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가정 호스피스 그리고 가정임종 후기

반드시낫는다l난보
2024.06.11 00:57 | 조회 4.9k

생각보다 가정호스피스 후기가 많이 없어서 다른분들께 도움도 되고 저도 엄마와의 추억을 기억하고자 글을 씁니다.

두서가 없어도 많은 이해 부탁드립니다.

제가 가정호스피스와 가정임종을 하게 된 계기는 엄마의 소원이었습니다. 엄마가 건강하셨을 때도 가끔씩 다큐를 보면서 집에서 편안하게 잠자듯이 가고 싶다는 말을 농담처럼 하셨습니다. 그때는 저도 같이 웃고 넘겼었는데 그게 정말 현실이 될줄 꿈에도 상상을 못했습니다. 저희 엄마는 너무 젊은 나이에 가셨거든요.. 만 57세...

처음 가정호스피스를 시작할때는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기전까지만 이용하려 했으나 워낙 좋은 가정호스피스 선생님을 만났고, 병원이랑 가정이나 간호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판단되었고, 무엇보다 엄마가 원하셔서 임종까지 함께 하게 됬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한 장점과 단점은...

<장점>

-본인 집(가정)에서 하므로 심적으로 편안한 분위기에서 케어를 받을 수 있다.

-원래 병원은 보호자 1명만 상주가 가능하지만, 가정에서는 가족이 다같이 있을 수 있다.

(저희집은 딸셋에, 아빠 이렇게 총 5명이라서, 엄마 임종 마지막날까지 시끌벅적 했어요)

-보호자 입장에서 다른 가족들과 함께 간병을 할 수 있어 힘듦이 덜하다.

-비용면에서 절약된다

(사실 저희는 가정호스피스전에 호스피스병원도 알아보긴 했었는데요. 1인실과 특실은 상급병실로 분류되서 하루 가격이 어마어마 하더라구요.. 기본 20만원.. (동백성루카기준입니다..) 물론 2인실로도 알아볼 수 있긴 하지만 불편하고,, 다른분 돌아가시는것도 지켜봐야 될 수도 있고 해서 1인실 기준으로 많이 알아봤었어요

그밖에도 티비소리 음악소리 등등 제약을 받지 않고 틀수 있으니까 딱 한마디로 정의하면 편안함이라고 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점>

-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임종 후의 문제입니다. 다들 많이 알아보셔서 아시겠지만 가정 임종은 112로 신고하여 경찰을 불러야 합니다.

순서는 대략 112에 신고-> 가까운 지구대에서 도착해 접수(경찰)-> 형사가 도착하면 가족들이 임종 전 후 상황 설명해야 함-> 과학수사대(?)도 같이 와서 집 곳곳 화장실까지 확인하고, 가족들 거실로 다 내보내고 방에서 시신확인, -> 최종적으로 시체검안서를 쓰기위해 형사가 의사에게 연락하여 의사방문, 의사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최종 OK 떨어지면 상조를 불렀습니다..

과학수사대까지 오는 이유는 혹시라도 모를 타살의 위험성을 방지하고자 확인하러 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녔던 병원 의사 소견서만 미리 잘 준비해 놓는다면 아무 문제 없을겁니다. 하지만 경찰, 형사, 과학수사대, 의사분까지 해서 거의 10명이 되는 인원들이 거실을 꽉 채워서 시끌벅적하니 진이 쭉 빠지더라구요, 가특이나 엄마 돌아가신것도 슬퍼죽겠는데,, 슬퍼할 겨를도 없이 계속 형사, 의사분에게 상황 설명해야 하고 그게 끝나면 바로 상조 연락해서 엄마 장례식장으로 옮기고,, 새벽에 엄마 빈소앞에서 잠들때 그때 눈물이 쏟아지더라구요

-아파트에서 임종할 경우에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될 수도 있다.

보통 임종하면 새벽에 많이 돌아가시니까 저희도 엄마가 새벽에 돌아가실 것이라 생각해서 별 걱정을 안했었는데요

생각지도 못한 저녁 오후 17시 40분에 돌아가셨습니다. 엘베로 엄마를 운구해야 하는데 하필 퇴근시간이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릴 시간대더라구요.. 결국은 불편한 상황을 마주했습니다.. 지하에서 앞집 아저씨까지 만났어요...

