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남산 하늘 길 - 박노해 시인의 <서성인다>

미카엘2015ㅣ설본
2025.11.12 17:01 | 조회 120

가을이 오면

창밖에 누군가 서성이는 것만 같다.

문을 열고 나가보면 아무도 없어

그만 방으로 들어와 나 홀로 서성인다.

산뜻한 가을바람이 서성이고

맑아진 가을볕이 서성이고

흔들리는 들국화가 서성이고

가을편지와

떠나간 사랑과

상처 난 꿈들이

자꾸만 서성이는 것만 같다.

가을이 오면

지나쳐 온 이름들이

잊히지 않는 얼굴들이

자꾸만 내 안에서 서성이는 것만 같다.

박노해 시인의 <서성인다>

사시사철 꽃이 필 때나 낙엽 질 때나 한여름 비가 올 때 혹 눈이 올 때 언제 가도 편하게 걷기 좋은 길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주저 없이 남산을 꼽을 것입니다. 그런데 올해에는 남산 하늘길이 새롭게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는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다녀왔습니다.

서울역에서 내려 후암동 고갯길을 올라가다 보면 후암돈가스집이 있는데 이곳은 특이하게 평일만 그것도 11시부터 2시까지만 영업을 하는 집입니다. 지나칠 때마다 줄을 서있길래 언제 한번 맛봐야지 했는데 오늘 시간이 맞아 첫 손님으로 들어가서 맛을 봤습니다. 줄 서서 먹을 만합니다. 고기가 적당하게 두툼하여 씹는 맛도 있고 곁들여진 소스가 일품입니다. 재방문의사 100%입니다.

하늘공원은 남산도서관 입구 소월공원에서 시작하는 무장애 데크길이며 1.6km 도보로 40여 분 걸립니다. 그런데 경사도를 어찌나 잘 조절해서 만들었는지 계속 오르막임에도 전혀 숨이 차지 않고 편안해서 놀랐습니다. 어린아이들뿐 아니라 휠체어로도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을 듯합니다.

올해 단풍이 흉작일 거라고들 했는데 완전 오보입니다. 올해 단풍이 어찌나 맑고 투명한지 그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입니다. 아마도 하늘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물감통이 넘어졌는지 색이란 색은 모두 남산에 쏟아부은 느낌이 듭니다. ‘오메 징하게 단풍 들어 부렀네’ 어울리지도 않는 사투리를 연신 내 뱉으며 흥겨운 가을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가을에는 어디를 가든, 어떤 음악을 듣던 또 어떤 시를 읽던 마음이 설렙니다. 박노해 시인의 ‘서성인다’ 역시 그러합니다. 그리하여 내가 지나쳐 온 이름들, 잊히지 않는 얼굴들을 떠올리며 내 안에서 서성이게 됩니다. 첼로 연주로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 들으시면서 남산의 하늘길 풍광을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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