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아픈 이야기(길고 아픈 이야기이니 상태가 좋을 때만 보세요)

녹차2l위본
2025.06.25 11:05 | 조회 3.1k

어제 밤 해나무님 소식을 동행에서 보고 마음이 내내 아팠습니다.

동행 초기에 제 글의 댓글이나 올리신 글에서 보고 구독도 하고 있었는데, 얼굴은 모르지만 왠지 따듯하고 정 많은 분인 것 같아서 동행 모임에서 뵐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호스피스 소식 들으니 마음 쿵 무너집니다. 잠이 오질 않아 넷플릭스에서 레 콩바탕트 라는 시리즈가 끌려서 보는데 가족들을 적들의 총격에 잃고 하늘을 향해 절규하는 수녀님, 벌거벗고 숲을 헤매다 수녀님 품에 안겨 우는 패잔병의 모습이 더 마음을 무너지게 합니다.

안 먹으려 버텼던 수면제를 먹습니다. 한알이 아니라 2~3알쯤 먹고 깊게 오래 자고 싶은 유혹에 잠깐 흔들리다 정량인 한알만 먹습니다. 약은 역시 효과가 좋습니다. 5시간을 자고 일어나 그냥 누워 있으려다 산책을 나옵니다. 생각이 많을 때는 걸으면 음악을 듣는 게 가장 좋습니다. 요즘은 아침에도 1~2시간 걸어서 매일 1만~2만보는 걷습니다. 감미로운 음악들이 마음을 어루만지고 산책길에 만나는 작은 풀꽃들과 동물들에게 마음을 뺏기다 보면 시간은 훌쩍 지나버립니다.

어제는 포레스텔라의 음악들을 계속 들었는데 오늘은 그냥 제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대로 지니가 들려주는 대로 듣고 걸었는데 제 마음과 가사가 너무 잘 맞아 놀랐습니다. 인공지능인가?

어제 산책길에 만난 골든 리트리버를 또 보았습니다, 5살 하루라고 합니다. 내일 우리집 대추와 만나기로 했습니다. 둘 다 사회성 떨어지는 I형 강이지인데 둘이 만나서 어떻게 행동할지 많이 궁금합니다.

넌 알고 있나 끝난 사랑을, 만발했던 꽃 지는 걸

길 떠난 나비 꺾여진 날개를 보았나

사랑이 사랑을 버렸지

이별 후에 말하게 될 사랑한다

나의 고백 누구를 향한 울림 될는지

넌 알아주길

내 할일이란 지금껏 널 지킨 한 사람

믿음을 가꾸어 주는 일

봄날 꿈에 무성했던 붉은 입술

그 노래로 사랑의 시를 외던 그날은 날 살게 하리니

이별후에 말하게 될 사랑한다 나의 고백

누구를 향한 울림 될는지 넌 알것 같아

- 사랑이 사랑을 버리다, 임태경

영어 듣기 평가 시감을 들어가서 대기하는데 방송 준비 시간에 이 노래가 흘러 나와 가슴이 뛰어 숨을 쉴 수가 없었어요. 눈물이 막 흐르고 손이 떨려 간신히 시감을 마쳤어요. 쉬는 시간에 영어 선생님께 달려가 가수와 노래 제목을 물어본 후 임태경의 팬이 되어 뮤지컬도 보러 다니고 한동안 팬클럽에도 있었습니다. ‘길 떠난 나비 꺽여진 날개’ 라는 구절은 남편과의 결혼 생활이 힘들 때마다, 시댁 식구들의 막말에 상처 받을 때마다 마음을 흔들더니 암에 걸리고 복막전이가 된 지금도 마음을 울립니다.

공부만 하다 대학원 다닐 때 남편을 만나 처음으로 연애란 걸 해 보고 대학원 졸업 후 임용 되고 바로 결혼을 하였습니다. 겨우 선생 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냐는 친척들의 비웃음을 받으면서 남편 하나만 보고 결혼하였습니다. 옆방에는 시동생이, 앞방에는 시부모님이 계신 시댁의 방하나(얼마 전까지는 시할머니 방이었던)에서 신혼을 시작했습니다. 시댁 친척들이 오신 날 과일을 들고 들어가는 제 모습에 하시던 말씀들을 뚝 그치셔서 과일만 드리고 나왔지만 저는 들었습니다. ‘결혼 날짜 받고 어머니 돌아가신 걸 보니 제가 재수가 없다고, 사람이 잘 못 들어 온 것 같다고’ 비웃는 시어머니 말을 똑똑히 들었습니다. 시어머니의 남동생은 저를 볼 때마다 술 따르라고 시키거나 트집을 잡으며 소리치셨습니다. 왜 그렇게 저를 싫어하셨을까요? 제가 자기 아들이 가고 싶어했지만 못 간 대학을 나와서, 아니면 선생이라고 자기 누나 무시할까봐 그랬을까요?

이유를 모르는 악의와 미움은 평소에 잘한다고 칭찬만 받은 제게 너무 낯설었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일 때 돌아가신 저희 할머니는 제게 늘 다 잘한다고 아들이면 더 좋았겠다 하시며 예뻐하셨고, 부모님께는 늘 자랑스런 딸이었는데 시댁에서는 저는 살림도 못하고 아무 쓸모도 없는 천덕꾸러기였습니다. 개밥은 새로 해서 주시면서 퇴근하고 온 제게는 어제 남은 밥을 주시던 시어머니, 왜 그러셨어요? 밥을 주시는 것만으로 고마워해야 했을까요? 간난 아기만 혼자 있을 때가 있으니 산후조리 기간만이라도 강아지를 지인에게 쫌 맡기면 안되냐는 제게 막말한 시동생, 시아버지 왜 그러셨어요?

