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말기에 뼈전이까지 오셨습니다...나이도 많으시고 수술은 불가하셔서 방사선 치료만 하시고 진통제로 사셨습니다 저도 암에 걸린거 아시고 충격받으셔서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받고 깨어나셨지만 그후 요양병원에 계속 있었습니다.
저 가까이 있는 요양병원에 모셔와 마음은 편했지만 아버지는 매일 고향에 가고싶다고 집에 데려달라 하셨습니다... 치매도 오셨다하셔서 하루종일 전화오는 아버지를 어쩌면 저는 귀찮다고 생각도 했습니다 너무 못났습니다 돌아가시고 나니 죄송스럽고 너무 아빠가 보고싶어요..
아빠는 자신이 대소변도 못가리자 그모습을 제게 보여주기 싫어서 처음으로 화내며 가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면회때 제 털모자를 벗기며 "우리딸 머리 많이 자랐네" 이말이 마지막이였습니다. 아빠는 제머리가 걱정이였나봅니다 저는 아빠한테 죄를 지었습니다. 면회도 자주 안가고 빵이랑 간식만 넣고 나오기만 했었으니깐요. 변명이지만 아빠를 볼자신이 없었습니다 보면 무너졌습니다 아빠를 보고온날은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하는 말들이 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빠가 너무 보고싶습니다 이제 보내드린지 3일째인데 아빠는 꿈에 나타나지 않고 눈을뜨면 아빠 형상이 보입니다
임종하기전 호명반응을 하지않는다 하시며 간호사선생님께서 저를 부르셨고 저는 마지막아빠를 보았습니다 아빠는 그렇게 제가 아빠라고 백번 수백번 불러도 눈물만 흘리다 가셨습니다. 입관할때 아빠한테 처음으로 사랑한다 말했습니다 제기억으로 처음이었습니다. 늦둥이고 저를 너무 이뻐하고 사랑했습니다 어릴적부터 아빠랑 단둘이서만 살았기에 저도 아빠를 의지했었나봅니다. 아직 아빠한테 해줄게 많은데 우리아빠는 제가 사준 전기장판도 한번 못쓰고 가셨습니다. 제가 처음 돈벌어 계량한복을 사줬는데 10만원도 안하는 옷을입고 시골에 돌아다니며 딸이 사줬다고 자랑하셨던 아빠가 계속 생각납니다 그후 계랑한복만 사다주었는데 두세개 빼고 고이접어서 입지도 않고 새것 그대로 놔둔것이 다반사였습니다. 아빠가 본인은 나이가 많다고 시골 어른들은 이해 못할수도 있다고 아빠한테 존댓말해라, 아버지라 불러라 하셨을때도, 응 알았어 해놓고 아빠!! 이러면 왜 우리딸? 이랬던 우리아빠...
그냥 다 눈물이 납니다. 마지막까지 농협에 500만원 뽑아서 병원비해라 그말을 했던 아빠... 치매라 생각하고 기초수급자인 아빠가 무슨 돈있다고 하고 생각도 안했는데 아빠물건 정리하는데 만기환급형 적금보험을 들어놓으셨고 제앞으로 500만원 환급이 된다합니다... 장례비도 아빠가 그동안 친구,친척들 경조사 다챙기셔서 저는 가족도 없는지 알았는데 제가 모르는 친인척분들이 모두와서 같이 도와주셨고 장례비도 어려움없이되었고 모든것이 아빠가 미리 다해놓은거 같아 가슴이 찢어질듯이 아픕니다. 다시 아빠로 나타나면 진짜 말도 이쁘게하고 말잘듣는 딸되겠다고 대신 그때는 늦둥이말고 일찍만나자고 말했지만 아빠를 다시는 볼수도없고 아빠랑 같이 손 한번 안잡았지만 저만 보면 웃는 아빠.. 아빠만 보면 걱정뿐이였던 잔소리대마왕딸..
저는 아빠를 어떻게 보내줘야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빠가 너무 보고싶고 늙으신 우리아빠 하늘길도 못찾고 헤메고 못걸어다닐까봐 마음이 너무 아프고 아빠가 언제 제게 꿈에라도 나타나줄지 너무보고싶어요 아빠가 너무 보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