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정말로 아빠가 나아질 거라고 믿었어요.
지금은 혼자서 거동도 안되지만 체력만 올리면 항암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내가 꼭 그렇게 만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18년도 진단 후 수많은 이벤트에도 꿋꿋하게 다 버텨내셨거든요.
엊그제까지만 해도 힘내서 공원 산책하실 정도였는데,
돌이켜보니 아빠는 저 때문에 없는 힘을 쥐어짜내서 노력하셨던 것 같아요.
하루하루 말라가고 다리힘은 점점 떨어졌는데 왜 저는 똑바로 보지 않으려고 했을까요.
현실을 외면하면서 호스피스 신청도 안하고 집에서 아빠랑 복작복작 지냈어요.
그러다보니 진짜로 좋아지신 것만 같은 생각도 들었어요.
일요일 저녁 고열과 실신으로 응급실에 갔는데 패혈증이래요. 이삼일 지켜보자고 중환자실로 들어갔어요.
그땐 중환자실에 잠깐 들어간다는 말에 많이 심각한 줄 몰랐어요. 적어도 촌각을 다투는 일인지는요.
면회가 안돼서 월요일 화요일 피말리다가
낮에 예외적으로 면회를 열어줘서 일단 저랑 엄마만 중환자실 면회를 했어요.
온몸이 퉁퉁 부었지만 의식은 또렷한 아빠가 저흴 엄청 반가워 했어요.
혼자 외로이 있는 게 너무 고역이었다고요.
그래서 제가 아빠 심심하지! 힘내서 얼른 일반 병실로 옮기자! 아빠 나으면 내가 진짜 종일 놀아줄게! 사랑해! 하며 가볍게 말했는데 그게 마지막 대화였네요.
마지막인 줄 알았으면 제 속마음 제대로 표현했을텐데..
그 긴 투병생활동안 제대로 된 대화를 못해본 게 너무 마음이 아파요. 시간도 많고 기회도 많았는데 저는 아빠가 정말로 나을 줄 알고, 앞으로의 시간이 더 많을 줄 알고 미뤘어요. 시시껄렁한 얘기나 했어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아빠라고 말하지 못한 게 후회돼요.
제가 병원만 일찍 모시고 갔어도 며칠이고 몇달이고 더 사셨을텐데 하는 죄책감도 점점 심해져요.
항암을 안 하는 와중에 열이 나니까 호중구 문제는 아닐 거고, 감긴가? 하고 안일하게 여겨서 타이레놀 먹고 그 다음다음날에서야 열로 병원에 갔어요. 제가 왜 그랬을까요. 그동안은 그렇게 꼬박꼬박 응급실에 갔으면서요. 암환자한테 열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면서도.
염증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열이 바로 내려서 괜찮을 줄 알았어요. 해열제를 먹었으니 내리지..
너무 바보같았어요. 평생 가슴의 한이 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저 때문에 마음의 준비도 못하고 일찍 떠나신 것 같아요.
실감이 하나도 안 나요.
입원 생활 길어질 줄 알고 바리바리 싸둔 아빠 짐 어떡해야 되나요.
잠은 어떻게 자나요.
아빠랑 24시간 집에서 딱 붙어서 살았는데 저는 이제 이 집에서 어떻게 살아요.
넋두리 죄송해요. 잠을 못 자겠어서 하루아침에 떠나버린 아빠가 믿기지가 않아서 이렇게라도 풀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