산휴 3개월 후 바로 복직해서 퇴근하면 아기를 돌보고 아기가 자면 문제집을 썼습니다. 잠이 부족해 힘들었지만 빨리 돈을 모아 독립하고 싶었습니다. 남편 월급은 시아버지, 시어머니 카드 값으로 다 나가니 혼자서 두 몫을 해야했습니다.

결혼할 때 친정 어머니가 주신 돈에 제가 모은 돈으로 드디어 전세를 얻을 돈을 다 마련했습니다. 아이를 안고 남편에게 ‘나는 이 집을 나가니 따라오든지 여기 남든지 알아서 해’ 하고 나왔습니다. 방 한칸이라 짐도 별로 없고 18평 낡은 아파트에서 신혼이 아닌 신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막말하는 자기 가족들에게 아무 말 못하는 영범이 같은 남편에게 정은 다 떨어졌습니다.

교사로 있으면서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워 영재원 강사를 시작했습니다. 아이들과 새로운 실험도 많이 하고 다른 학교 과학 선생님들도 만나면 숨통이 조금 튀였습니다. 그러다 한달간 외국으로 연수도 가게 되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에 가서 강의를 들으며 나도 거기에 있고 싶었습니다. 임용고시를 선택하며 박사 과정을 포기한 내가 버린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공부할 준비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귀국해서 속이 안 좋아서 혹시나 해서 약국에 가서 확인해 보니 두줄이 나왔습니다. 둘째는 태어날 때부터 많이 아팠습니다. 소아응급실에 입원해서 수혈도 받았습니다. 혹시 임신한 줄 모르고 비행기 타고 돌아다닌 제 탓인 것 같아 미안하고 미안했습니다. 아기 면회할 때마다 아기만 건강해지면 아무 욕심 안 부리고 발길 끊은 시댁에도 잘하고 착하게 살겠다고 기도했습니다. 둘째는 특수 분유를 먹어야 하는 아주 작은 아기로 퇴원해 집으로 왔습니다.

다시 왕래하게 된 시댁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당뇨 휴유증으로 병원에 입원한 시아버지 병원비가 거의 억대가 나왔는데(보험이 없습니다.) 시동생도 시누이도 모두 돈이 없다고 나몰라라 하고, 병원 영수증 보여주며 걱정하는 남편에게 제 통장에 있는 돈을 다 보내주었습니다.

시동생은 없던 돈이 시댁 집을 자기 명의로 돌릴 때는 막 나오는지 시댁 집 명의는 시동생으로 바뀌었습니다. 평생 부모와 형제에게 뜯기고 사는 병신 같은 남편이 싫어서 이혼할 결심을 했는데 아이들 둘에게 아버지는 있어야 할 것 같아 참았습니다. 시동생과 시어머니를 평생 안 볼 수 있는 값이 강남 집 한 채 값이라면 싸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못했던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고 야간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잡생각이 들 때는 바쁘게 지내는 것이 좋으니 몸을 많이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이제 머리도 굳고 눈도 침침해졌지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퇴근 후에 대학원에 가 수업을 듣고 새벽에 자는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매년하는 건강 검진에서 위암이 발견되고 처음에는 너무하다고 신을 원망하다가 아플만도 하지 하며 덤덤하게 받아들이다 재발 전이 되어 암4기가 된 지금도 좀 쉬라고 강제로 휴가를 주셨구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쉬니까 좋습니다. 항상 동동거리고 살았는데 욕심도 다 내려놓고 좋은 음식 먹고, 아름다운 풍경 보며 걷고,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행복하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신파 드라마, 막장 드라마 같은 이야기 어디 가서 못하고 여기서 합니다.

비오는 날 산책길에 들은 노래 가사가 너무 내 이야기 같아서

느린 걸음으로 그대가 다가와도

내가 더 서둘러 멀어지려 해보지만

벌써 늦은 걸 너무 잘 알아

설마하다 내가 그대를 원하잖아

빗물처럼 눈물처럼 내게 그대가 흘러

마른 내 가슴을 적시며 스며 들어와

지금까지 미뤄둔 한 가지

그댈 사랑하는 일

시작하고 싶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우리

다쳐버려도 아파도 좋으니

그대라서 그대여서 고마울 뿐이죠

아주 오랜 시간 나 하나 지켜준 사람

미안해요 이제야 알아서

미안한 맘보다 더

그댈 사랑할게요

그댈 사랑하니까

-이소정 그대라서(원곡:거미)

‘그대에’ 남편은 없습니다. 병원 진료를 따라와서 대기할 때 샌드위치에 커피 한 잔 할 때 감자 튀김을 먹는 남편을 보며 이 사람을 버리고 그 자리에 아이들을 앉히는 생각을 합니다. 아직은 아이들이 어리니 더 기다려야 할까요? 저를 버릴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고 컴퓨터를 하는 남편이 밉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합니다. 내 남편이 아니고 내 친구였으면 더 좋았을텐데... 이번 생에만 만나고 다음 생에는 절대 만나지 말자. 아마 내가 전생에 너를 많이 괴롭혔든지 나라를 팔았나 보다. 이번 생에는 덕을 쌓아 다시는 너 같은 인간 만나지 않기를, 아니면 아무 감정이 없는 돌멩이나 나무가 되기를, 아니면 그냥 바람이 되어 훨훨 날아가서 다시 시카고 미술관에 가서 미술품 앞에서 한참 머물고, UBC 박물관을 산책하고, 로키 산맥의 빙하를 다시 만나고, 레이크 루이스에서 잠시 쉬다 올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기를 신에게 기원해 봅니다.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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