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의 병가를 마치고 복직을 했고 한동안 동행에 못 들어올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가장 아플 때는 여기만 오게 되네요.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못하는 이야기를 이 곳 대나무 숲에서 하고 제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오늘 아침 여느 때처럼 새벽에 일어나 휴대폰을 확인했는데 제가 구독하고 있는 00님의 글이 올라 왔다는 알림을 보고 들어가 보았습니다.(동행에 계신 분이지만 다른 곳에도 글을 올리십니다.)
지난번에 조금 상태가 안 좋다하여 걱정했는데 임상약이 구토를 유발하고 암성 통증도 있는 것 같습니다.
나보다 나이는 훨씬 어리지만 나보다 1년 일찍 항암을 시작한 같은 위암 4기라 항암 선배로 같은 약, 같은 부작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의지하고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일상이 어려울 정도로 힘들다는 말에 마음이 또 쿵 무너져 내립니다.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운동화를 신고 나와서 무작정 산으로 갔습니다. 새벽이지만 벌써 밖은 환해지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비가 조금씩 오는 산길을 걸어도 걸어도 마음이 계속 아픕니다. 돌아오는 길에 문 닫힌 성당에 가서 문틈으로 보이는 성모님께 기도했습니다. 제발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출근하여 교실에 들어갑니다. 기말 고사 기간이라 시감만 하면 됩니다. 창 너머로 선배가 살았던 아파트가 보입니다. 많이 무뎌진 줄 알았는데 아직도 가슴이 아픕니다. 저 아파트를 안 보기 위하여 휴직을 안하고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제 1년만 더 버티면 다른 학교로 갈 수 있습니다.
제가 1학년 때 만난 4학년 이었던 선배는 꼭 교사가 되고 싶다고 졸업과 동시에 임용을 보고 교사가 되었습니다.
대학원에 가서 연구소에 갈까, 교사가 될까 고민하다 교사가 조금 더 편할 것 같아 선택한 저와는 시작이 다른 선배였습니다. 같은 관내에서 선후배로 다시 만난 선배는 엄한 스승이었습니다. 시험 문제나 학습지가 마음에 안 들면 많이 혼났습니다. 시험 문제를 수능 시험 문제처럼 내라고 하는 선배에게 불만도 있었지만 선배한테 잘 배운 덕분에 시험 문제 내는 것에는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학원 기출 문제로 돌아다니는 제 문제를 볼 때 부끄러움 보다는 저작권 무시하고 막 쓰는 학원가에 불만이 생길 정도로 애착과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세월호, 코로나 등 험한 시대를 살던 중에 선배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선배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서 우리 학교로 온 후배 교사가 복도에서 울며 전한 소식은 선배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장례식은 없었고 화장 후 유골만 파주의 납골당에 모셨다는 소식에 후배와 파주를 함께 가며 선배 이야기를 했습니다. 완벽주의자이고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대했던 선배 이야기를 나누며 꽃바구니 하나 두고 돌아왔습니다.
선배의 아들은 제가 있는 학교 옆의 고등학교를 나왔고 학교 창문으로는 선배가 살았던 아파트가 보입니다. 수업을 하다 문득 선배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묻게 됩니다. 아파트를 보고 싶지 않지만 실험실에서도 교무실에서도 교실에서도 아파트가 보입니다.
선배는 GD의 노래를 좋아하고, 콜드플레이 콘서트에도 갈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고 그림 보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이 노래가 흔한 이별 노래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 의미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너는 또 다른 나, 나의 영혼, 진짜 나가 아닐까 하고
요즘 혼자 내 마음을 바라보고 기도 하는 시간이 늘어 진짜 내 모습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세월에 지치고 변화된 내가 아니라 정말 본래의 내 모습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시험 문제를 풀고 있는 아이들 옆에서 선배에게 편지를 씁니다.
우리 죽으면 천개의 바람이 될텐데 선배는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 고향 바다에 있을까? 아니면 어느 미술관에 있을까?
나는 아주 나중에 따뜻한 바람이 되어 고향 산의 풀꽃 옆에 있다가 선배를 만나러 갈게. 우리 만나서 구름이 되고 비가 되었다가 같이 이탈리아나 스페인의 미술관에 가자. 옛날처럼 아무 것도 모르는 무식한 나를 혼내도 좋아.
그 때까지 평안하게 자유롭게 지내. 나는 아주 한참 뒤에 찾아 갈게.
아침 등산 길에 혼자 있는 오리 한마리를 보았습니다. 아빠 오리와 아기 오리들은 아직 자고 있는데 엄마 오리만 혼자 헤엄치고 있습니다. 나처럼 마음이 아파서 그런지 아니면 곧 일어날 아가들의 아침을 준비하느라 그런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