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위암과의 동행 4년, 나눔

녹차2l위본
2025.04.19 16:40 | 조회 4.2k

저는 위암4기 복막전이 환자로 아산병원에서 임상치료 중입니다. 담당 교수님은 김00으로 류00교수와 여러 임상 연구에 참여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허투 음성, 클라우딘 음성으로 표적치료제는 사용 못하고 세포독성함앙제과 면역항암제, 면역항암제의 부스터 임상약으로 치료 중입니다. 3주마다 금요일에 항암 치료를 하고 월요일부터는 근무를 했습니다. 옥살리를 맞을 때는 주말 내내 심한 몸살을 앓고, 그 뒤 일주일은 오심과 구토, 구내염에 시달리며 거의 굶어가며(물과 죽으로 연명, 그 마저도 잦은 설사로 일주일에 3킬로씩 몸무게 줄어들었습니다.) 출근했습니다

50으로 시작한 몸무게가 40이 되고 곧 30대로 가려할 때 겁이 났습니다. 이러다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암환자가 살이 빠지면 악액질로 목숨을 잃는다고 하는데 내가 그 과정에 있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먹어야 버티는데 구내염으로 입안은 다 헐고 오심으로 울렁거리는 속으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처음 건강 검진으로 암진단을 알았을 때는 암 초기로 마음이 담담했습니다. 오랜 시간 마음 고생한 일도 많고 과로도 많이 했으니 아플만도 하지 하며 잘 치료 받으면 낮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아버지가 3년 전 먼저 위암 진단을 받으시고 수술 후 항암 없이 잘 지내시기에 저도 그럴 줄 알았습니다. 스트레스를 좀 더 받아서 조금 일찍 위암에 걸렸다고 생각하며 병원에 다니며 일상생활 하며 지냈습니다.

초기라 항암 치료를 안할 수도 있고, 아직 젊으니 공격적으로 수술 후 항암 치료를 할 수도 있는 선택지 중에 저는 항암을 안 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저도 아버지와 같을 줄 알았고 그리고 약과 주사를 원래도 많이 싫어해서 식생활 잘하고 운동하며 건강 관리하면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수술 후 1년 휴직 후 복직한 직장은 암환자라고 봐주지 않았습니다. 똑같은 업무, 비슷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3개월 지난 후 정기 검진에서 복막전이를 발견했습니다. 암 4기가 되고 항암치료로 임상치료를 권유 받았습니다. 동행에 임상치료를 할지 말지 고민이라 하니 많은 분들이 임상으로 기적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으니 꼭 하라고 하여 2024년 6월부터 임상치료를 시작하였습니다.

항암이 힘든 줄은 알았지만 직접 겪는 항암 치료 암환자의 삶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학생, 고등학생 두 아이의 엄마이고, 직장도 다니고 있었습니다. 먹는 항암제, 세포독성 항암주사제, 면역 항암주사제, 임상약에 항암치료 부작용 치료용 약들(오심구토 방지, 지사제, 진통제, 구내염 치료 가글...) 가방에는 약이 가득하고, 팔에는 주사로 인한 피멍이 가득했습니다. 그런 것보다도 더 힘든 것은 가족도 직장 동료도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고 혼자서 치료과정을 견디는 일이었습니다.

옥살리를 맞으면 손이 시려 찬 것을 못 만지는데 냉장고에서 찬 식재료로 음식을 해야했습니다. 몸무게가 많이 줄어 휘청거리는 몸으로 교단에서 수업을 해야했습니다. 저는 화학을 전공한 과학교사입니다. 제 수업을, 제 업무를 누군가가 해 줄 수 없고, 또다시 병휴직을 하면 다시는 교단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 버텼습니다, 그리고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학비도 필요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지쳐 쓰러져 있다 약을 먹어야 해서 죽을 데워 먹으며 울고, 오심과 통증으로 화장실에서도 많이 울었습니다. 그러다 옥살리가 부작용으로 빠지고 옵디보만 맞게 되자 조금 살만해졌습니다. 옥살리가 독하지만 효과도 좋아 암세포 크기를 많이 줄여준 터라 옥살리가 빠진 것이 불안하고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주사 맞다가 피부 발진과 발열로 급하게 멈추고 그 다음부터는 30분씩 옵디보만 맞으면 되면서 편해졌습니다.

침대에서 맞던 주사를 리클라이너에서 맞게 되었습니다. 주말동안 시달리던 심한 몸살도, 일주일은 괴롭히던 오심도, 밥 먹을 때마다 울게 만들던 구내염도 없어지니 세상이 밝아졌습니다.

고등학생인 둘째가 대학 갈 때까지 살고 싶다에서 대학 졸업 때까지로, 아이들 결혼과 손주 볼 때까지로 자꾸 욕심이 생깁니다. 새로운 약들이 개발되고 있어서 가능할 것 같습니다.

금요일이 주사 맞는 날이라 그 날 수업을 목요일에 하며 학생들에게 선생님의 작은 목표는 너희들이 고등학교에 가서 과학이 어렵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큰 목표도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연구자가 되고 싶었는데 피실험체로 임상에 참여하고 있으며 여러분들 중 혹시 과학자나 의사를 꿈꾸는 학생이 있다면 열심히 연구해서 꼭 사람들을 구하는 일을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울산대의대로 가서 의사를 하며 여러 임상 연구를 하는 담당교수에게도 ‘나는 과학 교육을 위하여 20년 넘게 헌신했고 연금 받을 자격이 충분하니 나를 연금 받을 때까지, 그 이후까지 살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지만 진료 시간이 짧아서 속으로 삼켰습니다.

30~40대 일 때 영재교육원 강사로 일하고 과학의 달이면 발명, 과학토론 등의 분야에 학생들을 지도해서 학생들도 상을 받고, 저도 상을 받았습니다.

제 업무가 융합과학이라 학생들 작품을 심사하고 교육청 대회에 출품하는 일을 하는데 얼마 전 학교 대표 3명이 모두 상을 받게 되었고 그 중 금상인 학생은 서울시 대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지도 교사에는 제 이름을 쓰지 않고 학교의 20대 선생님 이름을 썼습니다. 작년에도 올해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부장님께서 고생은 선생님이 하고 상은 다른 선생님이 받는데 괜찮냐고 하셨는데 정말 괜찮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제 학교에 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제가 열심히 해서 우리나라 과학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제 삶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행에 여러 나눔들이 올라오는데 저는 제가 가진 과학 지식을 나누고 싶습니다. 혹시 암투병하는 학생들 중 과학 공부를 하고 싶은 학생이 있다면 가끔 만나서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혹시 과학고를 지망하여 준비하고 있다면 조언도 가능합니다. 제가 아직 항암 치료 중이라 직장 생활만으로 힘들긴 하지만 토요일 하루 몇시간 정도는 낼 수 있습니다. 너무 먼 거리이거나 오랜 시간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공짜 과외 아닙니다. 교사가 과외하면 안됩니다. 과학 봉사 활동입니다. 만났을 때 제 차나 식사 비용은 제가 냅니다. 쪽지 주시면 연락드릴게요.(제 건강 상태에 따라 약속을 못 지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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