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의사 만나고 왔어요 & 오늘 있었던 작은 에피소드

킴미l대본
2024.07.11 13:07 | 조회 1.4k

어제 펑펑 울었다고 징징대는 글 올렸다가 많은 분들께 위로 받았어요.

너무 감사해요.

가족들이나 지인들과는 차마 나눌 수 없는 감정을 같이 투병하시는 분들과는 서로 안면도 없지만 나눌 수 있는 것 같아서 참 묘하고 감사한 감정이에요.

오늘 CT 결과를 들으러 의사를 만났어요.

폐 결절부터 얘기할줄 알았는데 CT 결과가 좋다고 말을 시작하네요.

폐에 결절이 있다던데? 했더니 음 그거 너무 작아서 별 거 아닐 가능성이 높아, 라고 하네요.

(전 해외 살아서 의사가 외국인이라 감안하고 봐주세요)

0.3mm 의 결절이라고 결과지에 나와있었는데 그 정도 결절은 어차피 조직검사를 할 수도 없고, 다른 검사를 해도 뭐가 나오지도 않는대요.

3개월 후에 다시 CT 찍을 때 여전히 있을지, 사라질지, 커질지, 보고 다시 얘기하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2022년 7월에 처음 간과 난소에 전이된 대장암4기 진단을 받았고, 수술이 불가하다고 해서 항암을 시작했었어요.

당시에 종양전문의, 대장전문의, 산부인과암전문의, 간암전문의 이렇게 4명의 의사를 만났는데 대장의사와 산부인과의사는 수술을 하자고 했고, 간의사와 종양의사는 불가하다고 했어요.

6개월의 항암 후에 종양 사이즈도 줄어들고, 종양표지자 수치를 비롯해 모든 수치가 다 안정적이고 좋아서 복강경으로 몸안을 들여다 본 후에 어렵게 수술이 결정됐어요.

대장과 난소, 자궁은 복강경으로 한번에 수술했고, 그 이후 다시 석달 정도 항암을 하고 개복으로 간에 있는 종양을 제거하고 비장을 떼어냈어요.

CT 상으로 비장에 비정상적인 모양의 종양이 있어서 제거한건데 제거 후에 조직검사를 했더니 악성이 아니라고 나와서ㅋㅋ 의사가 미안하다고 사과하더라고요.

뭐 암 수술이 잘 됐다면 비장 제거가 뭐가 중요하겠어요.

암튼 2023년 7월에 간 수술 이후로 지금까지 젤로다를 복용 중에 있습니다.

너무 다행히도 부작용이 크게 나타나는게 없어서 당분간 계속 복용할 예정이고요.

원발암이 대장암인데 정작 대장의사와 산부인과의사는 수술 이후 경과를 보기 위해 몇번 만나고 그 이후에는 다시 안 와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종양의사와 간의사만 주기적으로 만나고 있어요.

오늘 만난 의사는 간의사고요.

걱정했던 폐 결절 얘기는 3개월 후에 CT 찍고 다시 보자는 말로 끝나고 제 근황을 묻네요.

잘 먹니, 잘 자니, 운동은 잘 하니, 아픈덴 없니, 수술 자국 좀 보자, 벌써 1년이 지났네, 1년 동안 아무 일 없이 니가 이렇게 잘 지내는게 내게는 굉장히 impressed 하다, 케모포트는 제거했니? (안했다고 하자) 어떤 환자들은 케모 포트 제거하는걸 겁내기도 하더라 (내가 제거하기 싫은게 아니라 종양전문의에게 지난번에 물었을 때 당분간은 놔둬보자고 하더라, 대답함) 내가 종양전문의랑 얘기해볼게, 이젠 제거해도 될 것 같애.

폐 결절 때문에 재발을 두려워하며 만난 의사였는데 오히려 그 입에서 케모 포트 제거 이야기가 나오니까 어안이 벙벙했어요.

눈에 보이는 암은 없지만 언제 재발해도 이상할게 없는 상태라는 말을 들은게 엊그제인데 케모 포트를 이제 빼도 된다니.

이게 정말 현실인가 싶어요.

일단은 3개월 후에 CT로 폐 결절 상태를 확인한 후에 다시 의사들과 얘기를 해보려고요.

기분이 좋아서 병원에서 오는 길에 한국 마트 들러서 떡볶이를 사다 먹었네요. ㅎㅎ

전 몇달 전, 투병으로 쉬었던 일을 다시 시작했어요.

암 진단을 받고 1년 동안 항암과 수술 두번을 받으면서 다니던 직장도 관두고 집에만 있었죠.

몸도 몸이지만 이렇게 지내다가 정신병이 먼저 오겠다 싶더라고요.

두번째 수술 회복이 끝나고 더이상 항암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은 후 일을 시작했어요.

병원을 주기적으로 다녀야 하니 정규직?은 힘들고 내가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가게에서 시간제 근무를 해요.

손님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몸을 움직여 일을 하는게 너무너무 행복하고 좋아요.

오늘 한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손님 손목에 있는 종이팔찌가 눈에 익었어요.

제가 다니는 병원의 팔찌에요.

병원 다녀오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면서 *** CANCER INSTITUTE 에 다닌다고 대답을 하더라고요.

너무 반가워서 제가 나도 그 병원을 다닌다니까 손님이 깜짝 놀라면서 그럼 너도 암환자야? 하길래 응! 했어요.

그 손님은 자궁암 환자고, 수술을 할 예정이었는데 림프절과 혈액에 전이가 발견돼서 수술을 못하고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1년 전에 항암과 수술을 마치고 지금은 약으로 치료를 하고 있다고 말했고요.

치료 잘 받으라고 말했는데 갑자기 손님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리면서 "I am so scared." 라고 속삭이듯 작은 소리로 말하는 겁니다.

저도 모르게 손님을 안으면서 힘내라고, 잘 할 수 있을 거야, 라고 말하니 제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한참을 있네요.

이 동네 사람은 아니고 병원 때문에 지나다가 들른 거라고 했는데 다시 또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오늘 저와 나눈 짧은 대화가 그 손님에게 작은 힘이라도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가족이나 지인에게 못하는 이야기, 그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여기 동행 분들과 나눌 수 있는 것처럼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같은 병을 앓고 있기에 잠깐의 대화로 서로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투병 중이신 분들, 투병하는 가족을 돌보시는 분들, 모두 오늘 하루도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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