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운세를 어제 알 수는 없었을까,
내일의 운세를 오늘 알 수는 없을까..?
케모브레인 때문인지 어제 일도 잘 기억나지 않는데,
암진단을 받기 전인 작년 이맘때 저는… 뭘 했을까요?
구글 포토를 보니, 작년 오늘 저는 여행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치 앞도 모르면서.
여행가기 한달 전쯤, 남편에게 배타고 제주도에 가보자고 했었어요. 원래 저는 밖에 나가는 것도 여행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집순이인데다 남이 운전하는 탈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 땐 왜 그런 망말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나와 달리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에게 뭔가 선물을 해주고 싶었나 봅니다. 남편은 말이 떨어지자마자 신이 나서 목포발 제주행 뱃표를 예약했습니다.
보통 다른 도시를 갈 때, 내비에 어디를 찍으시나요? 저희는 그 도시의 맛집을 목적지로 합니다^^. 목포 초원음식점. 꽃게살 비빔밥을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팔던 곳으로 남도의 양념맛을 파도같이 느낄 수 있어요. 쿰쿰하고 칼칼한 병어찜도 맛있었습니다. 두 명이 왔으니 사인분은 기본이쥬!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목포대교도 왔다갔다하고 잘 놀다가 밤 11시에 출발하는 페리를 타기 위해 목포항으로 갔어요. 이때까지 전 좋았던 것 같습니다☺️.
목포항에서부터 쌓인 눈을 보게 됐는데… 이거슨 나중에 하나의 큰 운명?이 됐답니다. 아무튼 남편은 삼십여년 전 대학 입학식을 앞두고 혼자 전국일주 여행을 하면서 목포에서 제주 가는 배를 타봤다고 자랑하는데, 당연히 집순이인 저는 보트는 고사하고 페리를 처음 타보니 모든 것이 참 알딸딸~했습니다. 한 여섯시간 갔나? 남편은 저 때문에 예약했다는 스위트 객실 침대에 누워 잠만 잘 잤습니다. 물론 저는 쾡한 눈으로 배의 엔진 소리만 듣고 있었습니다.
새벽에 제주항 도착. 추운 건 둘째고 잠도 못 자고 긴장한 탓에 엄청나게 피곤한 와중에도 남편은 다 계획이 있다!며 제주시 어딘가로 차를 몰아 갑니다. 고사리육개장? 남편 생각엔 새벽에 도착해서 뜨끈한 국밥 한그릇 싹 비우고 든든하게 여행을 시작하면 되겠다싶었나 봅니다. 하지만 전 언제나 국밥은 아니올시다~.
와! 이 사람~ 완전 제주도민 같습니다. 한달 동안 얼마나 계획하고 연구했는지 아직 날도 밝지 않은 새벽 길을 요리조리 운전해서 저를 또 어디론가 데려갔습니다. 눈떠~ 눈을 뜨시오!
해변가 스타벅스는 또 어떻게 찾았는지 동선이 아주 기가 막힙니다. 아마도 해장국 먹고 커피 한잔하면서 멋지게 바닷가에서 일출을 본다는 계획이었나 봅니다. 딱 일곱시에 커피숍 문이 열리자마자 차에서 비몽사몽 자고 있던 저를 깨우고 업어서 2층 창가에 앉혀 놓았습니다.
여행 첫날은 완전 망친 거였어요. 그래도 신기한 것이 차안에서 자다가 눈을 떠보면~ 완전 다른 풍경과 시간 속에 제가 있는 겁니다. 눈 내리던 목포는 온데간데없고 대신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 해변이 펼쳐집니다. 알로하~.
옛날부터 제주에 가면 묵었던 중문쪽 숙소 대신 이번엔 남편이 좋아라하는 중산간도로 어딘가에 온천풀이 있다는 호텔을 숙소로 정했대요. 그러면서 이번 여행 컨셉은 힐링이다!라며 떨고 있는 저를 위로합니다. 저는 알거든요~ 남편의 여행은 절대 힐링이 될 수 없는 여기저기 돌아보고 구경하는 관광인 것을.
