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적었는데 눈물이 쏟아지네요.
저희 엄마는 11월 7일 산부인과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셨습니다.
검사결과 12cm정도 되보이는 큰 혹이 있었고 산부인과에서는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며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으로 연결해주셨습니다. 검사결과 종양의 모양도 안좋아서 악성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제서야 심각함을 실감한 저는 여러모로 알아본 끝에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카페에 가입하게 됩니다.
가입한날이 11월 12일이네요. 벌써 두달이 흘렀습니다. 아니 두달밖에 흐르지 않았습니다..
두달전에 경증 복통만 있던 엄마가 지금은 제 곁에 없습니다.
1월 18일 오전 5시 53분 저희엄마가 천국으로 가신 시간입니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을까요? 정말 딱 두달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천국으로 가시고 제가 드는생각은 딱 두가지 뿐입니다.
'후회' 그리고 '측은함'
제가 이토록 사무치고 그리운 이유는 엄마가 너무나도.. 너무나도 불쌍하고 여태까지 제대로 된 효도, 아니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한 제가 너무 밉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만한 저희 불쌍한 엄마 이야기를 잠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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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엄마의 증상을 얘기해보겠습니다.
엄마가 가끔 오른쪽 갈비뼈 아랫부분이 아프다, 배가 아프다 등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건 9월달이였습니다.
저는 건강에 조금 예민했기때문에 어떻게든 엄마를 병원에 데려가고 싶었지만 동생이 10월말에 전역한다는 이유로
엄마는 미루고 또 미루셨습니다.
그렇게 동생이 전역하고 2주정도가 지났을무렵 저는 계속 병원에 가보자고 얘기했고 엄마도 슬슬 가도 되겠다 싶으셨는지 병원에서 검사를 받으셨습니다. 저희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준비도 못한 상태에서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셨습니다.
저는 당시에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휴학처리되어있는 동생이 간병을 맡고, 저는 동행과 다른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찾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병원에 가서 우선 전반적인 몸상태를 알아야했기 때문에 정말 많은 검사를 받으셨고 암 뿐만 아니라 몸 상태가 좋지 않으셨습니다. 혈전도 있었고 심장도 안좋아서 주기적으로 심전도 체크도 하셨으며 빈혈도 있으셨기에 여러모로 치료를 받기 힘든 상황이였죠.
그래도 항암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항암을 시작하면서 많은 분들의 조언과 많은 분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플랜을 짰습니다.
식단, 운동, 생활패턴등 정말 많이 알아봤고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항암을 받은 엄마의 상태가 많이 안좋았습니다.
진통제는 먹어도 배는 아프지, 점점 복수가 차고 늘 열을 달고 사셨습니다.
매일매일 열이 났고 38도가 넘었으며 병원에 가도 결국 처방해주는건 해열제 뿐이였습니다.
한번은 새벽에 응급실에 갔는데 대기가 많다며 추운 밖에서 덜덜 떨다가 돌아온 일도 있었습니다.
엄마 밖에서 같이 운동하려고 준비한 항암두건, 모자, 손난로 단 한번도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식단 역시 엄마를 위해서 매일 야채수도 갈았고, 생각대로 안되다보니 야채수를 사서 드리고 밥도 잘 챙겨드셔야되니까 단백질도 잘 챙기고 해드렸지만 식사를 거의 못하셨습니다.
배가아프고 배가 나오니 음식 먹는걸 너무 두려워하셨죠.
그리고 피검사 결과 듣는겸 다시 피를 뽑을겸 병원에 갔습니다.
그 당시에는 항암 효과가 있다며 ca-125 수치가 줄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전 불행중 다행으로 투명세포는 아니겠거니 하고 안도했습니다.
2차항암을 받으러 병원에 간 날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ct 결과 항암을 받기 전보다 암이 너무 많이 퍼졌고 ca-125 수치가 다시 증가했다는겁니다.
처음에 pet ct를 찍었을땐 3기정도로 간에 1cm정도 되는 암이 두군데 보이는 수준이였지만 2차항암을 받으러 갔을때는 간에 벚꽃이 핀것처럼 암이 번졌다고 하셨습니다. 너무 절망했습니다. 교수님은 항암이 아니라 수술이 급하다고 하시며 수술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간은 수술할 수 없었고 난소에 있는 혹과 보이는 암세포만 제거했다고 하셨죠.