애써 티를 안내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유날리 인상을 찌푸리고 대놓고 불편한 티를 내시는분이 계시더라구요. 그분의 마음도 이해는 됐지만 왜 우리엄마가 이런 시선까지 받으면서 이동을 해야하나 속상하더라구요. 그리고 우리엄마는 지병으로 가정임종을 했는데 혹시라도,, 자살이나 이런걸로 오해를 받을까봐 그부분도 속상하더라구요 ㅠ

-병원 호스피스보다 더 빨리 이별의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사실 잘모르겠습니다. 근데 이건 그냥 제 생각이라서요...그냥 참고만 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저희 같은 경우는 가정 호스피스 선생님이 지금 엄마 피검사 결과로는 많이 위험한 상태여서 호스피스로 입원을 권유했습니다. 피검사 수치가 뭐 하나 정상인게 없었습니다. 모든 피검사 수치가 망가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입원하지 않았던 경우는, 담당 주치의 선생님이 이대로는 호스피스 병원을 입원하면 아무래도 퇴원은 불가능할 것 같다라고,, 말씀을 하셔서 가정 호스피스로 계속하기로 했고 그 다음주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무래도 병원 호스피스로 가셔서 집중치료를 받았으면 몇주라도 더 사셨을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엄마의 뜻대로 따르기로 했고, 저희들도 지금 엄마 상태에서 뭘 계속 하는것은 연명치료밖에 안된다 판단이되어 계속 가정에 있기로 결정했었습니다.

일단 여기까지가 제가 생각하는 장점과 단점입니다. 더 생각나는게 있으면 추가적으로 올리겠습니다.

다음은 임종직전의 증상인데요.. 엄마 임종전에 정말 검색 많이 해봤는데 나타나는 증상도 있고 나타나지 않는 증상도 있더라구요. 정말 사람마다 다 증상이 다르니 참고만 하셨으면 합니다. 저같은 경우는 물론 엄마가 호스피스 중이니까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건 알고 있었으나 ,, 제가 끝까지 주의깊게 지켜본 체인스톡호흡과 가래끓는 증상이 별로 나타나지 않아서 제가 생각했던것보다 빨리 돌아가실줄은 몰랐습니다...

< 저희 엄마의 임종 전 증상>

-청색증

주로 발에 나타나는 편이었고 손은 괜찮았습니다. 청색증은 혈액순환이 안되는 말기암환자들에게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이기도 하고, 저희 엄마 같은 경우는 오래전부터 청색증이 있었어서 오히려 깊게 생각안했는데 가정 호스피스 선생님은 엄마 발 보자마자 왜 가정 호스피스를 이제야 연락주셨냐고,, 고민 많이 하셨냐고 그렇게 말하셨네요.

-무호흡 증상.

일주일 전부터 무호흡 증상이 있으셨고 임종에 가까워질수록 무호흡기간이 더 길어졌어요 10초-> 15초-> 20초 식으로 점점 무호흡기간이 길어지고, 대신 저희는 체인스톡 호흡이나, 불규칙한 호흡은 별로 없었어요,, 오히려 무호흡을 규칙적으로 하는 느낌?

-손 발이 많이 차가워지고, 임종 바로 직전에는 손이 축축함

-입안이 계속 바짝바짝 마르고, 침을 잘 못삼키게됨( 저희 같은 경우는 얼음을 계속 입에 물고 있게 했어요)

그밖에 식욕부진,, 맥박, 혈압 등이 약해지는 증상들은 너무 당연한 거니까 따로 글을 쓰지 않겠습니다.

임종 전 증상들도 추가적으로 생각나는 것들이 있으면 더 올리겠습니다.

< 임종 하루전 엄마의 모습, 그리고 추억>

내일이면 엄마 돌아가신지 일주일이 되는데요. 돌아가신 엄마한테 이런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 과정이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고 소름돋기도 하고 정말 우리 엄마답게 갔다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엄마는 생전에 워낙에 조용하고 깔끔한 성격이셔서 남한테 폐끼치는 것도 싫어하시고, 정말 가끔은 결벽증이 아닐까 싶을정도로 정리정돈도 잘하고 살림도 야무지게 잘하시고, 가끔씩 본가에 놀러가면 항상 깨끗하고 깔끔하고 빈틈없는 흐트러짐 없는 성격 대충 아시겠죠? 그런 성격이었습니다..

그런 엄마가 물론 사랑하는 세 딸들이 간병하기는 하지만, 저희도 간병이 처음이고 많이 서툴러서 솔직히 엄마 성에 차지는 않았을 겁니다.. 특히 엄마 성격에는 더욱,,, 그래도 가정 호스피스 선생님이 일주일에 3번정도 주기적으로 방문하셔서 알려주셔서 많이 배웠네요.