그런데 숙소에 도착한 그날 저녁부터 구름이 심상치 않게 끼더니 엄청나게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다음날 아침, 눈보라 속에 갇혔어요^^ 남편은 엄청나게 메모해둔 제주맛집들을 못가게돼서 안타깝지만 이것도 힐링이라면서도 서운해하더라고요. 저는 앗싸! 계속 피곤하던 차에 꿈같은 호텔방콕이 어디냐 싶었습니다. 오가는 사람 없이 고즈넉해진 호텔 레스토랑에서 해물 짬뽕, 룸서비스로 제주 화산치킨, 호텔 매점에서 제주딱새우라면을…
둘째 날이 가고~ 세째 날~ 호텔에서 걸어 갈 수 있는 거리에 방주교회와 본태박물관이 있어서 뒤뚱뒤뚱 눈밭을 걸어 다녀왔어요.
교회와 박물관 둘 다 참 멋진 건축물이더라고요. 호텔 가까이에 이런 곳이 있어서 다행~ 이또한 건축물 보는 거 좋아하는 남편의 계획이었나봐요🤔.
세째 날… 눈이 좀 잦아들어서 제주시로 나가 유리네에 갔어요~ 유리네는 제주도에 오면 항상 찾는 식당^^. 진짜 몇십년이 지나도 유리네 갈치조림은 변하지 않는 맛이에요. 여행 마지막 날에도 또 갔었다는😛.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커피를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제주블루보틀에도 들려봤어요~.
원래대로라면 네째 날에 돌아가야하는데~ 다시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예약된 배편은 물론 비행기도 모두 취소, 제주도내 길도 대부분 폐쇄. 이러다 정말 고립될 거 같아서 눈 속에 묻힌 호텔을 뒤로 하고 물어물어 안전한 길로 탈출해서 간신히 제주 시내에 있는 호텔에 왔어요.
돌아오는 배는 오던 배보다 작고 시설이 낡아서 울렁대는
객실 침대에 계속 누워서 왔어요. 그러다 뿌웅~ 뿌웅~ 목포항에 다 올때 쯤 간판에 나가보니 배가 막 목포대교 아래를 지나고 있더군요. 지금 봐도 멋진 사진이에요~.
목포항에 도착해서 남편과 저는 밤새 여섯시간을 번갈아가며 눈길을 운전해서 올라왔어요;;;
그리고 며칠 후,
저는 건강검진을 받고,
이상 소견으로 3차 병원에 갔고,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만약 그때 눈이 그렇게 많이 내리지 않았다면,
남편은 저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을테고
아마도 저는 제주도에서 죽었을 거라고~
가끔 얘기합니다.
그렇게,
저는 한 치 앞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지난 월요일, 대장과 간을 동시에 수술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엠알아이 결과를 듣기 위해 종양내과와 대장항문외과 진료를 봤습니다.
간쪽 종양은 커지지도 줄지도 않았답니다… 오전에 진료 본 종양내과 교수님은 간 수술은 아직 하기 어렵다 했고, 오후에 대장외과 교수님은 대장과 간 수술을 동시에 개복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간쪽 종양은 모두 제거하기 힘들것 같고 절제와 고주파 시술을 같이 진행한다고 합니다. 아직 집도할 간쪽 외과 교수님은 보지 못한 상황이고 간쪽 외과교수 일정 때문에 한달 뒤에나 수술받을 수 있다는군요. 결국 1월로 입원과 수술 일정을 잡고 왔습니다. 벌써 항암을 한달째 쉬고 있는데, 또 한 달을 쉽니다;;;
크리스마스를 병원에서 보낸다며??
트리도 준비하지 않은 남편에게 쫑알댔습니다.
12월에 수술 받고 새해를 맞이하나 싶었는데~.
오늘의 운세를 심심풀이로 보는 세상…
내일의 운세는, 오늘 알 수 없네요.
Last Christmas가
계속 되길 바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