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버지는 올해 60세로 현재,
대장암 3~4기로 진단받아 항암하시다가 장폐색으로 장루수술하고 또 장폐색이 와서 콧줄을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2025년의 마지막 날 정희철 교수님으로 부터 항암할 체력이 안될 것 같아 항암 치료가 어려울것 같다고 했었고, 새해가 밝은 2026년의 첫날에 연명치료중단(DNR) 동의서 작성을 했습니다.
후술하겠지만, 장루를 했음에도 장루 이전 부분의 장폐색과 복수 차오름 등 복막과 간 전이 요소로 인해 금식을 한 달 넘게 한 상태이고 염증수치는 100~160을 왔다갔다 하며, CEA는 300을 넘고 CA 19-9는 12000을 넘어가는 상태였습니다.
그나마 비급여 프루자클라를 복용해 보자는 말이 나와 일주일 정도 먹었지만, 장폐색 등 여러 합병증으로 염증 수치도 높은데, 특히 묵어있는 대변이 장루로 매우 소량을 제외하면 변비약을 먹어도 나오지가 않아, 영양공급이 어려운것이 제일 첫번째였습니다. 이에 따라 볼살까지 쪽 빠지는 등 안 좋은 상태가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먹은 프루자클라도 일주일만 먹고 못 먹게 되었고 항암 중단이라는 판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현재는 통증이 심해 펜타듀르 패치 50, 모르핀 고정 수액을 25~30정도로 맞으며 잠을 자며 깨어있으면 통증을 느끼는 상태입니다.
더군다나 오늘 그나마 맞던 영양제 수액도 빼버리게 되었는데, 지금도 통증이 심한데 영양제 수액하면 더 아플수도 있다는 정희철 교수님의 말이 있어서 일반 수액만 맞고 있네요.
저희 아빠 너무 안타깝고 자식으로써 가족의 아픈모습을 보는게 가슴이 찢어집니다.
무엇보다 대변이 나올 수가 없으니 먹지를 못하고 물로만 입을 축이는 모습이 너무 허무해요. 상태가 안좋더라도 최소한 먹고싶은것을 먹일 수만 있다면 마지막이 보인다고 해도 이렇게 슬프진 않았을텐데..
영양제 투여를 중단하고 일반 수액만 남게 되었을 때 얼마나 버티실 수 있을지 너무 가슴아픕니다.
첫 발견은 지난 2024년 7월 건강검진때 대장내시경 진입불가한 종양이 있어 지역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았을 때였고, 곧바로 강남세브란스로 와서 구불결장(S결장) 암진단 등 절차를 거치고 김우람 교수님께 로봇수술로 원발 종양은 떼어내었었습니다.
그런데 수술하면서 보니 복막으로도 좁쌀 파종같이 전이가 된 상태이고, 그때 갑자기 대장암 복막전이의 평균적 여명 등 소신을 얘기하셨고, 수술이 가능한것 자체로 감사했던 저희 가족 마음이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그래도 예후가 좋다는 대장암이라 보니, 정희철 교수님께 항암을 이어나갔고 대장암 표준 항암제들로 2주마다 항암했습니다. 42년 근속에 퇴직 1년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고, 항암하고 좀 피곤하긴 하지만 충분히 직장생활 할 정도라 하셔서 대장암 표준 항암약을 3~4개월 주기로 바꾸긴 했었지만 버스타고 서울 오가실 정도로 몸 컨디션이 나았습니다.
그러다, 표준항암제를 다 썼는데도 종양의 큰 변화가 보이지 않았고 CT상 요관쪽으로 전이가 되어 수신증과 통증을 유발하는 환자의 양상도 있었기에, 신장을 살리기 위해 요관 스텐트 시술을 하였고 경구형 약으로 바꾸어 보자 하셔서 비급여 약제인 '론서프'를 처방받아 가정에서 하루 3번 먹고 2주마다 베바시주맙을 맞았었습니다.
론서프 특유의 부작용인 식욕부진 등 복용하고부터 식욕저하와 피로감, 무력감 등 많이 동반되어 점점 약해지고 힘들어 가는게 보였습니다. 그때부터 살이 빠지기기 시작하더니, 처음 강남세브란스 왔을때 78kg이었던 몸무게는 10kg이상 빠질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직장생활이 좀 힘들어 일단 휴직을 내고 병원을 갔을때 론서프를 먹은지 3개월 가량된 24년 10월초 까지 론서프 약조차도 잘 듣질 않아 다른 방법을 알아보겠다며, 복용을 멈추었습니다.
