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결혼 15년 #4 - 헤어질 결심

쿠크리l위갑보
2023.12.05 00:27 | 조회 2k

여러분 안녕하세요

계절이 금방금방 바뀌는 걸 느낍니다.

마지막 글 올린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개월이 넘었네요

제목을 보고 지난 글을 떠올리며 놀라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다행이 저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잘 살고 있습니다.

굴욕에 아랑곳하지 않고 강약약강하는 저의 처세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이다 싶을 때 빛을 발하는 것 같아요 ㅋ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에겐 취미생활을 공유하는 한의원 원장님이 계십니다.

올 초까지만 해도 하루에도 몇번씩 전화를 주고받는 사이였는데

최근에는 저도, 그 원장님도 바빠서인지 예전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던 차에 지난 주 전화가 왔습니다.

프랑스에서 친구가 오기로 되어있고 오늘 길에 면세점에서 루xx통 지갑을 두어개 사온다는데

받으면 하나 줄 테니 대신 혹시 그 친구에게 선물로 줄만한 수집품이 없는지 넌지시 묻길래

저도 비슷한 수준에서 하나 추려서 보내드렸었죠.

왜냐면 저의 머릿속에 전광석화처럼,, 다가올 결기 선물로 안성맞춤이라고 쾌재를 부르면서 말이에요

저에겐 셀 수 없이 많은 단점이 있지만 그 중 단 한가지의 단점만을 꼽으라면

가끔 두목에게 잘 보이려는,,, 칭찬에 대한 지나친 갈증으로

일이 무르익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터트린다는 데 있죠..

“당신 이번 결기에 아마 루xx통 지갑이 하나 생길거야. 남편이 점심값 모아서 산 돈이니 감사하게 받아”

“점심값??? 웃기고 있네. 절대 돈주고 살 위인이 아닌데 어디서 난건지 똑바로 말하지 못해???

아,,정말 너무 억울했어요.

인사하고 뺨맞는 격으로 선물을 준다는데 이렇게 핍박을 해도 되는 건가요??

인간들이 표현하는 고차원의 언어와는 다른 외마디성 단어만 뱉고사는 사람이라 할 지언정

이렇게 말이 안통할 줄이야…

그렇게 1주간의 시간이 흐르고 연락이 오기로 한날이 오늘이었는데,,,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저녁에 원장님한테 전화가 온 것 까진 좋은데

그 친구가 지갑을 사오긴 했지만 너무 디자인/ 색상이 나이들어 보여

이런거 줬다간 욕먹겠다 싶어서 그냥 사모님 드렸다고 하는거예요.

“네???”

“그대신 내가 애들 먹일 총명환 보낼 테니까 이걸로 비긴셈 치세.

순수 국내산 원료로만 만들어져 값을 헤아리지 못할 물건이니”

저는 시무룩하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온갖 걱정이 몰려왔습니다.

눈을 부릅뜨고 결기선물을 기다릴 두목한테는 뭐라고 말할지

그러자 다시 전화를 해서 따질 용기가 솟았죠.

알았다고 하고 서로 셈을 마친 후 다시 그걸 뒤집는 건 경우에 맞지 않았지만

저는 그 지갑이 필요했고 때로는 필요가 경우에 우선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들려오는 건 이미 그렇게 끝내기로 합의 해놓고 그러면 어쩌냐고

정 언짢으면 총명환을 한통 더 보내준다는 답만 돌아왔습니다.

하아,,두목의 부릅 뜬 눈을 떠올리면

한겨울 고드름 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목덜미에 닿은 것처럼 오싹합니다 ㅠ

하지만 다시 두목이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면

저는 물방울이 가져오는 오싹함 정도는 오히려 그리워 할 처지가 되겠죠..

몇 시간의 고민 끝에

저는 원장님을 희생양으로 삼고 이 난관을 벗어나기로 했습니다.

누군가가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인간이란 참 약한 존재여서.

누군가를 배신해야 한다면 두려운 사람보단 자신에게 잘해줬던 사람을 배신하기 마련이라구요.

이렇게 원장님과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헤어짐을 강요받을 상황에 처했네요.

이 와중에

유전자의 반란인 듯 갈수록 날씬해지는 윤이 사진 몇 장 투척하고 갑니다.

(문제의 총명환 사진과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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