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에 가면 아내와 저는 약속이라도 한 듯 늘 시계 반대 방향으로 산책을 합니다. 연못을 지나 고종황제가 커피를 즐겼다는 정관헌을 거쳐 석어당에 들러 덕수궁의 최고어른이신 살구나무의 안부를 물은 후 석조전과 현대 미술관을 돌아본 후 관람을 마치곤 했습니다. 그런데 석조전 뒤쪽에 가림막으로 수리 중이던 건물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돈덕전(惇德殿)이 그것인데 돈덕이란 도타운 덕행을 뜻하며 오경 중 하나인 서경의 글귀 '惇德允元(돈덕윤원, 덕이 있는 이를 도탑게 하고, 어진 이를 믿는다)’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돈덕전은 고종 때 외교를 위한 영빈관으로 사용하였는데 1920년 일제가 철거한 것을 올해 100년 만에 수리를 마치고 다시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저도 이번에 처음으로 들어가 봤는데 인테리어가 어찌나 깔끔하고 이쁘던지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더군요. 특히 건물 앞에 있는 회화나무는 수령이 400살이 되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 봤는데 다음에 찬찬히 살펴봐야겠습니다. 볼거리가 자꾸 늘면 혹시 관람료를 올리는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새로운 볼거리가 있으니 좋기만 합니다. 돈덕전이 어떤 모습인지 저의 사진으로 나마 감상하시고 나태주 시인이 왜 11월을 사랑하는지 찬찬히 읽어보세요. 저도 사실은 11월을 좋아한답니다.
내가 사랑하는 계절
나태주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11월이다
더 여유 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
나무들이 깨금발을 딛고 선 등성이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황토 흙의 알몸을
좋아하는 것이다
황토 흙 속에는
시제時祭 지내러 갔다가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
콧노래 함께 돌아오는
아버지의 비틀걸음이 들어 있다
어린 형제들이랑
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가
가져오는 봉송封送 꾸러미를 기다리던
해 저물녘 한 때의 굴품한* 시간들이
숨쉬고 있다
아니다 황토 흙 속에는
끼니 대신으로 어머니가
무쇠솥에 찌는 고구마의
구수한 내음새 아스므레
아지랑이가 스며 있다
*굴품한: '배가 고픈 듯한',
'시장기가 드는 듯한' 의 충청도 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