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대장암 3기) 4년차일상, 그리고 동행

이기자후후l대본
2024.07.29 11:26 | 조회 2.1k

마지막 글을 보니 제가 자그마치 2개월을 잠적했었군요....

동행을 소홀히하게 된 변명을 월별로 정리해보아요.

5월엔 제가 암진단과 함께 대학에 입학한 딸이 졸업을 했어요.

자고로 암걸린후 4년이 지났어요.

졸업과 함께 딸은 고등학교때부터 만났던 남친과

약혼을 하고 저희는 유대인가족을 사돈으로 맞이하는

가문의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어요. ^ ^

미국의 약혼식은 기승전 다이아몬드 사이즈라네요 ㅎㅎ

딸의 졸업식과 약혼식과 고딩친구들과 함께 한 졸업파티까지...

그리고 5월에 아주 중요한 이벤트 하나가 있었어요.

딸의 졸업식을 위해 보스턴으로 차를 가지고 가던중

뉴욕을 잠시 들렀어요.

뉴욕을 들렀어도 안들렀어도 되는 일이었지만

힘내라아님을 만나고 싶어서 우편배송을 요청할수 있었던 일을

굳이 픽업을 하겠다고 나서서...

힘내라아님을 만나러 가던 길은

미국내 최대 교통지옥을 자랑하는 뉴욕 맨하탄 한복판

언제나처럼 맨하탄은 걸어가는것이 차로가는것보다 빠른 그 거리거리를

떨림과 설레임...만나기도 전에 가슴벅차 차안에서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았던 탓에

차가 막히는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성격개조의 순간을 맞이할수 있었어요.

힘내라아님께서 예약해주신 근사한 맨하탄의 식당에서 마주친 순간

일단 저는 후더분하고

힘내라아님은 깔끔하고 단정하고

저는 시커멓고

힘내라아님은 새하얗고

저는 칙칙하고

힘내라아님은 밝고 빛났어요.

뉴욕의 식당은 겁나게 사람이 많고 시끄러웠고

그 와중에 사람 낯가림으로 최고봉을 찍는 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너무 오래 알고 지내온 사람을 만난듯

잔소리의 꼰대정점을 찍고

힘내라아님과 11시가 넘어서 헤어졌어요.

글에서도 다들 이미 느껴셨겠지만

얼마나 밝고 맑고 착한지 말로 다할수가 없는 사람이었어요.

너무 소중해서 헤어지고 나서도 매일 생각나는 사람이고요....

6월엔 학교를 갔어요.

마지막 학기를 빨리 마치고 싶어서

여름학기 수업을 들으러 갔지요.

그러니까 뉴욕찍고 보스턴찍고 거기서 뱅기타고 다시 노스캐놀라이나로...

아주 암을 아무렇지않게 여기는 건방진 스케줄이었어요. ㅠㅠ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들놈 전기 자전거를 사주고 가족들이 시승을 하면서

한명씩 타게 되었는데

난생처음 타보는 전기자전거, 내가 패달밟으면 속도 올라간다고 아무도 말안해주고

저는 그냥 자전거를 타고 하늘을 나르듯 달려가서

동네 전봇대를 박고 그대로 나가 떨어져서는

손뼈가 부러지고 온몸에 타박상을 입는.... 주체할수 없는 주책바가지가 되었어요.

허...참....

손가락 하나 부러져도 모든 일상이 멈추었어요.

컴퓨터 자판도 두들기지 못하고

전화기도 들수가 없고...

그럼에도 일주일 후에 있을 4년검진 ct에 매몰되어

손부러진게 뭐 어떻다고 하면서

진심 아무렇지도 않은 날들을 보냈고

4년검진을 무사히 통과하고도

동행에 글을 공유하지 못했어요.

4년통과하고 와인 반잔을 우리집 댕댕이와 함께....

이렇게 저의 4년은 흘러갔고

7월엔 남편이 새로 시작하는 사업장에

예상치못한 인력난으로 제가 일주일에 70시간을 4주간 묶여있는

불가피한 상황이 벌어지면서

정말 체력과 컨디션이 바닥을 쳤고

분노의 손절을 선포하고 저는 어제부로 자유의 몸이 되었고

손가락도 아직 완전하진 않지만

물리치료를 받는 수순까지 왔기에

가장 먼저 동행으로 달려와 글을 남겨요.

투병중인 동행 가족여러분..

시간은 가고 반드시 더 나은 날들이 올것입니다.

암진단받고 항암하는 동안은 잘먹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항암이 끝나고 나면 내 몸을 리셑한다는 생각으로

좋은것 건강한 생활에 집착했어요.

포란님과 루자매님의 구체적인 일상과 먼저 암을 이겨내신 분들의

좋은점들 배울점들을 최대한 발췌해서

건강하게 먹고 운동하고 건전한 생활했고

2년 지나면서 조금 헤이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나쁜 음식 멀리하고

운동과 건강한 생활을 이어가는 것은 어느새 제게 습관이 되어있었어요.

최근 2개월간 본의 아니게 바쁘고 정신없는 생활을 보내면서

절대 이런 분주한 환경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고

역시 치병은 "여유"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확신하게 되었어요.

저는 일관성있게 한가지 주장해요.

치병은 여유없이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

우리가 예전에 살던 모습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는 것.

이 기초를 탄탄히 하고 시간을 기다리다 보면

일상의 소소한 자유들도 선물처럼 주어지는 날들이 있다는 것.

지금 여러분의 모습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나아지고 있음을 잊지마시고

오늘 나자신의 아픈 모습에 절대 발목잡히지 마시고

더 나은 날들이 오고있음을 믿고 힘내세요.

처음 암투병할때 야아츠님께서 사모님과 와인 한잔을 했다는 일상글을 올렸을때

저는 그게 정말 먼나라 별의 외계인 일상처럼 멀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이제 제게도 그 작은 자유가 현실이 되었어요.

제가 4년 검진 통과를 하고 와인 반잔만 마셔도 될까 하고 고민을 하니

(사실 저희 주치의는 와인 한두잔은 전혀 상관없다고 이미 말했더랬어요)

예비 사위가 제게 단호히 힘을 주었어요.

"4년간 열심히 살았으니 와인 반잔 마실 자격있어요!"

자유를 누릴 자격,

우리의 노력이 그 자격을 만들어 간다는 것을 잊지말고

잘먹고 잘자고 잘싸고를 기본으로

식단, 스트레스, 운동.명상과 기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내 일상을 셑업하고

살아가도록 함께 노력해요.

이렇게 대장암 3기 환우의 4년이 지나가고 있어요.

제 치유의 앞에서 끌어준

제 치유의 옆에서 함께한

제 치유의 뒤에서 밀어준

이 모든 소중한 인연과 재료들을

'아름다운 동행'안에서 다 만났습니다.

야아츠님 이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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