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백일장>날 키워준 암

흰굶꽃굶
2013.09.21 15:00 | 조회 1.5k

2012년 4월 이제 막 찬 공기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봄꽃들이 대신한다.

이틀전 생리가 끝났는데도 아래가 뻐근하다 . 자리에 눕자니 가스가 마렵다. 힘을 줘본다. 힘이 들어가질 않는지 안나온다.

저녁엔 누워서 TV를 보고 있는데 배가 아래로 쏠린다. 이상하다. 손으로 구석구석 만져본다. 모로 누워도 보고 바로 누워도 본다. 배꼽밑으로 손바닥만한게 뭔가 잡힌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숙변이네, 혹이네 말이 시끄럽다. 퇴근하는 신랑을 보자마자 눕혀본다. 어라~ 신랑은 없다. 뭔가 쎄~하다. 운명처럼 알아본다는 느낌을 이녀석한테 느끼다니.

 

교회 제자훈련 첫 수업을 끝내고 커피마시러 가자는 약속을 뒤로했다. 이제 갓 입학한 아들이 오기전에 병원을 다녀와야했다.

"선생님, 배꼽밑에 뭔가가 잡혀요"

웃으시며 말씀하신다."뭔놈인지 한번 봐보죠. 뭐^^"

그리고 몇분후 인상좋으신 산부인과 샘은 웃질 않으신다. 대신 소견서를 써줄테니 큰 병원으로 가란 소릴 하신다.

"나쁜건가요?" 말씀이 없으시다.

"암인가요?" 그제서야 입을 떼시며 확실하진 않지만 모양이 안좋고 혹이 너무 크다고 하신다.

다시한번 확인한다. "몇 프로인가요?" "......95%입니다...."

병원을 나와 신랑한테 전화를 건다. 얼른 아산병원으로 가야할거 같은데 빨리 진료를 봐야할거 같은데 아들이 태권도에 있는데 어떡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신랑이 집에가서 일단 기다리라고 말해준다.

고마웠다. 기다리라고 말해줘서... 그렇지 않았음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을거 같았다.

 

십분만에 신랑에게 전화가 온다. 4시안에 김ㅇㅇ교수님을 찾아가라고. 아들은 본인이 데리고 병원으로 갈테니 택시타고 무조건 4시안에 도착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한다. 핸드폰을 본다. 3시가 넘었다.

어떤 정신이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눈물도 두려움도 없다. 너무 큰 충격에 현실감이 없어졌다.

초음파를 찍고 내진을 하신다. 당장 내일 ct를 찍고 바로 주일에 입원해서 월요일에 수술 하자고 하신다. 혹이 난소에 두개. 그것도 사이즈가 너무 커서 위험하다고 제체할수없다고 하신다.

난소암이라니....외할머니가 25년전 난소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일년동안의 투병생활을 친정엄마가 고스란히 지키셨는데.

어릴적 이혼하고 오빠와 나를 버렸단 죄로 지금까지 우울증약을 한웅큼씩 드시는 엄마인데. 어릴때 못해준거 해주고 싶으셔서 지금도 일주일에 한번 반찬택배를 보내시는 엄마에게 내가 난소암에 걸렸단 사실을 어떻게 말할수 있을까...

시간이 없다. 정신이 없다.

아들은 이제 학교 입학한지 한달이 지났다.....

 

ct를 난생처름 찍는다. 흰 액체를 한통받아 물끄러미 쳐다보니 옆 아주머니가 말을 거신다.

"이거 처음 먹어봐요? 난 수십번도 더 먹었어요^^" 멀쩡해 보이신다. 지금 나처럼.

말을 섞다보니 췌장암 진단 3년이 지나셨단다. 지금도 일하며 씩씩하게 살고 계신다고 한다. 아직 암이 몸에 남아있지만 먹고 있는 항암제 덕분에 자라지도 않고 있다며 걱정말라고 위로해주신다.

3년을 넘기셨구나. 3년...나는 살수있을까..

부럽다. 저분의 3년의 시간들이. 지금의 담대함이. 나를 위로해주시는 먼저 매맞은 그분의 처지가. 너무 부러워서 눈물이 찔끔났다.

 

입원 전날. 전화를 건다.

"엄마, 뭐해?"

"팔다리가 맨날 아파서 오늘도 병원가서 주사 맞았는데 맨날 지랄이야. 소용도 없어"

"월요일에 바뻐?"

"ㅇㅇ네 집에 가서 뭐 좀 하기로 했는데. 왜?"

"일단 놀라지말고 들어" "........" "내가 몸에 혹이 있데. 그래서 월요일에 수술을 해야한데.."

뜨듯한 핸드폰 너머 너무나 참착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암이래?"

