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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 5일 항암 부작용으로 엄마는 폐렴이 오셔서
급하게 응급실로 입원 하셨습니다.
4월8일에 중환자실에 내려가 집중 치료 받고 13일에
일반실로 올라오신후.. 14일부터 다시 급격하게
안좋아지기 시작하셨어요.
16일 저와 함께 병원에 있으면서, 엄마는
자기 스스로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걸 안것 같아요.
4년간 보호자를 하며 처음보는 눈빛으로
절 빤히 쳐다보셨어요. 엄마 눈에 저를 모든걸
담고싶어하는.. 그런 눈빛..
생전에 그러셨거든요.. 우리딸은 겁이 많아서 눈감을때도
너 걱정뿐이라고. 아마 제 걱정때문에 더 그런 눈빛으로
절 바라보신걸까요?
17일 오전 급하게 중환자실로 이동하면서
에어보 90에 산소 농도 100프로였는데도
산포도가 중간에 떨어지면서 같이
동행하시는 인턴선생님이 긴급으로 공기주머니가 달린
산소 마스크 씌우고 산소 짜주셨습니다.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저를 쳐다보며 버틴 엄마..
중환자실 문 열리자마자 바로 마취하며 인공호흡기를
다셨고.. 그날 저녁부터 이미 최고단계 승압제까지
썼지만, 혈압은 오를 기미가 없었습니다.
다음날 중환자실 교수님의 배려로 1인실로 이동후
가족면회하며 임종하셨습니다.
4년간 엄마 보호자를 하며, 한시도 떨어진적 없이
엄마 껌딱지였습니다. 제가 결혼했음에도
인생의 절반은 엄마였어요.
재발없이 잘 지내시던 엄마가 올해 1월에 갑자기
장폐색이 오시며 고생하시더니 폐렴으로 이렇게
급하게 가실줄 몰랐습니다..
임신하고 입덧이 심했을때 엄마는 제가 좋아하는
김치볶음밥을 가득 볶아 오시며
이렇게 건강해서 너에게 맛난걸 해줄수 있음에
감사하다 하셨었는데..
제가 입덧끝나면 맛난 밥 같이 먹자했는데..
입덧이 끝나자마자 엄마가 장폐색이 오고,
밥한끼를 같이 못먹어보고 그렇게 가실줄 몰랐어요..
4월18일 엄마의 임종날이에요. 2개월만 버티셨으면
그렇게 소원하시던 손녀 보고 가셨을텐데..
6월 다가오는 출산도 자신이 없어요..
출산이 다가오니 엄마가 더 사무치게 그리워요.
남들은 이 마음을 공감하지 못하겠죠.
왜냐면 세상은 변함없이 잘 흘러가요.
그런데 전 4월18일에 멈춰있어요. 뱃속 애기 생각해서
그러면 안된다고 하는데, 그게 맘 처럼 쉽지 않아요.
맘처럼 쉬우면 저도 이악물고 버티죠.
오죽하면 여기 카페에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심정으로
글을 남길까요..
남들도 다 특별하겠지만, 저는 엄마와 더 특별했던것
같아요. 4년간 회사도 그만두고 엄마 옆에서 항상 붙어
지내며, 열혈 보호자였거든요.
엄마가 딸 덕에 보너스 삶 산다고 하셨어요.
엄마는 전적으로 저에게 의지를 많이 하셨고
버티며 삶의 이유가 저라고 하셨어요. 그런 엄마를
제가 살리지 못한것 같아 죄책감이 들어요.
제가 신도 아니고 교수도 아니지만, 폐렴 전조 증상이
자꾸 있어.. 교수님 진료때도, 요양병원 입원해있을때도
폐 엑스레이 잘좀 봐달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더 어필해볼걸.. 마지막 항암을
체력때매 미루면 어땠을까? 후회만 남아요
엄마가 너무너무너무 사무칩니다.
다시 그 4월17일에 시간으로 돌아가 애기 걱정말라고
나 씩씩하게 잘 살겠다고. 아빠 동생 걱정말라고
엄마한테 말하고싶어요.. 아니 한번이라도 더
엄마 끌어안고싶어요.
곧 동생도 결혼을 앞두고 있어요.
우리엄마는 이런것들 때매 더욱더 살고싶으셔서
마지막 중환자실 가는 길에도, 버티고 잘 치료받고
나오겠다 하셨어요...
그때의 그 순간 공기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는 그때의 시간에 계속 머무르고있어요..
덜 슬퍼하고싶어요. 방법을 알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