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아버지의 투병일기, 그리고 아버지와 이별을 위해 준비했던 것들.

바니스
2021.03.16 16:53 | 조회 5.4k

안녕하세요 동행 가족 여러분.

카페에 가입하고 처음으로 인사드리는 것 같네요.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머나먼 소풍을 떠난 지 딱 한달 되는 날

동행 가족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고, 혹시라도 이 글을 보시고

위로를 얻으실 분들이 계실까 하여

이렇게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018년 7월

평소 병원과는 거리가 멀도록 너무나도 건강하셨던 아버지가

잦은 소화불량으로 인해 회사 사장님의 권유로 건강검진을 받으시곤

건강검진센터에서 대장암3기 이상일 거라는 진단을 받은 날입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대장암 소식에 당황할 틈도 없이

바로 진료협진요청을 각 병원에 넣었고, 너무나도 운이 좋게 며칠 뒤

서울아산병원에 예약이 되었습니다.

아산병원에서 최종 진단은 대장암 간/폐전이, 즉 대장암 4기 였고,

이후부터 아버지의 병과의 길고 긴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참으로 많은 항암치료와, 많은 수술들을 열심히 견뎌내시며

2020년 3월 '눈에 보이는 암이 없다, 모든 치료를 멈추고 3개월마다 경과관찰을 해보겠다'

라는 병원의 말을 들었을 때, 아버지와 부둥켜 안고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생신인 7월에는, 아버지의 나이대로 60여개의 초가 아닌

1개의 초만 꽂아놓고 '아버지가 새로 태어난 해의 생일이니, 아버지는 지금부터 새로운 인생을 사시는거다'

라고 말씀드리며 가족들이 정말 많이 좋아했었습니다.

3개월마다 경과관찰을 받으러 가시던 아버지가 두번째 경과관찰을 위해 외래에 방문한 9월

저는 직장출근으로 인해 아버지께 전화상으로 여쭤보기만 했고, '괜찮다. 3개월 뒤에 다시 보기로 했다'

라는 아버지의 대답을 들으며 또 한번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그치만, 암도, 인생도 참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더라구요.

3개월 뒤에 보기로 했다 라는 아버지의 대답과는 달리

저에게 며칠 뒤 아산병원에서 진료예약이 잡혔다 라는 문자메세지가 도착했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이 문자에 대해 무슨일인지 여쭤보았고,

아버지는 늦은 저녁 저를 따로 불러내어 상황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암이 다시 전신으로 전이가 됐고, 진행이 빨라서 더이상 모든 치료가 어렵다고 했다.

임상시험 개념의 약이 있는데 한달에 700~800만원 정도라고 한다. 나는 더이상 치료를 받길 원하질 않는다.'

아버지의 첫 진단 때 보다 눈이 캄캄해지고 세상이 모두 내려앉는 기분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몸상태도, 치료를 원하시지 않는 마음도, 그리고 받고 싶어하지 않는 이유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평소 유복한 가정이 아니라 늘 빚에 힘들어하고, 허덕이고 있는 삶을 사셨기에

월 700~800만원에 대한 치료비를 가족에게 부담하기 싫은 마음이 제일 크셨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체념의 뜻이 어떤 것인줄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했기에,

아버지에게 드릴 수 있는 말은 정해져있었습니다.

'아버지, 이제 우리는 잘 사는 법이 아니라 아름답게 이별하는, 잘 죽는 법을 함께 고민해야 할 것 같아'

이말을 드리면서 아버지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예약된 날짜에 저 혼자 병원에 방문하였고,

병원에서 들은 얘기로는 남은 여명이 6개월~1년 정도밖에 안되며, 더이상의 치료가 어렵기에

증상에 대한 억제를 진행하는 '완화의료'만 가능하다 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아직까지 통증도, 증상도 없으신데

잘못된 진단이 내려지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아버지는 이전보다 더 건강하게 지내셨습니다.

아니, 건강하게 지내려 노력하셨습니다.

매번 완화의료를 위해 아산병원에 방문하더라도 별다른 증상이 없었기에

병원에서도 '증상이 생기면 방문하셔도 되요'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또 지나 2021년 1월이 되었습니다.

최근 조금씩 소화가 되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바로 아산병원에 연락해 진료날짜를 잡고 병원에 방문하였습니다.

결과는 '간에 커진 암이 위장을 눌러 소화불량이 있는것같다. 이제는 호스피스병원으로 옮기셔야 한다'

참..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막상 들으니 또 숨이 턱 막혀 왔습니다.

거주지 근처인 원자력병원에서 호스피스 진료를 한다고 알고 있어

연명의료 거부를 위한 서류를 작성하고, 원자력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원자력병원에서는 '이런 환자의 경우는 보통 한두달 내외 사망하신다'라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와 다르게 또 아버지는 소화불량 외 다른 증상이 없으셔서, 진통제도 일반적인 진통제만 처방받고 귀가 하셨습니다.

그리고 올해 1월 30일, 저는 아버지와 해보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생애 첫 가족사진을 촬영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와이프를 데리고 스튜디오를 빌리고 옷도 빌려 한껏 멋을 부리며 멋진 표정들과 포즈로 사진촬영을 했습니다.

