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깡패 같은 마음

녹차2l위본
2025.05.11 08:55 | 조회 895

내가 한사람의 가슴 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만약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수 있다면

혹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혹은 기진맥진 지친 한마리 울새를

둥지로 되돌아 가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만약 내가, 에밀리 디킨슨-

암에 걸리고, 전이가 되고 항암을 하면서 매일 죽음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꾸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한동안은 왜 암에 걸렸을까 원인을 찾아보며 나를 괴롭게 한 일들과 사람들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그냥 교통사고 같은 것으로 누구나 아무때나 걸릴 수 있고, 유전과 환경(물질, 스트레스)의 영향으로 생기는데 정확한 원인은 아무도 모르는 것(원인 미상의 신생물)이라고 생각하며 담담하게 치료중입니다.

하지만 극심한 통증으로 시달릴 때면 하늘에 대고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나한테 왜 이러시냐고, 열심히 산 죄 밖에 없는데 좀 너무 한 거 아니시냐고, 뭘 내게 더 주려고 이런 고통을 주시냐고...'욕하고 소리치고 싶습니다.(신자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저는 무교입니다.)

작년부터 항암을 시작했는데 작년은 둘째가 고3이었습니다. 처음 암진단 받고 수술했을 때는 첫째가 고3이었습니다. 추합을 기다렸으나 더 이상 전화는 오지 않았습니다.

재수는 필수라고 웃으며 아이를 달래고 방에 누웠는데 계속 눈물이 나왔습니다. 다른 엄마들처럼 제대로 못해서 큰아이도 작은 아이도 바로 대학에 못 보낸 죄인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아픈 엄마라서 미안했습니다.

그러다 밤 늦게 카톡이 왔습니다. 중3일 때 저희반이었던 ㅇㅇ이의 연락이었습니다.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고 감사하다고, 아프시다고 들었는데 조만간 찾아뵙겠다고

내 아이는 떨어졌지만 ㅇㅇ이의 합격 소식은 너무 기뻤습니다. 중3일 때 ㅇㅇ이는 자살 위험군 학생이었습니다. 손목도 자주 긋고, 한강 다리 돌아다니며 죽을 장소 찾아보는 학생이었습니다. 집안이 어려워 자기가 가장 노릇할 생각을 하는데 중3이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상담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상담 받다가 상태가 심각해 정신과 진료도 받으러 다녔어요. 진료 받기 전에 뭐 먹고 싶냐고 물으며 늘 햄버거 먹겠다고 했어요. 다행히 무사히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간간히 들려오는 소식에는 학급 임원도 하며 잘 지낸다고...

몸은 아프고, 아이 입시는 잘 안되어 허무하고 슬픈 중에 들은 기쁜 소식은 다시 힘을 내게 하고 자신감을 갖게 했습니다. 내가 잘 못 살진 않았구나, 내 삶이 의미가 있구나, 살아서 또 할 수 있는 일이 있겠구나.

항암이 한번 밀렸고 새로운 부작용 치료를 해야할 수도 있고, 잠깐 병가를 내야할 수도 있습니다. 괜찮다 괜찮다 스스로를 토닥이지만 가끔은 하늘에 대고 좀 제대로 보고 제대로 일하라고 소리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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