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1) 새벽에 혼자 119를 타고..

딸
딸기맘l위본
2024.02.22 00:20 | 조회 2.4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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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살된 딸과 이제 세상에 나온지 두달된 둘째딸~

인생의 목표인 딸딸이 엄마로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을때 쯤 2016년.

첫째로 인해 산후조리원을 가는 대신 두달간의 주거 산후도우미를 선택했고, 금수저가 아닌 나는 대부분이 그렇듯 두달의 호강스런 생활을 접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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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도우미가 가고 나의 생활은 힘들었다. 뱃골이 작은 둘째가 젖을 자주 먹었기 때문이다. 나는 첫째때에도 젖몸살을 앓을 정도로 젖이 많이 돌았으며 또 참 젖이어서 아이의 건강을 이유로 모유수유를 포기할 수 없었다. 다행히 첫째가 어린이집을 갔지만 이상하게 피로는 누적되고 몸 컨디션은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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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밥을 안 먹었는데 배도 고프지 않고 너무 힘들어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너무 힘드니까 빨리 와 달라고.. 왠만큼 아파선 아프다고 하지 않는 나인터라 다행히 남편은 일찍 와주었다. 남편이 와서 일찍 쉬고 싶었지만 어린 두 딸 때문에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저녁까지 아무것도 안먹고 있었는데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화장실을 갔는데 혈변을 봤다. 조금 묻어 있는 정도가 아니라 피가 너무 많이 나왔다. 난 너무 놀라 남편을 불렀고, 남편 역시 내일 아침에 바로 병원에 가 보라고 했다. 그리고 모유수유를 하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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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었다.

어디가 딱히 아픈 것도 아닌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을 비틀대고 있었다. 잠도 안오고 이상해서 화장실을 갔다. 또 혈변을 봤다. 이 새벽에… 많은 양의 혈변..아니 물에 가까운 혈변..얼른 뒷마무리를 하고 눕고 싶었다. 화장실을 나와 안방으로 가는 그 몇 발자욱 사이에 난 어지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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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난 나의 위급함이 느껴졌다. 정말 있는 힘을 다해 남편을 불렀다. 정적만이 감도는 새벽에..

내 목소리를 듣고 깬 건 둘째였다. 백일도 안 된 둘째가 울기 시작했고 둘째를 데리고 나온 남편이 나를 발견했다. 남편에게 119를 불러달라고 하고, 나는 몸을 피가 없는 쪽으로 굴려서 둘째의 모유수유를 시작했다.

119가 도착했다. 하지만 난 몇분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하고 모유수유를 마친뒤 들것에 실려 119를 타고 혼자 병원으로 갔다. (이때가 둘째의 마지막 모유수유가 될 지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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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4개 다 달았아요. 안 올라가요.” 누군가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고는 나에게 바로 왔다. “ 임지현씨! 상황이 안 좋아요. 바로 보호자 부르셔야 해요.” 친절하지 않은 다급한 목소리로 서너 번은 얘기했다. 빨리 보호자 부르라고.

이미 내 입에서는 피가 오고 가는 호수가 꼽혀 있었고 코에도, 양 팔에도, 양 발에도 모든 장치가 달려 있는 상태였다. 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간호사가 대어 주는 핸드폰으로, 어눌한 목소리로 남편에게 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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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새벽 4시가 넘어…

희미하게 보여지는 의사와 남편…

출혈이 많아 마취를 못한다고…

위(stomach)에 구멍이 나서

출혈이 멈추지 않는다고…

일단 위에 구멍을 지져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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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꿈일꺼야~

난 이때의 기억을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만신창이란 단어를 체험으로 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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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때는

난 응급실이 아니었다.

중환자실이었다.

중환자실에서 간호사가 내 불은 가슴에서

젖을 짜내고 있었다.

내가 깼을 때 간호사는 내 이름을 부르며 정신이 드냐고.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이게 몇개냐고 물었다. 그렇게 난 누워 있는 상태에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곳의 모든 환자들은 누워서 똥오줌을 해결했다.

만 이틀째, 내가 정신을 차렸을때, 옆에 환자는 흰 천으로 덮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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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루가 더 지나고 난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그제야 들을 수 있었다. 피가 모자라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위에 구멍이 나서 봉합처리를 했고 용종이 있어 그건 제거했다고.

……

며칠 더 있기를 권유했지만 어린 두 딸이 있어서 난 하루 더 휴식한 다음 바로 퇴원을 했다.

퇴원하며 진리를 깨달은 기분이었다.

건강이 최고라는 그 쉬운 말을

이런 직접체험을 하고야 깨닫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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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렇게 사람이 죽을 수도 있구나 하는 몽환적인 경험을 하고서야 내자신의 소중함을 안 것 같았다.

퇴원하며 일주일 후에 조직검사 결과에 대한 진료예약과 함께 퇴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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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으로 살아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며

이제 나 자신을 내가 제일 위하며 살겠다고

내 건강은 내가 지키겠노라고

수없이 다짐했던 일주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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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19타는.. 응급실을 가는..상황을

두번 다시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 다짐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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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일이

나의 다짐과는 별개로 흐른다는 걸

일주일 뒤~

실감..아니 절망 하는 일이 벌어질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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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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