가족사진을 올리기엔 부끄러워, 아버지와 제 사진으로 대체합니다.

그리고 가족사진을 촬영하며, 아버지의 장수사진도 같이 촬영하였습니다.

평소 어두운 분위기가 싫은 집안 분위기 상 아버지의 장수사진도 최대한 딱딱하지 않게

멋지게 찍어드리고 싶었고, 결과는 생각보다 너무 좋게 나왔습니다.

아버지의 장수사진

그렇게 아버지와 꼭 해보고 싶었던 첫번째, 가족사진 촬영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체력적으로 조금 힘들어하셨으나, 사진을 찍는 동안 너무나도 행복해하셨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꼭 해보고 싶었던 두번째,

아버지는 평소 트롯 부르기를 좋아하셨습니다.

노래도 곧잘 하셨고 저희는 매번 아버지가 노래를 하실 때 마다 '도우미를 한두번 부른 솜씨가 아니시라며'

말씀드렸고, 아버지는 박수를 치며 좋아하셨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 라는 것을 알았을 때 아버지께 부탁드린 것이 있습니다.

'아빠, 주변사람들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5곡정도만 추려서 앨범녹음하자'

아버지는 고민 끝에 5곡을 추려 저에게 전달해주셨고

평소 음악 관련된 일을 하던 터라 집에 녹음장비가 있어

아버지를 모시고 녹음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녹음을 끝내고, 밤을 새어 아버지의 노래를 편집하고 CD를 제작하였습니다.

하나 하나 아버지와 하고싶은 일들을 완성할 때마다 후련함 보다는, 아버지를 보내는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많이 혼자 눈물을 삼키고 쏟아내곤 했습니다.

그렇게 2월 10일 수요일 오전 CD제작이 완료되었습니다.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에

아버지에게 CD를 보여드리며 자랑할 생각에 마음이 잔뜩 부풀어 아침부터 아버지 댁에 달려갔습니다.

아버지가 열심히 녹음하신 주변 분들을 위한 CD

근데, 아버지가 누워계십니다. 일어나시지 못하고 많이 힘들어하십니다.

갑자기 생기지 않던 황달도 생겼습니다. 그렇게 잠을 잘 주무시던 분이

밤에 잠도 주무시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등이 아프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저는 CD를 잠깐 보여드리기만 하고 아버지를 모시고 원자력병원 응급실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입원하셔야하고, 입원하시면 퇴원이 언제일지 기약할 수 없다' 라는 답변을 주었고

내일부터 명절이라, 많이 기대하셨던 아버지를 생각해보면 입원보다는 조금 더 댁에서 버티시는게 좋을 것 같아

일단 퇴원 후 다시 아버지를 댁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명절, 이전처럼 많이 웃고 떠들지는 못하지만, 방역수칙을 최대한 지켜가며

명절연휴 매일 매일 많은 기간동안 많은 분들이 아버지를 찾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의식이 있으신 상태에서 임종예배도 드렸습니다.

보통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드리지만,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아버지의 천국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품도록

우리가 모두 합심해서 기도할 수 있도록 진행하였습니다.

그렇게 14일 일요일, 마지막 오기로 한 손님까지 모두 보시고, 어머니와 와이프와 제가 밥상을 차리는 중에

아버지께서 의식이 소실되기 시작하셨습니다.

황급히 119를 불러 응급실로 모시고 갔고,

병원에서는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당장 내일 사망하셔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라며 상황을 전달해주었습니다.

그리곤 2021년 2월16일 오전 5시, 아버지의 시계는 멈추고,

아버지는 길고 긴 천국여행을 먼저 떠나셨습니다.

어떻게 참으신건지, 왜 버티셨는지, 그토록 보고싶은 분들이 많으셨던 건지,

보고싶은 분들은 다 보신건지, 가기 전에 아들 손한번만 더 잡아주시지,

아니 제가 아버지 손을 한번 더 잡아드릴걸..

혼자 얼마나 힘드셨을지.. 왜 이토록 짧게 아파하셨는지,

많이 아프셨는데 가족을 위해 내색하지 않으셨는지,

왜 조금 더 많은 것들을 하지 못했는지.....

많은 후회와 의문을 뒤로 하고 그렇게 아버지를 보내드려야 했습니다.

참 많이 슬펐습니다. 정말 많이 슬펐지만, 아버지와 많은 것을 이루진 못했어도

의미있는 것들을 많이 했기에,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아버지와 우리 가족이 행복했고,

주변분들이 모두 행복해 했기에, 그리고 우리는 구원의 확신이 있기에

아버지를 가슴 깊이 새겨두려고 합니다.

오늘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딱 한달 째 되는 날입니다.

이별을 위해 우리 가족의 분위기에 맞춰, 조금 다른 여러가지 들을 준비했는데

아직도 못한것에 대한 후회가 많네요.

아버지! 그곳에서는 춥지도 덥지도, 아프지도 불편하지도 않게 편히 지내고 계신지요

많은 것들을 해드리지 못해, 함께하지 못해 많이 죄송합니다.

그리고 정말 많이 사랑합니다.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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