그 뒤는 항암에 맡겨야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주 더더욱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난소암은 투명세포인 것 같고 첫항암부터 제대로 듣지 않았으며 6개월 시한부 선고를 하시더라구요.
너무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죽고싶었습니다. 너무 착하고 너무 열심히 살았던 세상에서 제 전부였던 엄마인데..
뭐하나 잘해주지 못한 아들만 둔 엄마였는데 시한부라니... 전부 제탓인것만 같았습니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였습니다. 수술 부작용이라고 하셨는데 복부가 단단하고 많이 부풀었으며 (복수는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 , 림프부종이 심하게 오셨던거죠. 저희엄마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영양공급이 제대로 안이루어졌고 식사도 거의 못하셨기 때문에 상체는 너무 말랐고 하체는 너무 부풀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걷지를 못하셨기에 근력은 빠지기만 했고 거동이 너무 힘드셨죠. 엄마는 항암 시작전 (치료전) 몸무게는 52kg 셨고, 이상황까지 왔을때 62kg 까지 찌셨습니다. 그렇게 살이 빠졌는데 10kg가 찌신겁니다.. 복부가 팽창하고 림프부종으로 인해 이전보다 15kg 가까이.. 기존에 없던 무게가 생기신겁니다.
그렇게 고통속에서 항암을 받으시다가 엄마는 어디선가 표적항암 (아바스틴) 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아빠한테 한번 맞아보고싶다고 하셨더라구요. 근데 가격이 너무 비싸다며 받아도 될지 모르겠다고 하셨다는 엄마.. 그 얘기를 들으니 정말 눈물을 참을수가 없었습니다. 아빠는 걱정하지말라고.. 어떻게든 나을때까지 맞게 해주겠다는 아빠의 말을 들은 엄마는 정말 기대를 걸었고 너무 고맙다며 기뻐하셨답니다.
그렇게 3차는 표적항암을 시작했고 이틀뒤에 퇴원하셨습니다. 그게 14일입니다.
그때만 힘들지만 스스로 걸어서 화장실도 다녀오셨습니다.
15일이 되니 스스로 못일어나셨습니다. 일으켜드리면 화장실에 다녀오시는 정도는 되셨지요.
16일에는 거동이 거의 안되시더니 안아 일으켜드리고 이동식 변기를 가지고와서 해결해야하는 상황이였습니다.
17일이 되니 정말... 아무말도 안나오더라구요.
저는 뒤늦게 엄마가 표적항암에 희망과 많은 기대를 거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희망을 품었던 엄마가 그 기대했던 표적항암을 맞고 저렇게 몸이 안좋아졌으니 어떤 심정이셨을까요? 상상도 하기싫습니다. 이런 세상이 너무 끔찍합니다. 엄마가 너무 불쌍해서 숨이 넘어갈 것만 같습니다..
17일 저녁 8시쯤이 되자 엄마는 가쁜 숨을 몰아쉬셨고 식은땀을 흘리셨으며 눈쪽에 붉은 반점이 생겼습니다.
( 사실 수술 직후 2차 항암부터 엄마의 산소포화도가 낮았기에 집에서 산소발생기를 계속 사용했었습니다. 그치만 저날.. 숨이 정말 가쁘셨던 마지막 날은 포화도는 정상이였습니다. )
위험함을 직감한 저희는 응급실로 향했고.. 한명만 따라오라고 하셨기에 저희는 정말.. 별일이 없길 바라며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6시에 전화가 오더군요. 엄마가 천국으로 떠나셨답니다.. 그게.. 불과 그저께입니다.
오늘은 3일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날이에요.
저희 엄마 투병일기는 이러합니다.
두달을.... 정말 두달동안 편한날 하루 없이... 오늘 내일 할정도의 고통만 받다가 가셨습니다.
가슴이 찢어집니다.. 저한테는 엄마가 인생의 전부였습니다.
