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12) 우울증에 필요한 건..

딸기맘l위본
2024.02.27 16:54 | 조회 1.1k

2018년쯤 이었을까?

육체가 정신을 지배했던 시절..

내 몸도, 육아도, 가정경제도, 모든게 다 꼬여있었다..

공황장애. .우울증. .조울증. .

정신과에 치료가 절실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병원을 찾을 수 있을 만큼의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았었다.

아마 병원에 갔다면 세 개이상의 진단명이 나왔으리라…

내겐 초등학교 입학식때 만난 친구가 있다.

추운 봄날씨에 콧물을 훌쩍이며 수줍어 하며 만났던..

그친구와 난 같은 반도 아니었다. 3학년때 까지도..

그리고 그해 겨울 난 서울에서 ㅇㅇ으로 이사를 갔다.

난 어려서 몰랐지만 집안 형편이 안좋아졌다는 걸 자라면서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이사를 갔는데도 난 그 친구와 전화(집전화)나 편지로 연락을 주고 받았다.

그렇게 연락을 하며 그리워 하다가 그 어린 아이들은 집으로 초대를 하면서 마침내 만남을 약속했다.

그때의 만남을 시작으로 우린 꾸준히 그리고 띄엄띄엄 연락을 이어가다 드디어 대학교때 다시 재회하게 되었다.

이 친구와 내가 불혹을 넘기며 가장 많이 한 말은

“ㅇㅇ아! 우린 그때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기억나? 강남역 한복판에서 아니 심지어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깔깔거리며 웃었던거?”

“맞아! 그 땐 얼굴만 봐도 웃었던거 같아~ 뭐가 그리 맨날 즐거웠을까?”

하며 회상에 젖곤 했었다.

이 친구와 난 아직도 베스트 프렌드 이다.

이 나이에 심지어 초등학교때 친구가 베프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기쁨이자 프라이드이다.

나의 리즈 시절을 함께하며 희노애락을 같이 했던 친구!

그러나 이 친구와 나는

약간의 괴리감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 친구의 부모님은 대졸이시고 난 아니었고..

이 친구는 중고등학교를 엄마 승용차로 등하교 했었고 난 아니었고..

이 친구의 아버지는 대기업 임원으로 명예퇴직을 하신 분이고 난 아니었고..

음..나를 비하하는건 아니지만 어린시절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물론 우린 어려서 몰랐지만..

이랬던 친구가 너무나 예쁘게 잘 자라주었고

나와 마음까지 잘 맞는 멋진 숙녀가 되어 있었다.

우린 남자친구를 함께 만나기도 하며 기쁨을 나누기도,

헤어짐의 슬픔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쇼핑도 함께 술도 함께 하며 이팔청춘 이십대를 함께 했었다.

그러다 서른이 될때쯤 친구가 돌연 임용고시 시험준비를 한다고 해서

한동안 만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3년 후! 그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합격했다고! 지금 대기발령 중이라고!

들어보니 1년에 한번 있는 시험을

첫번째도 두번째도 붙었는데

두 번다 면접에서 떨어져서,

세번째는 전국 수석을 했다고!

와~~~~~ 난 정말 소름끼치리만큼 너무 자랑스러웠다.

마치 나의 수석인것 마냥~

이제는 이 친구가 ‘베프’의 자부심 그 이상이었다.

어딜 가든 나의 일인 마냥 자랑하고 싶었고

내 마음속에서도 뿌듯한 친구이다.

그러다 이 친구와 난 같은 해에 결혼을 하게 되었고,

이 친구는 분당에서 나는 일산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는 물리적 거리는 멀었지만 반찬은 뭐 해먹는지

남편하고 싸울때는 어떻게 하는지 시댁욕도 서로 하며

스트레스도 풀고 고민도 함께 나누는 일로

한시간 이상씩을 통화하곤 했었다.

그러다 나의 고민이 깊어지고 우울증이 찾아왔을때쯤에는

한달에 한 번 정도? 그냥 그런 대화만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걸려온 친구 전화에서 “왜 이렇게 힘이 없어?” 라는 말에

아주 느리고 아주 힘없는 말투로 나의 가슴에 쌓여있던 진심이 터지기 시작했다.

” 나 아무 의욕이 없어…

나 내가 아닌거 같아…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

이렇게 살아서 난 어떻게 되는 걸까?…“

곧 죽음을 앞두고 유언을 남기는 사람들의 목소리 쯤으로 들렸으리라.

그때 내가 내 입으로 죽고 싶다는 말을 했는지의 유무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고작 이렇게 몇 마디만 했을 뿐인데

내 친구는 나에게 불같이 화내기 시작했다.

“너! 20대때의 너는 다 어디갔냐고.

그 열정적이고 항상 자신감에 차 있던 너는 다 어디 갔냐고.

내가 왜 임용고시를 본 줄 아냐고. 너 때문이라고.

너만 보면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고 자극됐었다고.

넌 나한테 항상 귀감이 되는 친구였다고.

내 친구들중에 너를 모르는 애는 없다고.

내가 하도 얘기해서ㅠ.

너 이거 안 어울린다고.

너답게 살라고.

당차고 자신감 넘치는 커리어 우먼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

한 시간 넘게 화를 냈던거 같다. 그리고…

그날밤 잠을 자는데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이 친구가 해준 한마디 한마디가 생각나면서

나의 어린시절이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눈물이 흘렀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한 한시간쯤 그냥 흐르는 눈물을 방치했다.

마치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것 처럼 흘러

배개를 다 적셨다.

그러고는 아주 잠깐..잠깐동안 오열했다.

다음날 늦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개운했다.

햇살이 예쁘다는 말도 안되는 낯간지러운 생각이 들었다.

문자가 왔다. 딸은 엄마의 자존감을 물려받는다는 논문 내용이었다.

동영상도 함께 첨부되었다.

그리고 전화도 왔다.

”정신차리라고. 두 딸을 생각하라고.

넌 딸을 잘 키울 수 있는 최고의 엄마라고.

너의 두 딸은 너의 자존감을 그대로 물려받아

자존감 높은 아이로 잘 성장할 거라고. ”

“혜연아! 난 가끔 이때의 아찔 했던 기억을 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

너무 너무 고맙고…사랑해~!

나의 자랑스러운 ‘내 친구 혜연아’!~“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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