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9월 15일 자정에 돌아가셨어요. 장지는 양평에 수목장으로 했어요.
9월12일 요양병원에 갔다가 아버지 너무 심각한 거 보고, 퇴원시켜 응급실로 향했어요.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실 상태였는데도 가족이 요양병원에 면회올 때 까지 기다리신 거 같아요. 요양병원에서는 전혀 그런 말이 없었습니다.
고통스럽고 말씀 못하시는 상황에서도 요양병원 유리창 너머로 울부짖듯 저랑 같이 가고 싶다는 외마디 표현을 하셨어요. 제발 아버지를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저는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습니다. 죄책감에, 무능력한 못난 나의 모습에, 죽고만 싶었습니다.
응급실에 갈 거면 퇴원하라고 하더군요. 바로 퇴원했어야 하는데, 아버지를 모실 병원을 찾지 못해서, 호스피스병원을 찾지 못해서, 2시간이 또 흘렀습니다.
요양병원에서 퇴원하면서 알려준 사설 응급차, 정말 거지같은, 침대 폭40cm에 실려 아버지의 축쳐진 팔이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육체적 고통에 거친 숨소리, 아빠는 너무 괴로워하셨습니다. 드시지 못해서 송장이나 다름없는 뻣뻣한 육체에 힘겹게 생을 잡고 계신 아버지의 팔, 좁아 터진 침대폭에 의지할 지지대 없는 아빠의 팔을 받쳐드리면서, 30분이 걸려 성모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습니다.
응급실에 급하게 무작정 온 거라 곧장 입원하기 힘들었습니다. 사설 응급차 운전하신 분이 저에게 욕을 하더군요. 성모병원과 연락이 안 된 상태에서 응급실에 와서 오도가도 못하게 한다고,,,저에겐 당시 그런 모든 것들은 아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빨리 아버지가 떠나시지 못하도록 응급처치라도 해서, 저와 호스피스 병원에 같이 들어가 일주일이라도 같이 있을 시간을 가지는 것밖에는,,
돌이켜 생각해 보니 모두 제 불찰입니다. 저는 욕을 먹어도 싸다 생각합니다. 다만, 아버지를 짐짝처럼 굴리다시피 응급실 침대에 옮기고 황급히 가버린 그 상황이 마음이 아픕니다.
응급실로 향하며, 제발 호스피스에 같이 갈 거라고,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하면서,,,한심한 기도를 했습니다.
응급실 들어가시기전 그 장소에는 저밖에 없었고, 아빠 살아 생전의 마지막 얼굴이 아닐 거라고 나를 달래며, 얼굴 한 번 보고 손 한 번 만지고 사랑한다고 말씀드린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응급실 입구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던 10분, 아버지의 눈은 뒤로 넘어갔고, 숨쉬기 고통스러워 하셨고, 목을 뒤로 제치고 펴지 못하셨습니다. 아픔에 몸이 꼬였습니다. 저도 죽기전 그렇게 아니, 아버지보다 더 외롭고, 고통스럽게 죽을 겁니다.
응급실 입원 2일차에 호스피스병원에서 입원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너무도 기뻤습니다.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며 기뻐했습니다.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입원한 9월1일부터 추석연휴까지 13일간 죄책감과 나의 무능력에 가슴을 치며 호스피스병원에 같이 입주하기만을 기다렸는데,,,,좀더 빨리 준비하지 못하고, 기껏 요양병원에 죽어가는 아버지를 던져버리고 집에서 생각만 하고 앉아 있던 저를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아빠가 항암치료를 받지 않아 암등록도 하지 못한 것을 모른체, 어떻게 할지 생각만 했던 저를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아빠 조금만 힘내주세요! 제가 호스피스병원으로 같이 가서 가시는 길 같이 있을 거예요." 이 약속을 못 지켰습니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3일차부터 했던 아빠와의 마지막 약속조차 못 지켰습니다. 그랜저 사드린다고 했던 어린시절 약속이 늘 가슴을 아리게 했는데, 이 마지막 약속까지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병원비 걱정말라며 만원조차 못쓰게 하신 아버지,,,아빠, 아빠, 아빠,,,,
그렇지만 호스피스 입원 허락 받고, 집으로 가서 눈을 붙인 한 시간 쯤 후에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심정지가 오셨다고,,,임종면회를 왜 못했을까요. 아들도 있고 딸도 있고, 아내도 있는데,,,코로나라는 것을 죽이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15일 동안 사경을 헤매시면서 홀로 고통스럽고 외롭게 돌아가셨어요.
전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저를 빨리 데려가 주세요. 기도해 주세요.
아빠 다시 만나요. 그때 몰라봐도 좋으니, 이 곳에서 있었던 고통을 모두 잊으시고, 그 곳에서 행복하시기만을 바랍니다.
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