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4) 시한부로 산다는 건..

딸
딸기맘l위본
2024.02.22 16:53 | 조회 2.5k

일~이주일 상간에 예약하기 힘든 병원

신촌세브란스, 서울대병원,

아산병원, 삼성의료원, 국립암센터 까지

명의들에게 예약을 하고 진료를 봤다.

다 같은 말씀이시더라..

‘위암은 개복을 해봐야 안다고..’

그 중 나는 복강경 수술이 가능한

그리고 제일 믿음이 가는

세브란스를 선택했다. (위암 명의-형교수님)

수술날 까지는 한달 반을 기다려야 했다.

​

암선고 이후 2박 3일쯤 원 없이

울어본 것 같았다.

난 집으로 다시 돌아왔고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다.

​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보냈고

난 다니던 발레도 갔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니 말하지 못했다.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 어떤 위로도 받고 싶지도 않았고

같이 슬퍼하는 표정을 짓는 건

더 싫었다.

​

우린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아니 돈을 주고 체험을 하기도 한다.

만일 내가 시한부라면..

만일 내가 한 달 후에 죽는다면..

만일 내가 일 년 후에 죽는다면..

​

24시간 내내..

잠자는 시간까지도 생각한거 같다.

여행을 갈까,

이루지 못한 사랑을 만날까,

가고 싶었던 두오모 언덕에 가볼까,

내가 해보고 싶었던 걸 해볼까…

​

생각하면서.. 생각하는 동안..

생활은 안정되어 갔고

그 때 알았다.

일상의 행복을…

​

난 똑같이 아이들의 밥을 만들고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기를 돌리고..

식기세척기를 돌리고..

로봇 청소기를 돌리고..

아이들과 놀이터에 나가서 놀고..

놀이터 엄마들과 잠깐의 수다도 하고..

​

남편이 오면 밥을 차렸다.

숟가락을 놓고.. 치우고..

남편도 똑같았다.

평일엔 손도 까딱 안하고..

매일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주말엔 대청소를 하고..

우린 평상시에는 암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난 일상을 보냈다..

아침에 눈뜨면 ‘일상이구나’ 하고

행복한~ 숨을 쉬었다.

그리고 안좋은 생각이 들때면

아이들을 안고 냄새를 맡으며

마음에 안정을 찾곤 했다.

​

단지,

라면을..정크 푸드를..먹기 시작했다.

억울했다.

친정아빠는 나보고

‘우리 지현이는 벽에 똥칠할 때 까지 살꺼야’

하며 말씀하셨는데..

난 정말 몸에 좋은 거라면

혐오 식품도 먹었고..

몸에 나쁜 건 왠만하면 먹지 않았다.

친가, 외가를 포함하여

암병력은 그 어디에도 없었으며

한 번도 말라 본 적 없는

건강한 미듐 사이즈의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

그렇게 한 달 반은 쏜 화살처럼 지나갔고..

수술 이틀 전 시어머니가 올라 오셨다.

수술과 입원기간에 아이들을 봐 주시기 위해

평온하던 내 감정이 터진 건

시어머니와 둘이 있을 때 시어머니의 질문이었다.

“얘! 애미야~ 이제 수술하고 나오면..

애비 반찬은 어떻게 하니? 밥은 어떻게 하니?”

순간! 멍했다..

나도 모르게..“제가 하죠..”라고 대답했다.

​

그러고 나와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미친듯이 울었다.

남편에게 말했다.

‘나 무서워서 죽을꺼 같은데..

어머니가 오빠 밥 걱정하신다고..’

남편은 ‘당장 내려가시라고 그래’라며

쌍욕이 나오기 일보직전이었다.

깜빡했다..나의 중학생 아들의 상태를..

어머니께 전화하지 말란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참을…

차안에서 목놓아 울었다.

내일의 입원이 무서웠던 것일까?

그간의 불안하고 무서웠던 내 마음을 털어 버리듯..

​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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