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밤새 뒤척인 이유. (긴 글. 지루합니다. 피해가셔도 좋아요.)

세
세헤라자데03
2023.01.31 17:10 | 조회 2.7k

​

과유불급.

요즘 내가 좀 넘쳤다. 인정한다.

알면서도. 가슴이 숯처럼 뜨겁고 아파서.

그 열기를 뱉어내지 않으면 너무나 괴로워서.

​

지난 밤. 잠을 설쳤다.

가장 숨기고 싶은 치부를 들킨 양

부끄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특정인을 겨냥할 의도는 절대 아니다.

그리고 조만간 나의 모든 흔적을 거두고

조용히 사라지리라 미리 말씀드린다.

​

세상에는 나쁜 사람도 많다.

허나 나의 지론은 선한 사람도 많다는 것.

선함을 알아봐주고 선하다 칭찬해주고

나도 선해지려고 노력하겠다는 것.

​

어제 어느 님께서 징징~이란 표현을 쓰셨다.

꼬집어 나를 또는 누구를 지칭한건 아니겠다.

근데 요즘 부쩍 징징~댔던 나는 화들짝 놀랐다.

​

또한 인터넷 효자라는 신조어를 처음 접했다.

일리 있다. 인터넷에서 말로만 나불거린다는..

그런 부류도 충분히 존재하겠지.

​

그래도 지금부터 반박 좀 해야겠다.

이 곳은 별스타그램이 아니다.

그 세상속은 모두 아름답고 부유하고 해피하다.

그런데 동행은 각종 정보를 공유하고

몹시 휘청이는 자에 따스한 위로를 나누며

지푸라기라도 부여잡고 싶은 이에게 희망을 준다.

​

나의 모친은 아주대 가셨다가 이 병을 받았다.

아주대 왈. 저희한테 맡기신다면 최선을 다하겠..

딴 데로 가신다면 전원 서류를..

무지했던 나는. 엥? 자신이 없나? 가라 하네?

​

동생과 나는 상의 후 집근처를 택했다.

그게 신세였다. 전화 상담을 했고 쌤을 배정받았다.

그 때 우리는 다급했으며 무식 무지했다.

​

잘하는 병원. 명의. 알아보지도 않고

긍정 남매 둘이서 신세 홈피 의사 이력을 보며

긴 시간 수술하려면 이 나잇대 쌤이 괜찮겠어.

세브인데 잘하실꺼야.

그리 믿었고 수술 결과는 좋았다.

​

내가 동행을 접한 건 수 년이 흘러 전이가 된 후.

어머니께 무엇을 더 하겠느냐?

이미 노쇠한 몸 더딘 전이를 바라며

수명대로 사시게 하겠느냐?

​

세상 살며 이렇게 처참한 질문은 처음이었다.

더구나 감히 이걸 내가?

더더구나 나의 엄마를 대상으로?

​

모든 가족의 조언을 들었고 추가 의견이 절실했다.

그러다 접한 곳이 동행이다.

이 곳에 와서 나는 진심 놀랬다.

의학 단어가 오가고. 결과지를 판독하고.

감히 입에 올리기 어려운 호스피스가 거론되더라.

​

나는 울엄마 항암제 이름만 겨우 아는데

조직검사 풀이도 겨우 어설프게 했는데..

이 곳은 다른 리그였다. 나의 무지가 부끄러웠다.

​

이쯤해서 인터넷 효자라는 말에 대해

나의 뜻을 피력해 보겠다.

누군가와 맞설 의도는 아님을 다시 밝혀둔다.

​

나는 인터넷 효자도 분명 효자라고 본다.

이 곳은 위에서 언급한 별스타그램이 아니기에..

동행이 출석 체크하고 마일리지 쌓아

쿠폰 받고 경품 받는 곳이 아니기에..

이 곳은 자발적으로 내 가족 지인의 건강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모여 있다.

​

물론 방식의 차이는 있다고 본다.

간호와 케어의 몰입도도 각자 다르다.

