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달력 한 장이
작은 바람에도 팔랑거리는 세월인데
한해를 채웠다는 가슴은 내놓을 게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자고 다잡은 마음이었는데
손 하나는 펼치면서 뒤에 감춘 손은
꼭 쥐고 있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비우면 채워지는 이치를 이젠 어렴풋이 알련만
한 치 앞도 모르는 숙맥이 되어
또 누굴 원망하며 미워합니다.
돌려보면 아쉬운 필름만이 허공에 돌고
다시 잡으려 손을 내밀어 봐도
기약의 언질도 받지 못한 채 빈손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해마다 이맘때쯤 텅 빈 가슴을 또 드러내어도
내년에는 더 나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데 어쩝니까?
오광수 시인의 <12월의 독백>
오랜만에 서촌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이곳을 다녀온지 꽤 시간이 지났는지 낯선 건물들이 몇채 보입니다. 서촌에 가면 빠지지 않고 홍건익 가옥에 들렀다가 오곤 합니다. 북촌 백인제 가옥보다 규모면에서는 작고 볼 것도 덜하지만 늦가을에 들리면 관리하시는 분이 모과를 나눠주기도 하고 무엇보다 찾는 사람이 많이 않아 늘 한적해서 좋습니다.
서촌나들이를 가면 카이센동으로 유명한 사토루라는 일식집을 들리곤 하는데 오랜만에 식사를 하고 난 후 왜 여태 여기를 안왔나 후회가 될 정도로 맛이 훌륭했습니다. 식사 후 근처 작은 갤러리에서 ‘그리는 기도전’ 구경도 하고 경복궁 내 고궁박물관에서 ‘활복’ 전시회도 보고 왔습니다. 활복이란 일종의 전통 혼례복으로 전 세계적으로 50여벌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우리나라의 전통유산이라고 하는데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무늬와 색상에 입이 딱 벌어질 정도였습니다. 제가 소개한 곳은 다 무료이니 시간 나시면 꼭 서촌 나들이 해보세요
‘그런데 말입니다. 내년에는 더 나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데 어쩝니까?’ 라고 하는 시인의 마지막 구절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삐죽 비어져 나오네요 아마도 저 역시 같은 마음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그나저나 저의 꽃편지 받으시는 모든 분들 내년에는 모두 대박날 것 같은 마음이 드는데 어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