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자기 주장 확실하고 에너지 넘쳐서 키우기 힘들 뿐 아니라 늘 저의 뒷목을 잡게 했던 첫째는 삼십 년 후에 이렇게 자랍니다. 여전히 개성 뚜렷한 존재감으로 집안 분위기를 뒤흔들며 카리스마 철철 넘치는 첫째는 자신의 재능과 끼를 이용해 그걸 팔아서 돈을 버는 희한한 직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건선 치유를 위한 자연식물식 식습관 코칭이라는 길다란 설명을 해야 하는 일이지만 문제는 재택 근무를 하고 화려한 수식어에 비해 수입이 일정하지 않아 서른이 지났지만 독립을 하지 못하고 부모 등에 빨대를 꽂는 캥거루족이라는 사실입니다.
첫째가 점심을 준비하면 저는 저녁을 차리는 것으로 합의를 봤는데 대신 식재료비는 제가 내는 걸로 해서 한 달 식비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딸이 자연식물식 요리 지도자 과정을 수료하고 나서 저희 집 식탁은 천연색의 온갖 채소들로 아름답고 화려한 모양으로 차려졌어요. 갈수록 요리 실력이 늘어서 제법 먹을만한 음식을 내놓게 되었지요. 워낙 하나에 꽂히면 끝장을 보는 첫째라 요리 선생님의 문하생으로 지명되어 오늘도 수업 보조를 하러 나간 덕분에 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음식에 자신감이 붙은 첫째는 집에서 딱히 하는 일 없이 지내는 제게 어디 갈 데 있으면 다녀 오라고 등을 떠밀어 자의반 타의반으로 울산에 있는 여동생 집에 한 달 예정으로 다녀왔습니다.
서울의 한파와 미세 먼지와 빙판길이 싫어서 다녀온 울산은 날씨로만 본다면 지상낙원이었어요. 따스하지 하늘 파랗지 눈구경은 십 년 동안 못 해본 곳이라 지내기엔 최고였어요. 서울의 칼바람이 뺨을 때린다면 남쪽은 따뜻한 봄바람이 부드럽게 스칩니다.
여동생이 피티 받으라고 헬스 센터를 알아봐줘서 십 회 수업도 받으며 3주 간 지내다 왔어요. 건선이 심해지는 건조한 겨울이 되자 첫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늘어서 몹시 바빠진 첫째가 밥상 차릴 시간이 없다며 빨리 돌아오기를 요청하여 가랄 때는 언제고 서둘러 돌아오게 하네요.
첫째가 점심 메뉴로 채소찜을 해줬는데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답니다. 연근이나 당근은 김이 오른 후에 5분 정도 찌고 양배추나 브로컬리는 2분 정도 찌면 되는데 딸이 엄선한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유를 뿌려서 먹으니 그냥 마구 먹게 되는 맛이었어요.
차려주는 밥상이라 그런지 평소에 채소찜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무척 맛있었고 미리 여러가지 채소를 썰어 통에 담아 몇 개를 준비해두면 끼니마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어요. 이젠 삼십 년 경력의 주부인 저보다 요리에 대해 더 잘 알고 척척 해내는 걸 보니 역시 사람은 뭐든지 배운다는 게 중요하네요.
집에 돌아온 저는 아무 것도 없이 휑하게 비어 있던 넓은 여동생 집과 비교하니 좁고 물건이 많은 우리 집에 적응이 되지 않아 기분 나쁜 사람처럼 한동안 굳은 얼굴로 지냈어요. 식구가 많으니 잡동사니가 많을 수 밖에 없고 첫째에게 필요한 조리 도구와 식재료가 많다보니 가뜩이나 좁은 집이 더 비좁아서 살짝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돌아온 다음날, 도도브로스에서 야아츠님이 초대한 아름다운동행의 모임이 있어서 환희님과 하남검단산역에서 만나 함께 참석했어요. 갈수록 앳되어지는 마카다미아님, 톡으로만 만나 궁금했던 혜민님, 양평에서 집짓고 사시는 봄가을집님, 진정한 주부로 거듭나고 계신 범이야님, 한결같이 온화한 아밥님까지 오랜 동행의 벗들을 만나고 야아츠님이 직접 요리한 최애 메뉴를 먹으면서 즐겁게 얘기하다보니 굳었던 마음이 비로소 풀리기 시작했어요.
여러가지 요리를 만들어 주셨는데 마지막에 나온 새조개 수제비가 가장 시원하고 맛있었다고 다들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위암이던 봄가을집님과 저는 벌써 배가 부르기 시작한다고 엄살을 부려놓고 국물 한 방울까지 안 남기고 다 마셔서 조금 머쓱했네요.
이제야 하는 얘기지만 항암하던 일 년이 제 인생에서 가장 충만하고 감사했던 시기였고 그건 십 년 지기 동행 회원들이 만나면 한결같이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당시 4만 회원이던 동행에서 종횡무진 누비며 지냈어요. 수술하고 기운 없이 누워 있다가 우연히 동행에 가입하게 된 후에 동행 회원들의 사연을 보자 나도 저기에 꼭 주인공으로 끼여들고 말리라 하는 오기가 생겨서 모임이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찾아갔고 내 인생 전부의 사연도 동행에 탈탈 털어놓으며 지난 십 년을 동행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살았습니다.
저를 가끔 힘들게 했던 첫째의 얘기도 동행에 얼마나 적나라하게 털어놨던지 지금은 찾아서 삭제했을 정도였는데 그런 딸이 자라서 자기 갈 길을 찾아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게 되네요. 저의 이룰 수 없는 꿈이었던 책 출간도 계약하는 걸 보며 기쁘기도 하지만 첫째가 월세를 낼 수 있을 만큼 돈을 벌어서 독립을 해준다면 제 인생에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