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약 3주 전에 아버지의 육종간암과 6개월 시한부 선고 받은 글을 썼던 딸입니다.
그땐 6개월이란 시간이 원망스러웠는데, 3주가 지난 지금은 이제는 6개월도, 아니 3개월도 감사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퇴원 후 3주의 시간동안 정말 많은 고통스러운 일들이 지나갔네요. 퇴원 하고 고향 집으로 오던 날이 기억 납니다.
병원을 떠나 집으로 오면서 아버지는 힘들지만 많이 웃으셨습니다. 집이 좋다며. 경주가 좋다며. 그리고 내가 좋다며 웃으셨어요.
그렇게 일주일간 집에서도 최선을 다해 간병했습니다.
먹는 것이 제한이 되니까, 그 중에서라도 최대한 맛있게, 다양하게 먹었으면 해서 모든 음식과 마시는 것 까지 직접 했습니다. 기본 죽과 국 그리고 반찬 서너개를 매일 다르게 했고, 지인분들께 들어오는 과일을 전부 손으로 착즙해서 냉장고에 준비해뒀어요. 귤주스, 배주스, 딸기주스, 수박, 사과 등등 먹는 걸로 스트레스 받지 않았으면 해서 하루에 주스 2개 이상은 꼭 갈아 뒀고, 이가 좋지 않으니 매일 감자, 고구마, 밤을 쪄서 뒀습니다. 스물 일곱에 요리는 줄곧 했었지만, 이런 환자식의 건강한 요리를 해본 적이 없다보니 순탄치는 않았어요. 그래도 노력을 알아주듯 아버지의 상태가 일주일간 좋아졌어요.
그러다 외래진료가 있었습니다. 퇴원 후 일주일이 지나고 11월 29일. 경주에서 서울까지 왕복 9시간의 장거리 외래진료가 아버지에겐 너무나도 큰 .. 고난이었습니다.
너무 후회됩니다. 외래진료를 다녀온 후, 그 날도 너무 힘들어하셨는데.. 그 다음날부터 매일 1kg씩 체중이 감량 하시고, 더이상의 섭취가 어려웠습니다.
황달도 더 심해지시고.. 몸이 안따라주니 마음도 안따라오기 시작했어요. 오죽하면 저에게도 짜증도 내고 예민하게 굴고.. 간병이 지속되니 저도 너덜너덜해진 마음에 가끔씩 욱하고 속상했지만 꾹 참았습니다.
매일 같이 차려놓은 밥상에서 두숟가락 간신히 먹고 먼저 들어간 이후 혼자 남아 밥을 먹으면서 숨 죽여 울고, 장보러 가거나 혼자 남은 시간동안 울었습니다.
적어도 아빠 앞에선 울지 않겠다 다짐 했으니까요.
병원은 죽어도 싫다던 아버지가 그 상태로 또 일주일이 지난 후, 근처 병원에 가자고 했습니다.
더 이상 집에서는 거동도, 섭취도 어렵고 아버지도 조금이라도 기력 회복을 해야겠는지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서울을 가도 치료는 어려우니, 당장 밥을 못 먹고, 잠을 못자고, 기본적인 것 조차 힘든 지금 상황에서는 벗어나고자 병원을 다시 찾았습니다.
아산병원에서 받은 요양급여 회송서를 갖구요. 이 전에 아산병원 가기전에 왔던 병원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진료 봐주셨던 교수님으로 재 진료 받았구요. 진료 당일 아버지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최근 상태를 전부 지켜봤으니, 병원을 가는 게 안심되면서도 전날부터 또 어떤 불행한 얘기가 나올까 두려웠습니다. 선생님은 다시 찾은 저희의 진단서 내용을 보시고 굉장히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아버지를 내 보내고 여쭤봤습니다. 아산 병원에서 6개월 정도 선고 받았는데, 이 상태로 차후가 어떻냐고. 선생님은 진행 속도가 너무 빨라 보이고, 외관상으로도 저번에 방문 했을 때보다 황달이 너무 심해진 게 보이며 이상태로는 절반도 힘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한동안 눈물이 점점 줄었는데, 설마설마했던 제 예상이 확신이 되어 돌아오니 또 눈물이 났습니다. 서울에서도 아마 들으셨겠지만 방법이 없으니 여기서 일시적인 고통을 줄이고 조금이나마 회복을 하는 방향으로 입원하자고 권유해주셨고 그렇게 입원을 했습니다.