길었던 명절로 인해 강남세브란스의 기존 예약 날짜가 좀 밀리게 되었었는데 예약 날짜가 다 되어 갈때쯤 환자 본인이 배가 좀 아프고 변도 잘 안나온다고 했었습니다. 급한대로 약국에서 파는 변비약과 관장약 등을 이용해 변을 빼내기는 했는데 불편감을 사라지지 않았다고 하고, 제대로 누워서 자는게 어려워 머리를 높여 자거나 새우잠이 아닌 이상 아파서 못잔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강남세브란스 응급실로 와서 관장 등 시도했지만 아프기만 하고 나오지는 않더니 병원에서는 장폐색으로 변이 꽉 차있는 상태도 장이 곧 터져서 곧바로 사망할 수도 있다는 말을 했었고, 그렇게 25년 10월 30일경 저녁에 응급으로 장루 형성 복강경 수술을 진행하였습니다. 수술 및 종양내과 교수님들은 1년 전쯤 원발암 제거 수술한 에스결장 문합부에 종양이 자라나 변을 막았다고 했습니다. 중간 정도 위치에 장루를 결성하였는데, 형성한 부위 앞쪽에도 종양이 보이는데 장루보다 더 앞에서 막혀버리면 많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나마 수술 후 장루로 변이 주기적으로 나왔고 변비약도 복용해 최대한의 변을 빼내는 과정을 거치며 퇴원했지만, 며칠 뒤 집에서 38도 이상의 열이 나 지역병원에서 우선 염증치료를 받았습니다. 8정도의 염증 수치였고 요관이나 폐렴쪽염증으로 잡으며 2주 가량을 지역병원에서 치료했는데 퇴원한지 일주일 째 환자가 조금만 먹어도 배가 빵빵해지고 불편감이 크다고 해서 먼저 지역병원에서 CT를 찍어 보니 배에 복수가 차 있다고 했습니다. 간 등으로의 전이도 보이는 상태라고 하길래, 12월 경 곧바로 강남세브란스 응급실로 갔습니다. 이미 10월초부터 론서프 외 항암약을 강구한다고 한 달 가량 넘게 항암을 못하는 시간이 있었고, 가족들도 걱정했는데 결국 복수라는 말을 들으니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그렇게 12월초 입원한 날부터 우선 금식을 하고 변비약으로 최대한 대변을 내보내는 치료와 함께 항생제, 알부민, 수혈 등도 병행하였습니다. 대변이 물변이지만 점점 나오게 되었고 2주간의 금식이 힘들어 미음과 죽을 먹어보겠다고 교수님과 얘기한 끝에 점차 시도해보았고, 마침 프루자클라 복용에 대한 처방도 나와서 일주일간 열심히 치료했습니다.
더군다나 12월 말경에 저희 누나의 결혼식이 있다보니 혼주로써 딸의 결혼을 축복해주고자, 휠체어를 타고 참석했습니다. 답답한 병원에 있었다보니 반가운 직장 동료들과 친지들을 보며 행복해하시며 인사하셨어요. 진통제도 병원에서 외출 전 맞은 진통제 말고는 4시간 이상을 진통제 복용 없이 아프다고 하지도 않았고, 그게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작은 기적이었던 순간 같아요.
하지만 그 이후 정말 하루하루가 지나갈때마다 급격히 쇠약해지는것이 보였고, 대변도 녹색으로 소량 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왈칵 나오는 정도도 아닌것을 보고 정희철 교수님도 '우리가 많이 기다려줬다 더 이상 지체하기엔 영양공급 및 항암제를 쓰지 못해 치료를 못할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결국 맨 서두에 상술한것 처럼, 항암을 못하고 진통제 용량만 올리며 마지막을 바라보는 듯한 준비를 하고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뭔가 아버지가 1년이 조금 지난 시간동안 투병을 한것이 짧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동안 아버지도 직장생활로 가족들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했고, 가족들도 항암치료를 위해 같이 움직이고 간병해서 노력해왔네요.
가족들끼리 국내와 해외 여행도 가봤고, 무뚝뚝해 보여도 정이 많은 아버지와 친하게 지냈었고, 비서처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잡무 등 귀찮은것은 대신 해주고, 기력이 떨어져 쇠약해졌을때도 목욕하며 등밀어주고 같이 병원가서 치료받고 위로하는 등 아버지도 제가 있어서 너무 든든했다고 하더라고요 자기는 혼자서 이렇게 못했다고 하면서.
또 모두 못갈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본인 딸의 결혼식에 당당히 참석해서 앞날을 축복해주고, 잠시나마 행복했던 아버지 모습을 보여준 기적이 감사하더라고요.
그런 점을 뒤돌아 보면 마지막 순간이 언제 갑자기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러한 추억들이 이있기에 아버지께 못 해드린 점이 있어 후회한다는 슬픔을 억지로 라도 삼키려고 해요.
아름다운 동행에서 처음 글을 쓴것이라 그동안의 치료과정을 적어보고 싶어 양이 방대하게 되었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