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시작한 설날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라는 노랫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한 젊은 시절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재혼으로
설날 명절이 힘들었던 시절
명절이면
아내가 스트레스로 아랫배에 가스가 차서 며칠을 화장실을 못 가던 시절이
어느 사이에 3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명절날 친정을 단 한 번도 못 갔던 아내
거리가 멀다는 이유도 있지만
아내가 친정을 가면 새어머니 혼자서 사위들을 챙겨주려면
힘들어서 안된다는 마음에 친정행을 포기했지만
모두가 부질없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항상 미안한 마음으로 살고 있기에
아내가 대장암수술을 한 후 현재까지 10여 년을 명절과 제사는
나의 기억에서 모두 지워버렸다.
대장암수술을 한지도 어언 10년이 되어가는데
수술 후유증으로 작년 8월에는 장유착이라는 생각지도 않은
증상으로 3박4일 입원을 하였기에 아직도 암이라는 단어에
민감하다.
이런 상황으로 조상님들에게는 죄송한 마음이 들지만
산 사람이 우선이기에 명절과 제사라는 단어는 머릿속에 없다.
아내가 컨디션이 좋을때는 제사라도 다시 차려볼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다 무슨 소용일까 싶어서 아내에게 입도 뻥끗안한다.
10년이란 세월을 잊고 살았는데 다시 꺼내어 스트레스를 줄 필요가 있을까 싶다.
명절이라는 단어를 잊었기에
출가한 딸아이에게도 명절에는 절대로 오지 말고
평소에 오라고 했다.
명절에는 아이 데리고 고궁도 다니고 식물원도 다니고
어릴 적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어 주라고 당부했다.
아들이 지금도 이야기한다.
어릴 적 가족들과 다녔던 서울대공원이며
휴가 때갔던 강원도 계곡에서의 물놀이
서울대 가야 한다며 서울대학교 캠퍼스 구경을 시켜준 일
검사가 되고 싶다기에 검사님 사무실에 데려가
검사가 되려면 책장에 가득한 책을 모두 읽어야 한다는 검사님 말씀에
각오를 다졌던 일들
젊은 시절 내가 컴퓨터 사업을 했기에
기어다닐 때부터 컴퓨터 키보드를 장난감 삼아 놀았던 일들이
모두 기억나고 도움이 되었다는 말에
딸아이에게도 아이에게 특별한 추억도 좋지만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말로
당부한다.
가족은 어릴 적 가장 행복한 꿈을 꾸는 보금자리이다.
그래서 이번 명절에 특별히 할 일이 없기도 해서
오늘도 출근을 했다.
출근 전부터 손님들에게서 영업하느냐는
문의전화가 계속해서 와 편하게 집에 있을 수도 없었다.
11시 출근, 영업준비를 마치고
국민커피 믹스 커피를 앞에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아들에게서 영상으로 전화벨이 울렸다.
녀석~~~ 이제 철이 들었나?
설날이라고 전화를 다하네 하며
새해 인사를 나누며 덕담을 했는데
엄마!
나 합격했어요~~
뭐라고?
합격했다고요~~~
갑자기 어안이 벙벙했다.
밑기지 않는 합격이라는 말에
아내는 울음을 터뜨렸고 나의 눈가에도 어느 사이에 이슬이 맺혔다.
그동안 뒷바라지하느라 마음 졸이며 애썼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1주일 전 미국에서 뱅기를 타고 면접을 보러 왔는데
최종 면접에서 15명의 유학파 박사들과 겨루어서
힘들었다고 하며 약간은 기죽은 표정으로 미국으로 출국했기에
아내와 나는 서로 말은 못 했지만 긴장과 초조함,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아들과 통화를 나누며
아내는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축하한다는 말과
그동안 고생했다는 말로 나 자신을 위로를 했다.
유치원부터 미국 미국 했는데 미국에서 뜻하는 바를 이루었다.
아내와 나는 미국에서 살 수 있으면 미국에서 살라고 했다.
옛날처럼 몇 달을 걸려서 미국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시대이고
IT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2억만 리 미국 땅에 살면서도
휴대폰 화면으로 얼굴을 보며 통화할 수 있는 시대이기에
아들이 미국에 살겠다 해도 말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아들은 한국에 와서 엄마 아빠와 자주 만나는 삶을 택했다.
설날 아침부터 울음이 터졌지만
설날 선물로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너무나 행복했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른다.
일을 하면서도 아내는 꿈이 아니냐는 말을 몇 번이고 했다.
10년전 대장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마음으로
아내가 없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시집 장가를 보내나
눈앞이 캄캄했는데
5년전 완치라는 졸업장을 받아들었지만
완치 후 5년, 도합 10년이란 시간을 세브란스병원을 오가며 이겨내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한데
아들의 합격소식에 힘들게 이겨온 긴세월을 되돌아보며
다시한번 모두에게 감사를 드리는 시간과 함께
지난 수요일에는 무작정 소식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아서 영업을 끝내고 집 옆에 있는 전등사로 향했다.
아무것이라도 해야 했다.
명절 전이라
새해 소원을 빌러 오시는 불자님들도 눈에 많이 띄었고
대웅전 앞마당에는 소원을 비는 연등들이 형형색색으로
머리 위를 물들였다.
우리는 불자는 아니지만 절에 가면
불전함에 절 구경비는 내고, 이루고 싶은 소원을 빌고 오기도 하는데
수요일에도 소원을 빌고 왔다.
우리 부부의 간절한 소원이 부처님 마음에 닿았는지
오늘 그 소원을 들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하다.
오늘도 아무 탈 없이 손님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꼬마 손님들에게는 무료로 국수를 제공했는데
어느 노부부께서 장터국수와 비빔국수, 만두를 주문해 드시고는
계산을 하시면서 기분 좋은 소리를 전해 주셨다.
서울에서 왔는데 국숫집이 이렇게 깨끗하고 분위기 좋고
맛있는 집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 참고로 아래사진의 잔치국수는
항암 후유증으로 당 수치가 높아져
밀가루 음식을 줄이라고 하는데 밀가루 음식을 하고 있으니
눈앞에 두고 안 먹을 수 없어서
아내와 제가 특별하게 만들어 먹는 잔치국수입니다.
면은 조금 그 대신 호박, 송이버섯, 당근, 양파, 콩나물무침, 소고기볶음, 다시마를 고명으로
듬뿍 얹어서 먹는 건강한 국수랍니다.
국수를 먹어도 이렇게 먹으니 당 수치가 오르지 않아서 국수가 먹고 싶을때
가끔 해 먹는 방법입니다. >
자주 오고 싶어지는데 강화도 오려면 주말에 너무너무 길이 막혀서
힘들다고 하시며 그래도 다시 오시겠다는 말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며
예쁜 꽃 사진 한 장을 손에 들려드리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라는 말씀을 드렸다.
눈물로 시작한 설날이었지만
하루 종일 기분 좋은 날이다.
이웃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과 행운이 늘 함께 하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