남들은 돌아가기전에 섬망도 온다는데 우리 엄마는 딱히 그런 것도 없었습니다. 보통 섬망이라고 하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가족도 못알아보고 , 헛소리도 하고 그런다고 하잖아요? 저희 엄마는 엄마 성격답게 너무 조용히 가셨습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파요.. 차라리 표현이라도 실컷 하시지... 그나마 새벽에 통증으로 아프니까 통증 호소하시는것 말고는 없었습니다.

마약성 진통제 과하게 쓰면 섬망 증세 심하게 와서 가족들도 못알아볼까봐 진통제도 최소한으로 원했습니다.

저희가 마지막으로 썼던 패치 강도가 37이었고, 바로 돌아가시기전에 딱 하루 50까지 올리고 끝이었으니 이정도면 정말 약하게 한 것이지 않나요..?

딸들이 거실에서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서는데도 우리 잠 더 자라고 , 정말 아프지 않으면 부르지도 않는 엄마가

새벽 1시에 저를 부르더라구요.. 그리고 아빠랑 동생들을 다 불러달라고 했어요.. 생전에 절대로 그러지 않던 엄마가 그러니까 느낌이 쎄 하더라구요..

저희 다 불러모으고선 엄마가 먼저 가서 미안하다.. 엄마 먼저 갈테니까 남은 가족들끼리 의지하면서 잘 지내고 하더라구요. 그때 알아차렸어야 하는데. 전 엄마가 보내는 마지막 신호인지도 모르고 비록 무호흡이 길었지만 규칙적이었고. 그날 처음으로 패치 50까지 올리는 날이었기에 엄마가 자꾸 불안해 하는거 보니 이게 섬망 증세 인가보다 했어요.

동생들과 저는 눈치없게 속삭이면서 오늘은 아니야 오늘은 진짜 아니야 하면서 엄마 엄마가 지금 마음이 너무 불안해서 그런 생각이 드는거야 우리가 옆에서 엄마 지켜줄테니까 푹 자라고 달래기만 했네요. 안 자고 어떻게든 눈을 감지 않으려고 계속 눈을 부릅뜨고 있더라구요. 불을 다 꺼야만 잠이 오는 엄마가 그날따라 불도 절대 끄지 말라고 그러시는 거에요. 우리가 엄마 왜 안자 ? 자야지, 피곤하잖아 이러니까... 엄마가 이대로 눈을 감으면 죽을것 같다고 그러더라구요.. 지금 생각하면 저희 엄마는 어떻게든 의식을 놓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날 저도 어떻게든 엄마랑 함께 했어야 하는데, 전날 잠을 제대로 못자서 엄마손 잡은채로 그냥 자버렸어요... 동생들이랑 아빠도 각자 방으로 들어가서 잤구요. 그게 지금 생각하면 너무 후회로 남아요..

저희 엄마는 그 상태로 6시간을 버티셨어요. 그 새벽에 암흑같은 새벽에 혼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그러고 나서 제가 한 아침 6시인가 7시에 일어나니까 그때까지 버티고 있는거에요 저는 놀라서 엄마 잠 아예 못잔거야 ? 왜그래 엄마 이러니까.. 저한테 자기 아직 안죽었냐고,, 너무 엄마가 안쓰럽더라구요..

물 한모금 안마시고 5~6시간을 버틴 엄마가 안쓰러워서 막내동생이 엄마 뭐라고 먹이려고 멜론을 미음처럼 갈아서 엄마에게 2~3입 정도 먹여줬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못 넘기더라구요.

저랑 동생이 낮 11시쯤 웃으면서 엄마~ 어제 밤에 한숨도 못잤잖아. 엄마 어제 안죽었어 살았어~ 내가 어제 말했잖아 엄마 아직 안죽는다고 그러니까 안심하고 푹자 우리가 옆에 있으니까 이렇게 말했던 것 같아요. 엄마가 그제서야 안심하고 그래 그럼 엄마 조금만 잘게하고 누웠던게 마지막이 됐어요. 그러고 바로 의식을 잃더라구요...

엄마가 눈을 뜨고 자니까, 그냥 우리말에 반응하지 않는 것뿐 그게 완전히 의식을 잃은건지도 모르고 저희는 엄마 상태가 심상치가 않아 원래 그날 가정 호스피스 선생님 오시는 날이 아니었는데 급하게 부르게 됐어요.

저희도 이제 우리 엄마가 얼마 안남았구나 이제 한 일주일 남았으려나 했는데 가정 호스피스 선생님 오시자마자 엄마 상태 확인하시곤 오늘 넘기는게 문제가 아니라 이제 몇시간 밖에 안남았다는 말이 너무 청천벽력 처럼 들려왔어요...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는건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며칠 남은거랑 당장 몇시간이라는거랑 또 너무 다르게 느껴지더라구요.

