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백일홍 - 박명숙 시인의 <익어가는 계절>

미카엘2015ㅣ설본
2024.08.06 16:40 | 조회 145

여름 볕에

익어가는 것들을 후숙시킨다

바쁜 일상에도

작은 행복을 만들어 내는 일이

익어가는 중이겠지

여름이 저물기까지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달콤한 땡볕이 내리쬐면

단단한 것에서 말랑말랑해지고

씁쓰름한 것들이 달콤하게 익어

향기를 품은 여름이다

그러니 무더위도

감사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숱한 그리움이 익어

외로움을 털어 내듯이

나의 청춘이 무르익어 간다

내 생에 향기가 배듯

박명숙 시인의 <익어가는 계절>

아침에 일어나 일기 예보를 보니 출근시간에 비 소식이 있습니다. 두세 시간 후에는 그친다고 하니 올여름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꽤 비싸게 준 판초우를 입고 출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판초우를 단단히 차려입고 막 출발하려는데 비가 후드득 쏟아집니다. 웬만하면 시원한 여름비 맞으며 출근을 하려 했지만 물 폭탄 수준으로 쏟아지니 감당이 안 돼 집으로 후퇴하여 비멍을 하며 지켜보았는데 아무래도 자전거는 무리라 판단되어 오랜만에 지하철로 출근해야지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지하철에 읽을 책이 없나 막내딸방을 두런거리다가 얇은 책 한 권을 집어 들었습니다. 책을 펼치는데 막내딸이 초록색 형광펜으로 줄쳐 놓은 글귀가 제 눈을 사로잡습니다.

“살다 보면 좋은 날도,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좋은 날을 즐기는 법과 그렇지 않은 날을 견디는 법을 배우며 살고 있다.”

아! 물가에 내놓은 천둥벌거숭이 아이마냥 철없는 딸인 줄 알았는데 나 모르게 힘든 세상을 견디는 법을 배우며 살고 있었구나 싶어 가슴이 짠해집니다. 그리고 우리가 힘겨워하고 피하고 싶어 하는 삼복더위에 단단한 것이 말랑말랑해지고 씁쓰름한 것들이 달콤하게 익어 가듯 그렇게 막내딸이 성숙해가고 있구나 마음이 놓였습니다. 또 어떤 구절에 줄을 그었을까 기대와 설렘으로 시원한 전철 안에서 독서를 하며 출근하였습니다.

오늘 보내드리는 사진은 출퇴근 오며 가는 길에 찍은 사진인데 특히 백일홍 사진을 여러 장 찍었습니다. 백일홍의 이름은 꽃잎이 시들지 않은 상태로 100일을 꿋꿋하게 버틴다 하여 百日紅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으며 서리를 몇 차례 맞고 나서도 꽃 모양이 변하지 않아 눈이라도 맞으면 설화로 다시 태어난다고 합니다. 백일홍도 수국처럼 참꽃과 헛꽃의 구조를 갖고 있으며 크고 화려한 헛꽃으로 곤충을 유인한 후 작고 노란 참꽃으로 수정을 한다고 합니다. 백일홍의 꽃말은 인연이라고 하는데 꽃 편지를 주고받는 우리의 인연도 참 특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일이 입추라고 하니 가을이 멀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힘내시고 삼복 더위를 즐기시거나 혹은 잘 버티셔서 올 여름을 무사히 이겨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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