아무말도 못했다. 그렇게 이제껏 생각하지도 못한 그러나 또 지금까지와 별 다를바 없는 암과의 동행이 시작됐다.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안수기도를 받았다. 달걀을 먹으며 나의 입원일과 부활절의 상관관계를 맘대로 정해본다.

수술은 오전9시였다. 수술실에 들어간다는 말에 친정엄마와 친정오빠, 신랑이 배웅하며 손을 잡아준다. 아버님 돌아가실때에도 울지 않았다던 눈물샘 없는 울 신랑의 눈에서 쉼없이 눈물이 떨어진다. 에휴...닦아주며 위로해주고 싶지만 나나 신랑이나 그렇게 살가운 성격이 아닌지라 막 운다며 내가 큰소리로 놀려본다. 불쌍하다. 나보다... 저들이 더 불쌍하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드라마와는 사뭇 다르다. 수술실앞에서 30분 정도를 대기하는 것이다. 밖에서는 그것을 모르니 친정엄마의 통곡소리가 고스란히 들린다. 왠지 이 상황이 우스워 쿡쿡 혼자 웃어본다. 설렌다. 처음 느껴보는 두려움... 바보같은 뇌는 설레임으로 착각하나보다.

길다란 수술실 복도를 침대가 덜컹거리며 지나가니 진짜 드라마 주인공이 된다. 추억들의 파노라마가 펼쳐질거라 생각했던거와 달리 신랑에게 이 수술실의 무용담을 떠벌릴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수술 준비가 끝났다. 이름을 묻는다. 벌써 세번째 확인이다. 이름을 말해주니 마취가 될거란다. 시편 23편을 외운다. 2절정도 외운거 같은데... 마취 잘되는 몸뚱이에 다시 한번 감사.

 

수술은 3시간 정도 진행이 됐단다. 의사샘 말씀이 장기가 바르게 되어있어 수술하기가 쉬웠단다. 회복도 빠를거라 말씀하신다. 눈에 보이는건 다 제거했으나 조직검사결과 림프절 전이가 있음 3기 없음 2기말이란다. 결국은 난소암3기c라는 반갑지 않은 타이틀을 달아준다. 엄마는 계속 너가 이렇게 멀쩡한데 양성혹을 암이라고 잘못 진단한거 같다며 현실 부정을 한다. 나도 같이 맞장구 쳤어야 했는데.... 엄마에게 타박을 했다.(미안해..엄마.)

 

2012년 4월초의 수술부터 8월 중순 까지의 항암치료.

머리가 빠진다. 구역질을 한다. 아들 임신 내내 한 입덧이 이리 고마울 줄이야. 일주일의 구토 기간은 오히려 고맙다. 항암중에도 매일매일 등산을 갔다. 뜸을 뜬다. 먹지말라는 녹즙을 매일매일 먹는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 엄마들과 수다를 떨며 죽음에서 살아온 얘기, 종교 얘기, 웰빙과 웰다잉에 대해 얘기한다. 그러나 왈칵 아이의 작은 실수에 나의 본성을 드러낸다. 아이에게 몹쓸 얘기를 하며 아들보다 더 어린아이같이 통곡한다. 두려움인지 원망인지....

 

작년 8월의 항암 치료가 끝나고 벌써 일년이 지나갔다. 그동안 암관련 서적도 읽고 저명하신 통합의학 박사님께 진료도 받고 세미나와 암환자 요양시설에도 묵어봤다. 답을 찾아갔으나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라나 풀이과정을 찾을 수는 있었다.

암이 처음 왔을때는 너무 크고 거대하고 장황하고 대단해서 하나하나의 일까지 다 기억이 나고 그것들이 큰 의미를 줬다. 그러나 일년이 지나니 암은 아주 작은 존재로 내 삶의 한쪽 구탱이에 살고 있다.

 

암은 나에게 아주 큰 의미를 가르쳐주었다. 삶이 위대하다는거. 그것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삶이 정말 위대하다는거.

60평생을 함께 산 노년 부부의 삶이 정말 경이롭다는것을 알게 됐다.

지금 나는 예전과 다름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이제는 내삶의 문제는 오롯이 내 자신의 문제일 뿐이다. 남이 주는 영향은 아주 작은 티끌에 불과하다. 내 약함을 완전히 알아버리고 난후 난 예전보다 강해졌다.

내 삶의 끝에 외롭지 않게 같이 가고 있는 '암'이라는 녀석 덕분에 난 내삶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한남자의 부인, 한 아이의 엄마, 우리 부모님의 자녀로 살아가는게 그게 내 삶이며 그 삶이 아주 위대하다는 것을 나는 지금 뼈져리게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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