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눈물날까봐 일기도 안썼는데
아빠 떠난지 2주정도 되는데 카페 생각나서 들어와봤다가 인사 남기고 갑니다.
가족중에 암이 처음이어서
병원정보나 응급상황에서 카페에 급하게 이것저것 많이 여쭤봤었는데
그때마다 따뜻한 댓글들 달아주셔서 많은 도움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언론마다 최악의 암이라 떠들어대던 그 췌장암
아빠가 췌장암에 그것도 처음부터 여기저기 전이된 4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지 벌써 2년이 조금 넘었네요.
첫 진료때 진료실에서
"그럼 저 얼마나 더 살겄슈" 라고 묻던 아빠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ㅠ
교수님이 "항암약 잘들으면 2년정도"라고 하셨는데,
정말 딱 2년하고 2개월 투병하고 돌아가셨네요.
지난 2년간 모범생처럼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
하루라도 더 살아보고자 애쓰던
마지막에 모든 항암제에 내성이 생기고, 간수치가 600에 달했을때도
주치의교수님이 오시면 Ts1은 괜찮아지면 쓸수 있는지 물어보던 우리 아빠
항암치료하며 아산병원을 함께 오갔던 시간들...
나중엔 항암치료하던 그 시간들이 그립다고들 하던데
정말 그럴것 같아요.
아산병원의 흐드러지는 벚꽃을 보면서
이게 우리가 함께 보내는 마지막 봄이 되는건 아닐까 하며
마음한켠 먹먹한 슬픔을 안고 애써 밝게 사진찍던 그날이 떠오르네요.
원래 무뚝뚝한 딸인데
아빠가 투병을 시작하고나서부터
본가에 가서 자는날이면 자기전에 아빠 볼에 뽀뽀를 해드리곤 했는데
처음엔 멋쩍어 하시더니
어느새인가 그 뽀뽀의식을 기다리고 있던 우리아빠가 사무치게 그리워요
2년간 그렇게 마음단단히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별에 완전한 준비는 없는 것이네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음악을 들으면
샤워하며 잠시 눈을 감을때면
그윽한 슬품이 밀려오며 눈물이 납니다.
마지막날까지
진통제 한알도 내성생길까봐 아껴먹고
대소변도 혼자 처리하고
그 고통스럽다는 췌장암을 호스피스까지 가서도 몰핀한번 안맞고 끝낸 우리아빠
아빠!! 너무나도 사랑하고 보고싶다.
살면서 문득문득 너무 생각나고 그리울거 같아.
사위를 처음 데려온날 술자리에서 섭섭해서 눈에 눈물이 고이던 우리아빠
애지중지 키운 딸 자취방에 보일러가 고장나자 퇴근하고 지방에서 서울까지 달려오던 우리아빠
아빠의 한결같은 사랑 너무나도 마음깊이 느끼고 알아
착하고 바르게만 살아온 이쁜 울아빠 좋은곳으로 잘 갔지?
그곳에선 아프지 말고, 먹고싶은것도 마음껏먹고, 잠도 잘 자길...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