며
의사 개별 면담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발륨 마시고찍은 뢴트겐 사진을 주며 위에 병변이 보이니
집 근처 병원에서 내시경 검사등 정밀 검사를 해보란다...
조끔 걱정은 되지만 모 별일있겠어 하고
그날은 집근처 중규모의 병원에 가서 내시경 얘약을 하고 돌아 왔다.
돌아온 검사일 왠지 기분 나쁜 예감이 들어
와이프랑 같이 가서 받은 검사...
의사는 한눈에 알아 봤는지 위암 같다는 소견과 함께
정확한것은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면 알려주겠지만
초기는 아닌것 같다며 스트레이트로 선고를 한다.
영화 같은데 보면 암이면 가족만 불러 알려준다던지 하던데..
멍한 기분에 오후 출근을 하였다...
그후의 흐름은 모든이들이 겪는 흐름과 별반 다를것이 없다
조직 검사결과 위암이란 진단을 받고
일본 유명병원을 알아보던중 첫진찰 대기가 2-3주후
수술까지는 1-2달이 걸린다는 얘기를 접하고
걱정을 하던중 ....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첫진료 받았던 병원에서 동창이 있는 병원이라고
동경대 병원을 소개 받고 바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결국 한국에 있는 친지들에게 알리게 되었다.
막내동생이 한국을 떠나 네번째 걱정을 끼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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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는 모든이 들이 겪어온 길을 걸어 왔다
2013년 2월4일 건강 검진.. 3월 14일 수술
수술후 조직 검사 결과 근육층 침습(T2) 림파절 73개중 1개 전이(N1)
최종진단 T2N1으로 2A기 1년간의 TS-1의 항암 예약
현재 4차까지 진행중인 항암은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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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암이라는 임팩트에서 오는 정신적 충격 스트레 개복 수술후의 통증...
조직 검사 결과 인환세포 암이란 것에 대한 재발의 걱정...우울증....
한동안은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고
매일 같이 인터넷으로 검색 하며 불안해 하는 날들의 연속 이었다.
이러다 암보다 먼저 스트레스로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아직도 완전히 벗어 난것은 아니지만
이젠 하나님께 모든것을 맡기고 내려 놓을수 있게 되었다.
이제 모든 걱정과 불안을 떨쳐버리려 노력 하지 않고 담담히 동행 하기로 ....
주님께서 부르시면 따라 가리라.생각 하며..
모든것을 맡기니 맘은 조금 가벼워졌고
주위를 둘러 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정신 없이 살아온
많지 않은 41의 인생의 지나온 생활을 돌아 볼수 있게 되었다
암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울수 있게 되었고 놓을수 있게 되었다
말하고 싶어 졌다
삶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 아직 완전히 바뀌지는 않았지만
다음에... 여유가 되면.... 하며 미루어왔던
모든일을 조금씩 해나가야 겠다고 생각 했다.
왜 내가.... 가 아니라 늦지 않게 발견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릴수 있게 되었고
불치의 병 당뇨를 없애주시고 다시 신앙의 길로 돌아 오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 드릴수 있게 되었다.
위에 열거한 세계적인 사건속에서 살아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뜻을 찾아 볼수 있게 되었다
수술후 몸에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암..그 암 덕분에 생활이 바뀌어
누군가의 말 처럼 나는 암이 고맙다 라고 말하며 살수 있는 삶을 살게 되면 좋겠다..
년말에는 미루어 왔던 한국을 방문 해서 늘 걱정만 끼쳤던
큰누나를 봐야겠다. 이제 걱정끼칠 일은 없이 잘 살아 가겠다고 안심 시켜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