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딸이 쓴 저의 인생 이야기

화이트l위본
2026.07.16 14:07 | 조회 1.3k

딸들이 독서 모임에 나가고 있어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부고 글을 써가는 과제가 있었는데 남편은 그런 걸 왜 쓰냐면서 거절했고, 저는 한 시간 가량 녹취에 응하면서 질문에 대답하는 식으로 자료를 제공했어요.

딸은 모임에서 좋은 반응을 받았다며 이번 기회에 엄마의 삶을 새로 알게 된 게 많았다고 합니다.

저도 그랬지만 부모는 필요할 때 당연히 곁에 있는 존재로만 알고 있을 뿐,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관심이 없었는데 결혼을 앞둔 딸과 이런 일로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제가 동행에 써왔던 글에서 이미 알던 내용이 나오는 게 포인트예요.

김씨 집안의 **은 1968년 경상남도 밀양, 낙동강이 흐르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딸 셋과 아들 하나인 네 남매 중 둘째로 자라며 피아노 소리와 노랫소리, 자매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집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형제가 많아 부모님의 관심을 독차지하지는 못했지만, 함께 웃고 나누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어린 시절 가장 오래 남은 기억은 아버지가 자신을 튜브에 태우고 물살 센 낙동강을 건너주던 날이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날 느꼈던 특별한 사랑은 평생 마음속에 남았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글을 쓰면 곧잘 상을 받았다. 한때는 작가를 꿈꾸기도 했지만 현실 속에서 교사의 길을 선택했고, 평생 수많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아갔다.

그녀는 잘 먹고, 잘 웃고, 쉽게 감동하는 사람이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좋아했고 사람들과 함께 웃는 시간을 사랑했다. 처음에는 차분해 보여도 입을 여는 순간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성격은 급했고 말도 빨랐다. 쉽게 욱하기도 했지만 오래 미워하지는 못했다. 화를 내는 것보다 웃는 날이 훨씬 많았고, 뒤끝보다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20대는 그녀에게 격랑 같은 시기였다. 취업과 연애, 결혼을 모두 해내야 했던 시대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냈다.

결혼 후에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혹독한 시집살이를 했다. 아직 철도 없고 세상 물정도 모르던 젊은 새댁은 어른들이 시키는 일을 묵묵히 해냈다. 빠르게 밥상을 차리는 법, 어른을 공경하는 법, 가정을 꾸려가는 법을 그렇게 몸으로 배웠다.

그럼에도 그녀는 남편을 만나 “인생이 행복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화려하거나 특별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선하고 안정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한 사람. 그것이 평생의 행복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깨달았다.

하지만 행복한 삶이 곧 편한 삶은 아니었다.

교사로 일하며 두 딸을 키웠고, 퇴근하면 남편이 운영하던 치킨집으로 달려가 손님을 맞고 치킨을 튀겼다. 몸은 늘 바빴지만 가족을 위한 일이라면 힘든 줄도 모르고 움직였다.

큰딸이 고3 입시를 준비하던 어느 날에는 위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딸이 흔들릴까 봐 끝까지 알리지 않은 채 수술을 받았다.

주말이면 남편과 함께 시골집으로 향했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의견이 부딪혀 다투기도 했지만 끝내 함께 집을 완성했다. 십여 년이 흐른 뒤에는 제법 솜씨 좋은 농부가 되어, 여름마다 직접 기른 제철 작물들을 가족과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일을 가장 큰 기쁨으로 삼았다.

암을 겪은 뒤에는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사람을 억지로 붙잡기보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브런치와 암 카페에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그녀의 글은 화려한 문장보다 사람 냄새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리고 웃겼다.

결혼 후에는 가족을 위해 누구보다 성실히 살았다. 워킹맘으로 바쁜 날들이 이어졌지만, 가족을 돌보는 일을 힘겨운 의무보다 사랑의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사랑이 사람을 바꾸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가능하게 만든다고 믿었다.

두 딸을 키우며 가장 자주 했던 일은 응원이었다. 아이들이 자신보다 더 넓은 세상에서 더 큰 꿈을 이루는 모습을 누구보다 기뻐했다. 딸이 이루는 성공을 자신의 성공처럼 자랑스러워했고, 늘 “너는 나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녀는 스스로를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노력도, 재능도 남들보다 특별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만큼 살아온 것이 늘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도 “앞으로도 더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다.”며 인생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았다.

잘 웃고, 잘 울고, 잘 사랑하며 누구보다 뜨겁게 살아낸 사람.

그 불꽃 같은 삶은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 줄 것이다.

서로 똑닮은 딸과 저의 공통점은 불꽃, 정열, 저돌, 격랑 등의 단어 없이는 설명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마찰이 자주 있었는데 따로 살고부터는 집안의 평화가 찾아왔어요.

딸이 살아갈수록 저를 이해하고 알아주는 것이 고맙긴 하지만 집 주위를 벗어나지 않고 '국이 식지 않는 거리'에 신혼집을 구하려고 하니 서로 불꽃을 조금 더 줄여야할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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