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지 20여일이 되어가네요
이제야글을 씁니다
올해 50세 남편 딱 반백년 살다 떠났네요
늦은 나이에 갖은 우리 사랑스런 딸들이
처음 암이발견 당시
3살 6살 딸들이.,,지금 7살 10살이 되었고
정말 막막했던 암발병과 경제적으로
힘들었는데, 4년의 시간 잘버텨 주었습니다
발병당시 경제적 문제도 심각했는데
주변 친구들의 도움과
또 제가 직장이 있다보니
살아지게 되더라구요
정말 많은곳을 다니며
사진첩과
또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마음급히 헤어짐을 대비해
딸아이들에게 써준 일기형식의 편지..
미쳐 다 쓰지 못했다고 아쉬워 했고
일기장 편지에 붙을 각각 아이들과.찍은 사진들은
풀어보지도 못했네요
아빠의 손글씨 편지는 평생 아이들에게
힘이되어줄꺼라 생각이 들어요
항암중단하고 몇달은
정말 맘껏 먹고 좋았는데
6월부터 체력적으로도
열도 나고 안좋다가
7월초 통증시작 중순부터 약으로 겨우잡히고
황달 시작 복수 차는지 배가 조금씩 부르더니
그래도 7월26일까지는 딸아이랑
분식점 데이트도 했는데
7월말 겨우 걷고 기력 상실
식사 못함 ㅜㅡ
부랴부랴 전체 검사하고 배액관이든
조치가 이루어질지 알았는데...
삶을 정리하시라는 말과 제일 대기가 빠른 요양병원
호스피스의뢰가 끝 한달후 많이 안좋아질꺼고
다른데 있다 본원 오라고 했는데
그날이후 딱 일주일 살다 갔습니다
그이후
사실 동행에서 본 청색증
체온이 낮아짐 혀말림
모두 증상이 있었는데 스스로 아니겠지 했던거 같아요
그러기엔 아직 시간이 있다 착각했습니다
가기전 이틀전 밤에 갑자기 어머니 불러달래서 아무말없이 보고 아이들 편지 있는곳 알려주고
하루전에는 큰아이가 쓴 편지를 듣고
손에 쥐려고 설마나 노력 했는지...
힘들지만 누워있다 앉았다를 계속했고
앉아 있을때는 팔로 버텼습니다
무지한 아내는 집에서 버티고
본원 호스피스(대기9명) 가겠다며
그힘든 남편을 정말 힘들어진 시기 부터
그냥 조치없이 집에 두었습니다 ㅜㅜ
마지막 가기전날
그몸으로 제가 잠깐 나갔다온사이
혼자 기어서 화장실을 갔던 우리 남편
그래도 목욕시켜달란 맘에 몸도 씼기고
머리도 감껴주고 이불로 끌어 자리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새벽네 계속 일으켜달라해서
그러기를 반복하다
응급실을 가야하는데 어린자녀들도 자고있고
그날아침 일찍 병원예약되어있던터라(상태계속 안좋음 2주넘게 밥을 못먹어 2차병원이라도 들어가려고)
영양제라도 맞출려고 했던터라
참자 몇시간만 하고 저는 잠이들었습니다
이후 두시간후 눈을 떴을때
신랑을 떠났습니다
너무 허망하고 저자신이 죄스러워
정신이 멍하더라구요
아침에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아빠에게 인사 하게 하고
어머니 전화드리고
다행이 동행에서 가정임종을 지키셨던분이
썻던 글을 읽고 경찰신고부터 하였고
구급대의최종 사망 판단 형사님오시고
호스피스가려고 있던 서류가 있어
과학수사까지는 안하였네요
마지막 본원에서 말기암이라
숨차다 밥 못먹는다 해도 별다른
조치가 없었던 원망도 있지만
4년간 다녔던 곳에서 장례치루고
떠났습니다
우리는 집에 아빠 추모공간을 만들어
이야기도 하고 인사도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 저희 곁에는 없지만
늘 아이들한테
절때 끊어지지 않는
가족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어서
아빠랑 연결되어 있고 하늘에서
우리지켜 보고 지켜줄꺼라 했습니다
마지막에 너무 힘들었을텐데
나 고생할까봐 이를 악물고 참은 우리신랑
이제 편히 쉬어
우리 신랑!
사실 아직 아이들이 너무 어려 걱정이되긴해
작은아이 대학까지 가르키려면 15년 이상은
내가 건강해야 하니 나 건강하게 지켜줘
그러면 내가 어떤일을 하든 아이들과 먹고살수 있어!
너무 걱정하지 말고
편히 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