기력이 없고, 수치가 나빴지만, 불행 중 다행인 건 고통이 없으시다는 거 였습니다. 그런데 매일 같이 수액 치료를 받음에도 수치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회진 할 때 마다 듣고, 연명술에 대한 얘기.. 그리고 다음주에도 수치가 계속 올라가면 수액치료가 어려워 투석치료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 더 이상은 6개월이니 1달이니, 기간의 개념과 무관하게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투석치료에 들어가면 지금보다 더 고비가 시작될 거란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나빠지고, 이틀전부터는 숨을 쉬거나 움직일 때마다 가슴 통증도 호소하시고, 섭취가 어렵고 매일 누워있으니 어지럼증도 호소하십니다.
저 역시도 밥을 먹지도, 잠을 잘 수도 없고, 간이 침대에 온 몸이 끊어질 것 같지만 살아계심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지금에 감사합니다. 이 전에 작은 희망과 기대가 있을 때는 끊임없이 같이 사랑하고 싶고, 대답을 듣고 싶었지만 지금은 말해주지 않아도, 제가 끊임 없이 얘기합니다.
일방적으로라도, 말하는 것 조차 힘들어하는 아빠를 보면서 지금은 저라도 끊임없이 사랑한다고 얘기하고 웃어주려 노력합니다. 매일매일이 감사하지만,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습니다. 오늘같은 상태는 오늘이 마지막임을 알기에, 내일은 더 안좋은 상태가 찾아온다는 사실이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풍경을 봐도, 지나가는 사람들만 봐도, 나 빼고 다 문제없이 돌아가는 세상을 느끼면 끊임없이 지옥같아 Sns도 지웠습니다. 이 고통을 아버지와 제가 왜 하필 그런 말도 안되는 확률의 병이 와서 우리를 괴롭히나 싶어 매일 매일 지옥같습니다. 그치만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동안은 버티려고 노력합니다.. 처음에 선고 받았을 때는, 아빠가 아닌 아빠가 없는 제 삶이 너무 무서웠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내가 아닌 아빠가 너무 안타깝고 미어집니다. 평생을 저만 보고 살아왔고, 저 하나 말고 아무것도 없이 산 사람인데. 누릴 수도 누리고자 하지도 않은 사람이고, 저 역시도 아빠의 존재 하나로 이런 저런 일들을 극복하고 버텨왔는데 그 하나 마저 이렇게 서둘러 데려간다니까 너무 원망스럽습니다 ..
삶이 이런데 제가 어떻게 종교를 가지겠습니까. 신이 있다면 악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만나면 제발 그냥 살려달라고 빌고싶기도 합니다. 남은 시간동안 끊임없이 사랑하려 했는데 사랑할 시간도 여유롭지 않네요. 아버지가 어느 순간부터 저를 눈에 담지도 않고, 짜증부려도 .. 오죽하면 저럴까 싶어 더 마음이 안좋습니다.
살았으면 좋겠고.. 살고싶습니다. 왜 이렇게 녹록치 않을까요. 죄짓고 뉴스까지 나올 정도로 남의 피눈물 빼는 새끼들은 잘 사는 것 같은데.. 왜 세상이 이럴까요.
그래도 버텨야 합니다.
오늘은 친한 동생이 써온 편지를 읽어드렸습니다. 큰 반응은 없었지만 좋아하셨습니다..
칼륨 수치가 많이 높아져 연명술에 대한 얘기를 들고 나서는 간이 침대를 딱 붙여 손을 잡고 잡니다. 맥박 확인을 하려구요. 골반이 짓눌려 너무 아프지만 아빠의 피부가 닿아있어 안심이 됩니다. 지금도 잘 자고 있는 아빠를 앞에 두고 글을 씁니다.
이런 상황이 저 뿐만 아니라는 걸 압니다.. 다들 너무 고통스럽고 힘드시겠지만, 끊임없이 사랑을 말해주세요.
버티고 버티고 버팁시다 . 들으려 하지말고, 끊임없이 말하겠습니다.
정보 얻으려고 카페에 처음 가입하고 글을 썼는데, 관심과 걱정, 어떻게단 정보를 주시고 응원을 주시는 댓글에 근황도 전하고 같이 힘내고자 글을 씁니다..
내일도 지옥같은 하루겠지만, 버티고 웃고, 사랑하겠습니다.
아빠와 남은 시간을 기록하려고 산 미니 캠입니다.
그래도 아빠가 잠들고 나서 정신없어서 짧게나마 기록한 동영상들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웃습니다. 다들 사진말고, 동영상으로 표정과 움직임, 목소리, 숨소리를 많이 담아두세요.
죽을 힘을 다해 버티고 최선을 다 해봐요 우리.
요즘은 희망적인 말보다는, 아주 현실적인 말들이 많이 위로가 되고 와닿습니다.
최근 보면서 힘냈던 글 첨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