​

허나 안보고도 살 수 있다.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그렇게 눈 감고 사는 것이 훨씬 편하지요.

다 알고 외면하기란 인간이라면 괴로울테니..

​

그러니 아예 안하고 모르쇠 하는 부류보다

인터넷 헤엄치는 마음, 그것도 분명

효도이고 가족애이고 포괄적인 사랑이다.

​

자. 이제부터 내 이야기를 조금 더..

그리고 내가 왜 어젯밤 몹시 괴로웠는지도..

​

나는 우리 부모님의 주보호자이다.

잘난 남동생도 있고 동생도 효자 축에 들지만

그래도 동생에게 나는 "누나"이다.

내가 조금더 뛰면 공직에 있는 동생이

시간적 부담을 덜 수 있다.

이렇듯 나는 k장녀이길 자청했다.

​

엄마는 암 뿐 아니라 소아마비, 각종 수술도 하셨다.

그러나 우리집 골칫덩이는 정작 아버지였다.

아픈 엄마는 병원에서 어찌어찌 케어되는데

그 당시 주간보호 다니시던 아버지는

귀가 후 식사, 환복, 용변 도움이 막막했다.

​

나는 하는 수 없이 간병인을 썼다.

아침 출근 전에 병원가서 엄마 만나고

출근해서 일하며 죙일 촉각을 세워 통화하고

밤이면 수도권 아버지 집에 가서 살림하고 돌아왔다.

물론 우리집 살림도 있고 나도 가족이 있다.

​

자, 이런 내게 상주 간병 몇일 했는지?

총 간병중 네가 몇퍼나 했는지 묻겠는가?

내 하루가 상주 간병보다 퍽 쉬워 보이는가?

내가 한 곳에 매이면 다른 곳이 굴러갈 수 없기에

우리집은 이 길이 최선이었는데?

​

내가 다소 불편하게 비춰지는 이 글을 적음은

간병의 방식과 다양성은 각각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 이걸 왜? 누구에게? 인정받아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

가정 형편이 다르고 가족 구성원이 다르고

사는 지역이 다르고 병의 중증도가 다르고

만약 집안에 환자가 여럿이라면..

(갠적으로 이 부분이 젤 안타깝더라.)

그러니 간병 발언은 꽤 조심스러워야 한다.

​

그럼에도 나는 지난 밤 몹시 괴로웠다.

하도 막막한 날엔.. 그래. 한놈씩 와라~!!

내가 닥치는 순간마다 가장 급한 것부터

하나씩 무찔러주마~!! 하고 치열하게 살았지만

허망하게 내 엄마를 보내고 난 후

나는 휘청 정도가 아니라 붕괴될 지경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마지막을 대비하며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 노력했었다.

임종기에는 더이상 할 말이 남지 않을 정도..

말로, 문자로, 편지로, 스킨쉽으로 다 전하였다.

​

그럼에도 나는 후회한다.

상주 간병으로 모든 시간을 보내지 못했기에..

자녀 일이라면 뭐든 다 이해하셨던 내 어머니도

그땐 내리사랑 슬슬 회수하고 싶으셨을텐데..

눈 앞에 내 존재 자체가 분명 피난처였을텐데..

​

그건 빼박 완벽한 죄책감이다.

누가 나에게 너는 최선을 다했잖냐고 말해주셔도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만은 진정 죄인이다.

그걸 모르지 않는데 그걸 누군가 건드리니

그 밤 내가 두 다리 뻗고 잘 수는 없었지요.

​

이제 삼천포로 빠져 간병인 얘기를 풀어보려 한다.

세상은 다양한 꼴이다.

인간들도 각양각색이다.

무엇도 보편되다고 못하고

내가 본 세상이 절대적일 수도 없다.

​

나도 간병인의 폐해 잘 안다.

허나 내가 만난 간병인들은 모두 평점 이상이었다.

특히 호스피스 간병인은 나를 울렸다.