가정 호스피스 선생님이 가족 한명씩 방으로 들어가서 마지막으로 엄마한테 작별인사하라고 해서 저는 엄마한테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 , 우리 키우느라 고생했어, 그러고 자꾸 미안해 미안해 내가 미안해라는 말만 반복했던 거 같아요. 사실 엄마한테 원없이 할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당시에 뭐가 그렇게 미안했던 걸까요.. 전날의 죄책감이 자꾸 몰려와서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원래 엄마가 전날 새벽 1시 그쯤에 돌아가시는게 맞는데 저희 준비할 시간 주시려고 반나절을 더 버틴게 아닌가 싶어요.

그러고서 가정 호스피스 선생님이랑 동생들이랑 엄마를 위한 마지막 준비를 했습니다. 엄마가 좋아하던 팝송을 틀어주고 옷 다 깨끗히 갈아입혀 드리고, 기저귀랑 장루도 갈아드리고, 아로마 향이 나는 수건을 준비해주셔서 온몸을 깨끗하게 닦아드렸어요. 닦아드리면서도 계속 소름돋았던건,, 만약 전날 새벽에 작별인사하시고 우리가 잘 때 돌아가셨으면 이렇게 우리가 엄마랑 마지막 인사를 할 시간도 없었을 것이고,, 우리가 이렇게 마지막으로 엄마 씻겨드리지도 못했을것이라 생각하니 슬프면서도 진짜 우리 엄마답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ㅎㅎ

그렇게 간호사 선생님이 떠나시고 이모 삼촌들이랑도 폰을 엄마 귀에 대고 통화까지 다 시켜준다음에 정확히 몇시간후에 가족들 품안에서 편안하게 돌아가셨어요.

엄마가 그렇게 바라던 가정에서 편안하게 돌아가셔서 여한이 없지만.. 다만 엄마가 눈을 뜨고 돌아가셔서 많이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누구는 엄마가 눈 근육이 없어서 안감긴거라 하지만 딸인 내가 느끼기에는 마지막까지 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버틴거같아서 더 마음이 아픈거 같아요 ..눈이라도 편안하게 감겨드릴걸 .. 저도 동생들도 아빠도.. 가정 임종은 처음이라 엄마가 마지막에 잠드시기 편한 자세로 해드렸어야 되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원래는 눈도 미리 감겨드리고, 목에도 수건같은걸 대서 입이 안벌어지게 해야 된다는데..저희는 둘다 준비를 하지 못했어요.. 눈은 돌아가시고 난 직후에 바로 감겨드릴려고 했는데 안 감겨졌고 그나마 입은 저희 힘으로 어떻게든 해서 닫기는 닫았네요...

가정 임종 준비하시는 분들 참고하시길 바래요.

엄마 살아계실때 열심히 사진이랑 동영상만 찍고 막상 제대로 열어본적이 없었는데 지금 확인해보니까 우리 엄마 왜이렇게 말랐을까요. 지금보면 정말 우리 때문에 견디셨는데 당시에는 엄마 모습에 익숙해져서 몰랐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나마 잘했다고 생각이 드는건 엄마 뜻대로 가정 임종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겪어보니까 쉬운일은 아니더라구요. 사실 엄마한테는 가정 임종 후에~ 일어날 일들을 얘기를 안해줬어요. 경찰오고 형사오고 의사오고 이럴거 알면 남한테 죽어도 피해 끼치기 싫어하는 엄마가 안한다고 할게 뻔하니까요.

가정 호스피스, 그리고 가정 임종 결코 쉽지는 않은 과정이지만 환자가 간절히 원하면 저는 충분히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내가 엄마 뜻대로 안하고 병원에서 엄마가 임종했다면? 두고두고 후회로 남았을 것 같아요.

물론 저희집은 가족들이 많았기에 간병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지만. 사실 가정 호스피스도 담당 선생님이 매일 매일 오시는 것도 아니고 나머지날은 가족들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는 않습니다. 각자 장단점이 있는만큼 잘 생각하고 선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엄마 1년동안 투병생활하면서 잘 견뎌줘서 너무 고마워 . 엄마 젊은 청춘 바쳐가면서 우리 키우느라 고생많았고 다음 생에도 꼭 엄마 딸로 태어날게.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나는게 아니라 긴 여행을 떠나는 거라 생각할게.. 우리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 . 사랑해. ♥

Naver
목록으로

댓글

51
로그인 하고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