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우리 삶에 우연히 나타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내 삶에 왔다가 금방 떠나고
누군가는 오래 곁에 머물지만, 그들 모두 내 가슴에 크고 작은 자국을 남겨 나는 어느덧 다른 사람이 되어있다.
당신이 내 삶에 나타나 준 것에 감사한다.
그것이 이유가 있는 만남이든,
한 계절 동안의 만남이든,
생애를 관통하는 만남이든
-류시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중에서-
쟈스민을 보내고 마음이 아플 때 위로가 된 구절입니다. 쟈스민 소식을 올리고 후회도 했습니다.
이런 소식들이 열심히 투병하는 환우들의 의지를 흔들리게 하고 힘 빠지게 할텐데 괜히 올렸구나, 혼자 슬퍼하고 애도할 것을...
그런데 쟈스민 따님이 쟈스민 아이디로 카페 들어와서 보고 많은 분들이 명복을 빌어줘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저는 씩씩하게 매 주 항암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호중구 수치가 낮아 파클리는 또 미뤄졌지만 면역력 낮을 때 맞고 감기나 폐렴 등에 걸리거나 지금보다 더 못 걷게 되는 것보다는 낫겠거니 하며 의사가 세심하게 알아서 하겠지 하면서 마음 놓고 있으려 합니다.
저는 요즘 꽃꽂이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수업을 끝까지 들을 수 있을 지도 모르고 손 다치면 안되는데 가시에도 찔리고 가위에도 베이고 해서 상처가 있지만 두려워서 아무것도 안 하기 보다는 하고 상처 받는 걸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작은 상처는 곧 나을 거고 꽃을 다듬고 꽂으며 내가 환자라는 생각을 잊게 되고, 집 거실에 꽃이 가득한 모습을 보며 행복감을 느낍니다.
얼마 전 타샤 튜터 전을 가서 보며 내가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정원을 가꾸며 개와 고양이와 함께 하며 가끔씩 손주들이 오면 맛있는 음식을 가득 준비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습니다.
어떤 드라마에서 전쟁 때 죽은 소년병의 장래 희망이 ‘어른’ 인 걸 본적이 있는데 제 장래 희망은 ‘할머니’입니다. 도서관 같이 다니며 책도 읽어 주고, 수학과 과학도 잘 가르쳐 줄 수 있는데 제 아이들은 아직 남자친구도 없습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 있는 엄마들~ 제가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곁에 오래오래 함께 하기를
한 가정의 가장으로 아픈 와중에 집안 경제도 생각하시는 분들~ 마음의 짐 내려놓고 회복에만 신경 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 젊은 이 삼십대 환자분들~ 이 고비를 잘 넘기면 삶의 소중함을 아는 훌륭한 어른으로 잘 지낼 거라 믿습니다.
수원의 성빈센트 병원에 따듯한 수녀님이 계십니다. 연명 치료 의향서를 쓰고 완화 치료 안내를 받고 집 주변의 호스피스 병원 중에 한 곳을 방문했는데 제 손을 너무 따듯하게 잡아주셔서 바로 성당 예비 신자 반에 등록 했습니다. 그 전에도 천주교에 대한 호감이 있었고 기도할 곳이 필요해 다니려고 했는데 수녀님 만나고 바로 집 옆의 성당에 갔더니 그 날이 예비신자 입교식 하는 주일이었습니다.
제 세례명은 가끔 문학 작품에 나오는데 제인 에어에 나오는 로체스터의 미친 아내와 이름이 같습니다. 원주민과 부호 사이의 혼혈로 태어나 귀족 가문의 차남과 정략 결혼해 다락방에 갇혀 지내다 집에 불을 지르고 죽었는데 열대지방에서 자유롭게 지내다 영국 귀족 가문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미친 게 아니고 체제에 반항하다 갇혔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그 아내 입장에서 쓴 소설도 있다고 하는데 찾아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