​

내가 상주보호자로 가면서 바톤터치 했더니

"선생님. 이모 소식 제게도 전해 주세요."

(나를 선생님이라 했다. 선생 아니라 했는데..)

"여사님. 그리 말씀하시니 연락드리겠습니다."

단 부담없이 오세요. 봉투 사절.

​

어머니 가시고 부고 문자를 보냈고

빠르게 이틀이 흘렀다. 간병인은 오지 않았다.

이튿날 밤. 방치했던 폰을 보니 난리가 났네.

중국 간병인이 한국 장례를 몰라 셋째날 온다고.

​

전화를 했다. "내일 일찍 떠납니다.

잊지 않고 연락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으로도 충분하니 마음만 받겠습니다."

​

여사님의 다급한 목소리.

"진짜 몰랐어요. 새벽이라도 가겠습니다."

시간이 너무 일러 안된다고 만류해도

기어코 시흥에서 택시타고 오시겠다고.

​

발인 날 아침.

짐싸느라 정신없는데 그녀가 들어선다.

이모님~ (울엄마) 하며 운다.

인사 예법도 몰라 지인에게 배워 왔다고 절을 한다.

​

무덤덤한 남동생이 훌쩍인다.

이런 마음으로 저희 어머니 돌봐 주셨군요.

저희 어머니 고통속에서도 다 느끼셨을꺼에요.

​

의식 있을 때 어머니가 간병인에게

사랑한다 하셨다길래 반신반의 했는데 진짠가?

​

나는 여사님 손을 연신 조물락거렸다.

이 손이구나. 이 손으로 울엄마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루만져 주셨구나. 감사합니다. ㅠ ㅠ

​

이 일은 곧 이모들에게 전해졌고

이모들은 복이라며. 큰 위로를 받았다며.

간병인은 이모에게 보너스도 받았다는 후일담.

나도 최종 간병비 정산시 봉투속 5만원 보다

훨씬 더 드렸다.

​

부모님이 내 머리속 전부인걸 아는 동생이

누나. 요즘 어때? 아프면 안돼.

근데 누나가 생각보다 잘 버텨줘서 고마워~ 한다.

​

내가 답했다.

엄마 보내드리는 과정 전반이 매끄러웠다 싶어.

그래서 은연중에 내가 많은 위로를 받았나 봐.

동생도 인정했다.

​

우리 간병인이 전부를 대변하지 않음을 안다.

곁에서 지켜봤다면 뺨따구를 날릴 그런 사람도

분명 수두룩할 것이다.

​

허나 모두 다 그렇다는 오류는 범하면 안된다.

내가 만난 케이스는 이랬다고 말 할 수는 있지만

모두 다 그렇다고 단정짓는 것은

타인에게 서둘러 두려움과 불신을 만들 뿐이다.

​

그래서 나는 모든 공을 어머니께 돌리기로 했다.

평생 선하시더니 이런 복 하나는 누리신 걸로..

그래서 감사합니다~ 기도하기로..

​

동행에서 나는 늘 배운다.

나이 어린 분들의 어려움을 보며 기도를 하고

병환중에도 나눔을 실천하는 것을 보며 깨닫고

비록 댓글이지만 절박할 때는 위로를 나누고

갈팡질팡할 때는 진심어린 경험이 길을 터준다고..

​

동행은 이런 곳이다.

아파서. 아픈 가족을 둬서.

우리들만의 애틋한 리그가 펼쳐지는 곳.

​

그러니 우리 모두 사랑합시다.

사랑하며 살기에도 아쉽고 아까운 삶입니다.

그러니 모든 케이스를 존중합시다.

​

설령 누군가 긴 간병으로 지쳐

올바르지 못한 선택을 했다해도

나는 돌을 던지지 않겠습니다.

감히 내가 돌을 던질 자격도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받을 후회는

언젠가 스스로 느끼게 될테니까요..

​

그마저도 없다면 그래도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제 부모 보내고 후회하지 않을 인간은

드물지 않겠습니까..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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