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직장암 3기 진단 받으신 엄마가 3개월만에 소풍 가셨어요..

김쩡l직보
2026.01.24 19:26 | 조회 3.7k

안녕하세요. 카페를 가입하고 글 자체를 처음 써보는거 같아요…

1월 19일에 갑자기 엄마가 소풍을 가셨어요.

목요일에 발인하고 장지에 모시고 오늘 삼우제라 엄마한테 다녀와서 몇자 적어 봅니다.

사실 너무나도 무지한 딸이라 여기 카페 가입해 놓고 잘 들어와보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외동딸 입니다.

남동생이 있었으나 태어나고 2달도 안되 하늘로 간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한테는 아픈 기억이죠..

저희 엄마는 한 평생 아빠한테서 고생만 하다가 가셨네요..아빠가 도박과 술로 저랑 엄마를 많이 힘들게 하셨습니다. 6년전부터 정신 차리셔서 지금은 정말 잘 지내고 계시지만요..

엄마는 한 평생 주부 셨고요.

엄마는 4살때 혀를 다치셔서 평생 말씀을 하실때 더듬으셨어요.. 그것 때문인지 일을 하셔도 항상 그만 두기 일수고, 주변은 아무렇지 않은데 혼자 자격지심에 사람들 만나기도 꺼려 하시고 사실상 친구도 없이 혼자 외롭게 사셨습니다. 아빠랑 제가 전부 였지만.. 저도 22살때부터 자취를 하였고, 5년 전부터는 천안에서 거주중입니다.

3년 전부터는 결혼도 해서 천안에서 쭉 거주중이네요.

부모님은 서울에 계셨고요..

아빠가 일용직 일을 한 평생 하셨는데, 25년 2월부터 일이 아예 없으셔서..집에 돈이 없는 상태였어요.

그래서 어찌 저찌 버티시다가 5월에 기초수급을 신청 하시고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아빠는 61년생이라 기초수급이 되지만 엄마는 64년생이라 일을 하셔야 한다고 하여 동사무소에서 간단한 검진을 하였습니다.

동사무소에서 고혈압 진단을 받아 가까운 내과를 가보시라고 했다네요.. 동네 내과를 가니 고혈압 진단도 받으시고 무엇보다 빈혈이 너무 심하다고 큰 병원을 가라고 하셨나봐요.. 그게 작년 8월입니다.

하지만 저희 어머님은 고집이 너무 쌔세요.

무조건 괜찮다고 별거 아니라고.. 큰 병원 가기 싫다고 계속 버티고 버티셨습니다.

저도 바보 같은게 엄마를 억지로라도 끌고 병원을 모시고 갔었어야 했습니다.

왜 그러질 못했을까요…

저도 작년에 너무 힘들었어요. 저도 2024년 3월 나팔관 양쪽 막힘으로 난임 진단을 받고.. 나팔관 양쪽 다 절제하고 24년 8월부터 시험관을 하였으나, 1차에 임신 되었지만 7주 유산하였고, 그 뒤로 25년 1월 7월 2번의 시도를 더 했지만 착상 조차 되지 않더라구요.. 그때 제가 공황장애가 심하게 왔었어요.. 그래서 부모님 챙길 겨를이 없었나봐요.. 이것도 다 핑계 겠지요..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작년 10월 20일에 엄마가 큰 병원을 가봐야 겠다고 하더라구요. 어지러움이 너무 심해서 안되겠데요..

갔더니 10월 23일에 직장암 3기 진단을 받으셨어요..

저랑 아빠는 치료만 받으면 완치 하실줄 알았어요.

11월 4일 임시 장루를 하셨고요.

교수님들이랑 상의 끝에 수술전 항암/방사선 치료를 먼저 하기로 했고..

11월 12일 부터 12월 17일까지 5주 동안 항암/방사선 치료를 정말 열심히 받으셨어요..

저희집에 차가 없는데 서울 신길동에서 흑석동까지 버스 두번 타시고 어쩔땐 택시로 이동 하시고, 61년생 아빠가 엄마를 모시고 정말 매일 하루도 빠짐 없이 치료 받으러 다니셨죠..

저도 첨에는 일주일에 3번씩 천안에서 서울 오가면서 엄마 아빠와 함께 병원을 갔지만 점점 횟수가 줄었어요.. 고작 5주 그냥 매일 서울 가서 같이 함께 할걸 지금 생각 하면 너무 후회 합니다.

엄마 처음에 임시 장루 하실때 엄청 속상해하셨고, 본인은 장루를 못갈겠다고 하여… 제가 일주일에 한번씩 집가서 갈아 드렸어요.. 계속 그냥 죽고 싶다는 말만 반복 하셨고, 처음 교수님들이랑 상의 할때 항문을 90퍼센트 못 살린다는 말을 듣고는 너무 우울해 하셨어요..

한 평생 말씀 더듬으며 사셨는데 장루 까지 평생 달고 사실 생각에 너무 힘드셨을꺼 같아요.. 장애가 두개 생기는거니까요.

12월 17일에 치료 다 끝나고 8주간 휴식기를 가졌다가 2월 둘째주쯤 수술을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12월 27일부터 엄마가 항암 부작용이 심하게 오셔서 설사를 엄청 하시더라구요..

그때 열이 39도까지 올랐는데 병원을 계속 안가시고 버티고… 병원에서 처방해준 빈혈, 설사약도 마다 하시고..

제가 26년 1월 7일에 서울 갔을때까지 병원을 안가시고 버티시더라구요.. 그날 제가 가서 엄청 화를 냈어요..

