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TIJ] 기적을 품은 이야기 '놀이터 4'

이기자후후l대본
2021.02.02 11:17 | 조회 607

암 걸리고 가입한 카페, 감옥과 오버랩되다 (2020년 9월)

7월에 얼결에 대장암 수술을 하고 정말 아는게 하나도 없어서 헤메며 네이버 검색에 몰두 할때 많은 정보들이 '아름다운 동행(이하 '동행'이라 칭함)' 게시글에서 발췌되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뭐하는 곳인가 살짝 들여다보니 암환우들이 모이는 카페였다. 참고로 나는 카페를 만들었으면 만들었지 남이 만든 카페에 가입하는 성향이 아니다(끝까지 지 잘난 바가지다). 혹여 당시 남아도는 기운이 있었더라면 네이버에 떡하니 '더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카페를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나는 암선고를 받고 완전히 기는 푹 죽었고 자아도 바닥을 기고 있던 터라 감히 뭘 시작하는것은 엄두도 낼수 없었다. 암에대한 여러가지 경험과 정보가 필요했던 나는 곁눈질로 카페글들을 읽다가 2개월 후에 회원가입을 했다. 여러 사연들과 사정들을 읽고 살피며 동행에서 나는 두번째 감옥에 수감된듯한 묘한 유사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동행과 감옥은 평범한 일상과는 구별된 영역의 삶이다. 감옥에 갇힌 수감자들이 오직 사건과 재판에 대한 관심으로 일상을 채워간다면 동행의 환우들은 치병과 완치에 대한 생각으로 삶이 채워지는 특별구역에 살고있다. 어떤 면에서는 두 곳 모두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살게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만기출소와 완치후 각각 그곳을 떠나면 삶에 대한 고찰을 충분히 한 후 이전과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살게되는 가르침의 터전이기도 하다.

둘째, 동행과 감옥은 내 주변사람들을 아프게 하는곳이다. 감옥의 수감자들은 자신의 운신문제 뿐아니라 그들을 지켜보는 가족들의 아픔에 힘들어한다. 동행의 환우들 역시 우리로 인해 아프고 힘든 부모 형제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과 부담감이 곳곳에 표출되고 있었다. '우리 부모님이 나보다 먼저 돌아가시는것이 소원'이라는 말에 많은 이들이 공감의 댓글을 다는것, 이것만으로도 우리의 염려는 충분히 설명이 된다. 나아가 우리는 일생 일대의 고통을 겪으면서 나를위해 진정으로 아파하는 사람들은 가족뿐임을 깨닫게 되고 지금까지 허상의 인간관계들이 썰물처럼 밀려나가 정리되는 결과를 맛보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셋째, 어디를 가나 여러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있겠으나 감옥과 암이라는 두가지 큰 고통속에서 만난 사람들을 둘 로 분류하자면 희망을 향해 실행하는 사람들과 막연히 희망만 품는 사람들인것 같다. (아예 희망조차 갖지 않고 불만과 될대로 되라식의 사람들은 논외로 하기로 한다.)감옥에서도 억울하다며 자신의 사건은 한번 들여다 보지도 않은 채 밤낮으로 기도만 하며 좋은 결과를 꿈꾸는 사람들을 보았다. 나은 결과가 나올리 만무하다. 동행에서 보면 자신만의 소신과 계획을 가지고 주도면밀하게 치병하는 사람들의 글을 곳곳에서 볼수 있다. 암은 앎이라는 식상한 문구를 지독하게 실행해 나가는 사람들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이되고 멘토가 된다. 실행을 다짐한 사람들은 카페에 포스팅 하는 내용 자체가 벌써 운동화 끈 동여메고 뛰어나가기 직전의 태세다. 죄를 지은 사람이 열심히 노력한다고 무죄가 될수 없듯이 치병이라는 것도 의학적 상식을 마구잡이로 뛰어넘는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지은 죄 이상의 형벌을 받는것은 공정이 아니듯, 내 병기에서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실행방법에 사활을 걸지 않는다면 그 또한 나 자신에 대한 배임행위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네째. 고통의 공간은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만날수 있는 곳임이 틀림없다. 이 땅에서 내가 가본곳 중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만난 곳이 감옥과 암투병이다 (물론 더 가까운 곳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감옥과 암중에 무엇이 더 고통스럽냐 묻는다면 단숨에 대답할수 없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수감자와 5년 완치 판정을 받은 암환자를 쉽게 비교할 수 없는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감옥이건 암이건 우리는 육체가 제한을 받고 정신이 나약해지며 나혼자만의 힘으로는 벗어날수 없는 엄청난 재앙에 직면했다는 것은 확실한 팩트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다면 그럼 변호사만 있으면 되는것인가, 의사만 만나면 내 병을 완치시켜 줄것인가. 두 직업 모두 우리를 도와줄수 있는, 말그대로 우리에게 돈을 받고 그들의 최선을 제공해주는 직업인들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완전함을 요구하지도 않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따지지도 않는다. 그만큼 우리 내면에는 이미 인간의 한계를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기적을 꿈꾼다. 기적을 만드는 것은 사람의 영역이 아님을 아는 우리는 고통중에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게 된다. 아니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일은 고통이 수반되지 않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아도 좋으니 이 고통만큼은 피하고 싶다면 아쉽게도 이러한 생각을 품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기적이 도달할 리 만무하다. 자 이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반드시 고통이 수반된다는 수학 공식이 성립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이 고통을 담대히 감사히 겸허히 받아들이겠노라 할만큼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우리에게 가장 중대한 가치로 자리잡고 있는가? 그렇다면 암은 우리에게 더이상 결과가 아닌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과정으로 지나가게 될 지도 모른다. 감옥에서의 수감생활이 내게 그러했다. 수감은 내게 형벌의 결과물이 아닌 하나님을 만나러가는 과정에 불과했다.

