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년 겨울 초..
할머니께서 급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으셨고..
항암을 하셔도 6개월에서 1년, 하지 않을 시 1-2달안에 먼저 떠나실 수 있다는 의사 소견이 있었습니다.
당시 할머니 나이는 86세로 급격히 컨디션이 나빠지셨었고, 주변 암환우 보호자 및 항암 중인 가족까지 포함하여 다양한 의견을 나눈 뒤 할머니께 별도로 병명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연세가 연세이다보니 쇼크가 올게 뻔했고 항암을 하다 결국 너무 힘들어 중단한 가족의 의견도 항암은 정말 쉽지 않은 길이라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과연 할머니 본인이 아닌 보호자들이 그럴 권리가 있냐고 물으신다면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희 가족이 가장 최우선으로 고려했던 것은 할머니의 편안한 마무리였습니다. 당시 아직 코로나가 유행이었고 급성 백혈병은 바이러스에 취약하다보니 여러모로 병원은 가족들의 접근성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가장 바라고 원하는 것은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해주실 수 있는 조취를 다 해주시고 추후 호스피스 병동에 가능 여부를 논의 한 뒤 할머니를 집으로 모셨습니다. 집이 분명 할머니께 가장 편안하고 안정적인 곳일테니까요. 이후 환자 배드를 할머니 집에 설치하고 산호기와 공기청정기, 그리고 간병인까지 세팅해서 가족들과 친척, 그리고 할머니 친구분들까지 언제든 방문해서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폐렴 증상이 생기시고 목에 가래가 끼어 병원에 다시 입원하거나 응급차를 부르기도 했지만 저희는 그때 그때마다 상황에 맞춰 대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꽃을 좋아하는 할머니를 위해 꽃시장에서 매화 가지를 사서 집에 놓아드리기도 했고 집이 가까워 저희 어머니는 매일 방문해서 암환자식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되는 가족들은 언제든 할머니를 뵈러 왔습니다. 설연휴에는 할머니 한복을 입혀드리고 가족이 모두 모여 윷놀이도 하고 다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할머니는 거동이 쉽지 않으셨고 친하게 지내던 가정 도우미 분과 오전, 오후 간병인을 구했고 혹시 모를일을 대비해서 할머니가 계신 공간에 홈켐을 설치해서 상시 할머니의 컨디션을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나 얼마나 빨리 흘러가던지... 저의 작은 소망은 꽃을 좋아하는 할머니가 벚꽃을 보시고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봄이 오고 벚꽃이 피었습니다. 날씨가 따뜻한 날이면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가족들이 다함께 산책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다들 할머니와 잘 헤어지는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봄이 끝나갈 무렵,, 할머니의 급성백혈병 진단 3개월 후 할머니는 저희 가족과 헤어지고 먼저 떠나셨습니다.
마지막에 할머니가 집에서 식사를 하시다 목에 걸리고 가래가 가라 앉지가 않아 응급차에서 시도를 했지만 결국 병원에 다시 입원하셨고, 그래도 다행히 1인실에 계셔 가족들이 틈틈히 방문하며 마지막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결국 마지막에 병원에 가셨을 땐 본인이 어딘가 아프다는것을 인지하셨다고 삼촌에게 들었습니다. 주말엔 간병인 대신 가족들이 같이 있었는데 그때 삼촌이 할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하더라구요. 할머니는 그래도 본인은 행복한 삶은 살았다며 충분했다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결국 할머니는 병원에서 돌아가셨지만 저희 가족은 지금도 집에 모셨던 것과 항암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없습니다. 작은 후회가 있다면 어쩔 수 없었지만 마지막을 병원에서 보내게 했다는 점입니다.
너무 건강하셨던 할머니가 어느날 갑자기 급성 백혈병에 걸리셔 짧은 3개월이라는 시간동안 가족들과 천천히 인사를 하며 헤어짐을 준비했습니다. 이런 글을 남기는 이유는 저희와 같은 고민을 하는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입니다. 제가 옮은 선택을 한것인지는 다른 선택을 해보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양한 이유로 먼저 보내본 경험으로,,,, 할머니의 충격으로 인한 쇼크 + 고령의 나이에 항암 부작용보다는 가족과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더 필요하다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치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