사실 1월부터 저도 다시 시험관을 할거라고 말하려 가려고 했던 날이였어요..

사실 작년에 공황장애 3개월 겪고 다시 천안 지역이 아닌 수도권 메이져 병원으로 옮겨서 채취가 잘 되서 다시 이식 기회가 생긴 상태였어요. 10월부터 이식 하려고 했으나 엄마가 암진단 받아서 잠시 중단 상태였는데 엄마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빨리 임신되서 손주를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하지만 엄마가 장루 하신뒤로 혼자 하려고 하지도 않고, 아빠도 안해주실려고 하고 요양보호사 불러 준대도 싫다고 하시고.. 그래서 1월 7일에 엄마 야윈 모습을 보고도 엄마 작은방에 누워 계신데 안방에서 아빠랑 큰소리로 싸웠어요..

아빠는 엄마가 다 죽어 가는데 시험관 꼭 해야 하냐 하고 저는 그럼 나 계속 이렇게 이식도 못하고 있어야 하냐고 나이도 점점 차는데 벌써 임신 준비한지 2년 지났고 난임도 1년반째라고… 아빠가 엄마 장루 가는거 배워서 해주면 안되냐고..

사실 12월 29일에도 집에 갔엇는데 그때도 아빠가 엄마 장루 못 갈아 준다고 해서 제가 엄마한테 장루 이거 혼자 가는거라고.. 엄마가 나한테 배워서 혼자 해보라고.. 엄마한테 가르쳐주고 싸우고….

그렇게 1월 7일에 한바탕 하고 싸우고.. 천안으로 내려 왔어요. 그게 엄마랑은 집에서 마지막이였네요..

1월 8일 엄마가 도저히 못 버티겠다고 해서 병원에 입원 하셨어요.

그리고 1월 13일.. 교수님들이랑 수술 상담을 했습니다.

다행이도 다른곳은 전이가 된곳은 없다고 하셨는데 (림프선이나 생식기쪽은 전이가 되었지만 간,폐,위, 그런 장기들은 전이가 안되었어요) 그리고 장이 많이 부어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상태로 음식을 먹어도 계속 설사를 할거라고..컨디션이 돌아와서 일주일 뒤에 퇴원을 하고 2월초에 다시 병원 와서 날을 잡자고 교수님들이랑 상담하고 병실로 갔는데도 엄마는 아무것도 입에 넣지 못하셨습니다.

마시는 음식? 물로 된것도 거의 드시지 않았어요..

제가 그날 마지막으로 엄마한테 한말이

“다른곳 전이 된데 없데, 엄마 수술만 하면 완치 되니까 제발 좀 먹어” 였네요..

그뒤로 1월 20일 일주일 뒤에 병원에 다시 오겠다고 하고 인사 하고 나온게 엄마 정신 있을때 마지막 대화 였어요.

1월 19일 새벽 2시반 위급하다고 병원에서 전화가 오더라구요.. 중환자실로 가야하는데 보호자 오시라고

아빠가 새벽에 다녀오고 연락 온게 호흡이 잘 안되서 중환자실로 가야 한다고 동의서 쓰고 왔다네요

면회가 1시부터 20분 밖에 안된다고..

그리고 아침이 되고 낮에 면회 하고 온 아빠가 하는말

오늘밤이 고비라고 모든 가족 다 오라고 했다고..

2월 둘째주에 수술 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울면서 서울 갔어요..

오후 5시반쯤 도착 했는데 임종 면회하고…

1월 19일 밤 9시 20분에 돌아가셨네요..

원인은 패혈증이라고 하네요..

장에서 균이 하나 발견 됬는데 그게 패혈증으로 와서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다른데 전이 된데 없다면서요..

2월 둘째주에 수술 한다면서요..

엄마가 너무 아무것도 안먹어서 일까요?

설사를 3주 이상 하셨더라구요..

패혈증의 초기 증상인지도 모르고 저희는 항암 부작용 설사인줄만 알았네요..

엄마의 거의 마지막 대화는 설사 때문에 너무 힘들어

이거에요..

저는 17일에 생리가 터져 곧 시험관 이식을 앞두고 있습니다. 17일에 병원갔다 왔다고 이번엔 다른 방법으로 이식 준비를 하게 되었다고.. 엄마한테 직접 말하고 싶었는데 엄마는 18일 일요일까지만 의식이 있었고, 19일 임종면회 할때는 의식이 없고 램수면? 상태라고 말하면 될까요.. 엄마에게 나의 마지막 기억은 아마 13일 화요일이 마지막이 아닐까 싶어요..

사실 13일에 병원 갔을때 2월초에 이식을 할거 같아 2월에 서울에 못올거 같다. 엄마 수술도 아빠가 보호자로 가라.. 이런 말을 했던 제가 너무 원망 스럽습니다..

임신이야 조금 미루면 될걸.. 왜 엄마를 슬프게 했을까..

엄마가 소풍가기 전 저는 외할머니 외할머니 친할머니 납골당을 두번이나 거쳐 다녀왔습니다.

납골당 다녀온지 4일만에 엄마가 돌아가셨네요..

저는 엄마에게 용서를 받을수 있을까요?

엄마는 천안으로 모셔와서 제가 당분간은 자주 찾아 뵐 예정입니다.

모든분들이 그러시더라구요..

엄마까지 수술하고 제가 이식을 하면 제가 너무 힘들까봐 먼저 떠나신거라고..

모든 환우분들 보호자 분들 절때 희망의 끈을 놓지 마세요. 제가 모든 분들 완치 하시고 행복 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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