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6차를 앞두고 통증이 심상치 않더니
결국 연명 6개월 선고 받으셨습니다.
고통스러운 항암 이제 그만하고
남은 시간 가족들과 단 1초라도 함께 행복한 시간 보내자고
담당의에게 소견서 받아 호스피스로 옮기려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매번 항암때마다 엄마 나 몇일날 내려갈거야 하면
그래 조심히 와라 하시기만 했는데
유독 이번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 문자, 카톡으로
아들 언제 온다고? 아들 몇시쯤 도착해? 아들 코로나 검사는 했어?
라고 계속해서 연락하는게 좀 이상하다 했습니다.
토요일. 의사 만나고 호스피스로 가는 것으로 결정하고
소견서와 관련 서류들 월요일에 받아서 전원하는 것으로 준비했는데
일요일 아침부터 호흡도 나빠지고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
혈압, 체온 모두 정상 범위를 넘어가면서 갑작스럽게 응급 상황...
엄마 이렇게 가는건 아냐. 엄마 제발 이러지마. 엄마 집에 가자. 응? 엄마!
다급히 동생도 새벽에 내려와 엄마 손 잡고 오열하니
의식이 없어 보였던 엄마가 눈을 마주치며 눈물을...
그리고는 주무시듯 눈을 감고 호흡만 몇시간 하시다
하늘로 소풍을 가셨습니다.
아들 따라 서울에 오면 혹여나 짐이 될까 그러셨나
아들 얼굴 봤으니 이 고통에서 이젠 벗어나고 싶어 그러셨나
엄마 장례 치루는 내내 머리속을 헤집는건 후회뿐...
왜 더 빨리 모시지 못했을까... 왜 더 빨리 결정하지 못했을까...
새엄마 밑에서 이복형제들과 차별 받으며 사셨던 참 박복했던 울엄마 인생
이혼까지 하셨지만 두 아들만큼은 당신처럼 서럽게 살지 않게 하리라 맘 먹고 억척같이 사시느라
꽃같았던 시간들을 모조리 태워 아들을 위한 거름으로 맞바꾸신 울엄마.
하늘도 무심하시지... 인생 끝자락에 손주들 보며 행복한 추억들 조금씩 만들기 시작했건만
그렇게 데리고 가시다니...
엄마...
보고싶은 울엄마...
부디 하늘에선 환자복 말고 이쁜 드레스 입고
항암으로 머리카락 다 빠진 머리 말고 엄마 좋아하는 파마하고
퉁퉁 부은 손발 아니고 곱고 이쁜 손톱 발톱에 빨간 매니큐어도 바르고
그렇게 곱고 편안하게 잘 지내.
그리고 다음 생에는 꼭 내 딸로 태어나줘.
엄마가 못 받았던 사랑 내가 백배 천배로 해줄께.
엄마.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