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중피종 진단 후 2년

다루l복중보
2026.08.19 12:25 | 조회 61

어느덧 병과 싸운지 2년이 되었네요!

그동안 많은 위로와 힘이 되어주었던 동행에 처음으로 글을 남깁니다.

한달 30일 중 20일 이상을 음주를 했던 저희 신랑..

그렇게 술을 먹으니 당연히 복부비만인줄 알았습니다.

2년 전 이맘때쯤 신랑배를 보는데 아무리 복부비만이어도 만삭의 임산부처럼 배꼽이 평면이 될 수는 없다고 강제로 보낸 병원에서 복수가 찼다고 큰병원으로 가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한창 의료파업시기라 병원예약이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웠어요. 어렵게 진료예약을 해도 올해 검사예약이 FULL이라고 6개월 기다리라는 말에 "사람 죽고나서 부검으로 진행할꺼냐고" 소리치고..

힘들게 받은 조직검사결과 복막암이라고 여기선 손쓸수없으니 서울 큰병원으로 가라고 했어요.

또 다시 시작된 병원 진료예약전쟁ㅡㅡ

그나마 암진단 받으면 우선예약이 가능하다고 해서 가장 빨리 예약되는 병원으로 갔더니 최종 병명은 이름도 생소한 '복막중피종'이었습니다.

최종 진단명을 듣기까지 거의 3개월이 걸렸네요

수술은 불가능. 진단명 들은 날 바로 항암시작했어요.

암사이즈가 줄어들면 수술해주겠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만 믿고 힘든 항암 버텼습니다.

복수가 너무 많이 차서 배액관을 제거할 수가 없어서 가방에 넣은채로 체력이 떨어지면 안된다고 산책다니고 원인불명의 염증감염으로 입퇴원의 반복.

체중은 15kg이상 줄고 제가 해줄 수 있는것은 없고..

차라리 요양병원에 있는것을 권했으나 가만히 누워있더라고 아이들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는 신랑말에 해줄수 있는게 음식,마사지 뿐이라 뭐라고 만들다 보면 입에 맞는게 하나라도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집에선 음식냄새를 풍길 수 없어서 밖에서 그나마 들어가는거 찾을때까지 음식만들어 나르고..

다시 생각해도 모든 보호자분들 위대합니다.

항암 9회차.

항암이 장기화될것 같으니 집가까운 병원에서 항암받는것을 권유받았어요.

초등학생 아이들만 두고 아침 첫비행기로 갔다가 막비행기로 돌아오는 일정이 쉽지는 않았던터라 3개월마다 사이즈변화 및 수술가능여부 확인하기로 하고 전원했습니다.

인생이 지루할까봐 자꾸 이런 시련을 주는걸까요?

전원한 병원에서 의사선생님 왈

"진짜 수술해준대요? 다시 한번 확인 해봐요. 항암말고는 해 줄 수있는게 없으니 우리한테 넘긴거네..의뢰서에 그렇게 적혀있어요. 연명치료라고 생각하세요"

설사 이게 현실일지라도 이렇게 적나라하게 말씀해주시는 선생님이 어쩜 이다지도 야속하던지..

정말 안해본거 없었네요. 민간요법..무술신앙..

없는 종교도 만들게 만드는 암이라는 병이 대단하긴 대단하네요.

항암 20회차.

인생 오르막이 있음 내리막도 있는거고 시련을 잘 버텨 줬으니 그에 따른 보상이었을까요?

지긋지긋하던 암이 사이즈가 줄었어요.

이정도면 수술해보시겠대요.

그런데 수술가능해지니깐 의사선생님이 말씀해주시더라구요. 솔직히 수술가능여부를 높게 보시진 않았다고..ㅡㅡ

작년 10월 12시간의 대수술.

8군데 완절제,6군데 부분절제.

저희 부부 그동안 한번도 서로 앞에서 눈물보인적이 없었어요. 화장실에서 샤워기 틀어놓고 울고 혹시라도 운거 티날까봐 하루에 세수를 몇번이나 했던지..

항암 부작용으로 힘들어할때도 나 입덧할때 심정 이제야 알겠냐고 신랑도 이정도인줄 몰랐다고 고생했다고...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우스깨소리로 버텼던 시간들..

제가 아무리 힘들어도 본인만큼 힘들 수는 없을텐데 제 앞에서는 항상 덤덤한척, 힘든 소리, 나 정말 열심히 산 죄밖에는 없는데.. 넋두리같은 하소연 한번 한적없던 남편이 병문안 온 누나앞에서는 그렇게 울었다네요.

ㅠㅠ

그동안 얼마나 그렇게 소리내서 울고 싶었을까요?

함암 30회

림프절 전이로 다시 항암 시작하고 염려했던일이 결국 일어났어요.

시스플라틴 부작용으로 결국은 신부전진단을 받았어요.

알림타 단독으로 총 항암 33회 진행하였으나 여기서 신장이 더 나빠지면 투석을 해야될 수도 있다고해서 결국은 항암중단.

이대로 암병변에 변화가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현재는 신장치료 시작을 했습니다.

2년이라는 시간이 저희 가족에게도 큰 변화를 주었습니다.

언제 어느 순간에라도 아빠를 업고 차로 갈수있게 열심히 운동 한 중학생이 된 큰딸(아빠보다 팔뚝,허벅지가 더 튼실해졌어요)

체온계, 혈압계 사용이 저보다 더 능숙한 초등아들(계란후라이를 저보다 더 잘하더라구요)

육아,살림,경제활동 철의 여인이 되었고 여전히 잠든 신랑 수시로 확인을 해야하고 숙면은 포기한 나.

여전히 해쳐나가야 할 일들이 산재해 있지만 마지막에 웃는자가 승자라는 생각으로 완치판정받는 그날까지 열심히 싸워서 이길겁니다.

동행에 계신 환우,보호자분들 모두 화이팅입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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