하나님의 개입이 시작된 재판 (2017년 3월)

나는 예전에 기독교인들은 참 쉽게 "하나님께서 다 하셨어"라는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강남 한복판 대형교회 비석에도 이런 취지의 문구가 적혀있는 것을 보았을때 나는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받아드리기는 커녕 강남 노른자땅에 대형 교회를 지어 올리고 스스로 머쓱하니 하나님 탓으로 돌린다는 느낌만 받았다. 그랬던 내가 이제 하나님께서 내 삶에 개입했노라는 고백을 하기에 이르렀다.

남부구치소에서 미친듯이 성경을 읽어나가고 눈만 뜨면 기도로 시작해 틈만나면 기도로 채워가는 내 일생에 전무했던 시간들을 보내면서 나는 꿈도 수없이 꾸고 수많은 환상을 보기도 했다. 물론 이것이 진짜 하나님의 응답이었는지 혼자 자다가 요강들고 배구했던 것인지는 증명할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귀에서 떠나지 않는 하나님의 음성 "그자가 한 짓을 기억하고 이용해라"는 내가 재판을 풀어가는데 핵심 열쇠가 되었다. 이 음성은 자다가 들은것도 졸다가 스친것도 아니고 백주대낮에 공판에 필요한 자료정리를 하던 가운데 들려온 음성이었다. 내가 이를 하나님의 음성이라 칭할 수 있는 이유는 내 머리로는 도출해 볼 생각도 안했던 단서이며 듣고도 단방에 알아듣지 못했으니 내 의지로 만들어 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자"라고 하면 고소인을 지칭한다고 인지가 되엇지만 그자가 한 짓을 기억하고 이용해라는 뜻은 당시에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이 문구만 몇일을 곱씹었다...그자를 그놈으로 자의적으로 바꾸어, 그놈이 한짓, 그놈이 한짓, 그놈이 한짓은 거짓말밖에 없는데....그 거짓말을 어떻게 기억하고 이용하지....

머리를 쥐어 짜듯 몇일을 고민하던 중, 순간 마치 시험보는 내앞에 정답지가 던져지는 것 같은 열쇠가 머리를 때렸다.

변호사가 공판시 고소인 증인신문을 위해 질문지를 작성하러 접견을 왔을때 나는 내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변호사님, 증거라고는 고소인 진술밖에 없어요. 그걸 탄핵해야 하는데 판사들이 제 사건만 보는 것도 아니고 고소인이 검찰조사와 1심때 했던 내용들을 판사들이 다 기억할수도 없어요. 고소인에게 증인신문할때 지금까지 고소인이 주장했던 거짓말에서 모든 질문지를 발췌해서 고소인이 그와 다른 대답을 하면 법원 스크린으로 미리 준비해간 고소인의 이전 진술 복사본을 그대로 프로젝트로 쏘아 올려서 판사앞에서 진술의 신빙성을 바로바로 탄핵해야되요. 고소인이 한 거짓말을 그대로 인용해서 이용해야 판사들도 고소인의 진술이 허위임을 알수 있어요" 내 변호사는 그 자리에서 그 방법을 수락했고 나는 편철된 검찰조사 자료 6권과 고소인 탄원서 50개등 고소인 진술을 담은 3천 여장의 복사본을 우편으로 받은 후 번복되고 있는 주요 진술 부분들을 가위로 오려 A4지에 일일이 풀로 붙여 분류하고 고소인 진술이 답이 되어야 하는 질문지들을 만들었다. 번복된 진술들에 대한 질문은 고소인이 어떤 답을 내어 놓아도 덫에 걸릴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 옆에서 같이 서류들을 가위로 오려주고 그 좁은 방에서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내 사건 자료들을 자기들 사물함 칸을 비워서 보관하게 해주며 억울함을 꼭 풀라고 응원해줬던 같은방 사람들이 여간 고마운게 아니다. 1번 미라언니는 항상 입버릇 처럼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야, 식구가 뭔지 알아? 밥 식자에 입 구자야. 이렇게 같이 앉아 밥먹으면 그게 식구야." 마음이 척박해서 그때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던 말이 이제와 새삼 가슴 뭉클해진다.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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