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즈음에 게시판에서 장롱을 옮기다가 예수님의 십자가상을 부러뜨린 회원님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다음날 정기검진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상경하면서도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답니다.
하지만 검진결과는 100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십자가상이 우상이었을 것이라고 축하의 댓글을 달아드렸습니다. 댓글의 뚯을 알아차린 그 분은 그렇다면 우상파괴에 공헌한 장롱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답글로 저를 더욱 재미있게 해주셨습니다.
우상과 성물을 혼동하는 경우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애굽땅을 떠난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 주님의 노여움을 받아 불뱀에 물려 죽어가던 때였습니다. 주님은 회개하는 백성들에게 모세가 들고 있는 놋뱀을 바라보면 낫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에게 구원의 믿음을 심기 위해 사용되었던 그 놋뱀이 그 후로는 사람들의 우상이 되었습니다. 놋뱀에게 절을 하고 제사까지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항암약이나 방사선치료기 앞에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의식이었습니다.
놋뱀에 대한 우상숭배는 히스기야가 유다의 왕이 되어 그 놋뱀을 부숴버릴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처럼 우상과 성물을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우상은 타파해야 하는 대상이지만 성물은 주님에 대한 믿음의 징표입니다.
그리고 그 성물의 주인이 존귀하신 주님이라면 정말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성경읽기는 주님의 성물인 언약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언약궤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 등장하기도 하여 일반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성물입니다. 주인공의 라이벌인 고고학자는 언약궤를 하나님과 통화할 수 있는 무전기라고 말합니다. 모세가 주님과 소통하였던 법궤이니 틀린 말은 아닙니다(민수기 7장 89절 참조).
그런데 그 고고학자는 언약궤가 여호와 하나님이 임재하신 주님의 성물이라는 것을 간과하는 바람에 처참한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이 그 법궤에 임재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결국 하나라는 삼위일체론에 입각하면 얼마든지 입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곧 성령이시고 그 초월적인 성령께서 그 언약궤에 분명히 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참고로 삼위일체론은 기독교의 기본교리로서 정통교회와 이단교회를 구별하는 중요한 잣대이기도 합니다. 이단교회는 대부분 삼위일체론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경을 왜곡하게 되고 교리가 조잡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삼위일체론의 기본정신은 사도신경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정통 기독교인은 예배를 드릴 때에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우리가 주님의 자녀임을 확인합니다. 따라서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꺼리는 집단은 모두 이단이거나 사이비로 보면 틀림없습니다.
여호와 주님이 임재하시는 언약궤가 보여주는 능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요단강을 가르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렸으며 팔레스타인의 다곳신상을 박살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언약궤는 고귀한 사람들이 타고 다녔던 가마처럼 밑바닥에 막대기를 끼워 제사장들이 어깨에 메고 운반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함부로 만지면 죽을 수 있다고 주님께서 단단히 경고를 한 성물입니다.(민수기 4장 15절 참조)
다윗은 유다의 왕이 되자 기랏여아림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오랫동안 보관되어 왔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오기로 합니다. 그런데 존귀하신 주님의 성물을 덜커덕 거리는 수레에 싣습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수레를 끄는 소가 뛰게되자 아비나답의 아들인 웃사가 그 법궤를 짐짝 다루듯 붙잡기 까지 합니다.
주님의 진노는 폭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언약궤를 만진 웃사가 그 자리에서 즉사해버립니다. 주님을 경외할 줄 몰랐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광경을 목격하고 두려워 하며 어떻게 해야할 지 전전긍긍합니다.
그 때 믿음이 깊은 오벧에돔이 언약궤를 자기의 집에 메고가서 세달동안 정성을 다해 섬깁니다. 그러자 주님의 노여움이 풀리고 오벤에돔의 집안에는 축복이 내리게 됩니다.
주님의 성물인 언약궤는 주님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성물을 허투루 대하는 것은 존귀하신 주님을 함부로 대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유다왕국이 무너지고 제사장들이 메고 다니던 언약궤는 사라졌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이 땅에 남기신 말씀과 약속은 우리가 더욱 존귀하게 섬겨야 할 소중한 언약궤가 되었습니다.
예전에 게시판에서 우리를 살려내신 주님께 감사하며 먼저 회개하고 죄사함을 구하기 보다는 빨리 병이나 낫게 해달라고 주님께 재촉하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주님을 원망하는 게시물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정말 불경스럽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존귀하신 분입니다. 주님은 그 자체로 목적이어야 합니다. 내가 있고 주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있고 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죽고 주님이 살아야 한다는 믿음이 생겨날 때 비로소 치유와 축복의 기적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 오늘도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언약궤를 허투루 다루었던 이스라엘 사람처럼 저도 한때 주님을 그렇게 대한 적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저의 허물을 용서하옵소서. 주님은 존귀하십니다. 주님은 강하고 선하십니다. 온 마음 다해 주님을 경외하고 오벧에돔처럼 정성을 다해 주님을 섬기고자 하오니 받아주옵시고 한없는 축복을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https://www.biblegateway.com/passage/?search=1+Chronicles+13&version=NIV
찬양하겠습니다.
주는 존귀하신 분.
Wothy of it all 입니다.
한국어로 찬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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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찬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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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존귀하신 주님
열방에서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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