동생한명와 아빠가 있지만 아빠는 평상시에 가정적이지 않으셨고 술 좋아하고, 일밖에 모르셨기에 저는 하루에 아빠와 나누는 대화가 한마디밖에 안되었으며 동생과는 엄마가 아프기 전까지 사이가 안좋았어서 대화를 전혀 안하고 지냈습니다. 집에서 엄마가 돌보시던 치매할머니와 나누는 대화가 5%였고 엄마와 나누는 대화가 93%였습니다.
그만큼 저한테는 엄마밖에 없었습니다.
이걸 알고 있었기에 저는 엄마한테 잘했어야했죠.. 저는 그저 평범한 일상이 늘.. 엄마가 늙어서 노환으로 누우실때까지 계속될거라 믿었습니다. 너무 바보였고... 정말 자랑스럽지 못한 한심한 아들이였습니다.
엄마는 평생을 고생만 하셨습니다.
자식들도 이제 20대 중반인 성인이라지만 둘다 대학 졸업을 못했고.. 7년동안 치매를 앓고 계신 할머니를 집에서 케어하셨으며 자영업을 하시는 아빠를 도와 회사에서 정말 일만 하셨습니다.
회사에서 일하고 돌아오면 집안일에 할머니 케어에 자식들 뒷바라지까지...
그럼에도 저는 제대로된 효도 한번 못했고 엄마와 소중한 추억을 쌓지도 못했습니다.
엄마랑 하고싶은일들, 해주고싶은일, 같이 가고싶은곳................. 정말 너무 많은데
너무 허망하게... 너무 갑작스럽게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이제 어떡하면 좋을까요... 엄마는 겨우 58이라는... 너무 젊은 꽃다운 나이인데...
자식들 다 키우고 일도 접고 아빠랑 시골가서 행복하게 살아보겠다며... 그렇게 계획 세우던 엄마...
정말 너무 불쌍합니다. 엄마 핸드폰에 엄마가 직접 찍었던 셀카들.. 제가 귀찮다고 같이 산책 안나갈때마다 밖에서 정말 많은 사진을 찍으셨더라구요. 전 엄마가 사진찍는걸 좋아하시는줄 몰랐습니다.
여태까지 다니면서 사진한장 찍어드리지못했고, 동영상 하나 남기지 못했으며 평범한 대화를 녹음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나마.. 보험 문제로 녹음이라도 해두고자 설정을 켜둔 덕분에 항암하는 과정에서 통화했던 몇개의 기록으로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녹음을 키자마자 온갖 생각이 다 들더군요. 정말 제 인생에서 이렇게 후회라는 감정을 느낄거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엄마와 함께했던 일들이 24시간 끊이지 않고 생각납니다. 제가 못했던일만 생각납니다. 엄마가 실망했을 저의 모습만 생각이 납니다. 정말 엄마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앞으로 .. 아무리 못해도 30년은 더 볼거라고 생각했던 엄마를 이젠 볼 수가 없네요. 앞으로 엄마없이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할까요...? 자신이 전혀 없습니다..
엄마... 내가 표현은 못했지만 엄마는 내 인생에 전부였고 하루도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었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해서.. 이제서야 후회하고 반성하는 내가 너무 미안해
엄마한테 우리 지켜봐달라는 말 하는것도 정말 너무 미안하지만 난 엄마가 항상 우리 지켜봐주고 있을거라고 믿을거야.
나랑 동생, 그리고 아빠까지 여태까지 너무 고생만 시켜서... 정말 너무 미안하고 사랑해 엄마
천국에선 절대 아프지말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야돼.
지금 당장이라도 엄마 만나러 가고싶고.. 내 목숨 바쳐서 엄마가 돌아올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그렇게 하고싶지만 안되는거겠지?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살려고 노력할게.
그러니까 이젠 천국에서 편하게 쉬면서 우리 가족.. 끝까지 지켜봐줘
반드시 만나러 갈게 엄마 사랑해 정말 너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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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저도 예전부터 이런말을 들었습니다.
남는건 기록밖에 없다.. 하는말이죠.
정말 여러분들에게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
투병하는 과정의 모습이라도...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꼭 남겨주시고 엄마와 대화하는 순간을 꼭 녹음해주세요.
정말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
투병으로 고생하시는 모든 동행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