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용산 가족공원 - 이정하의 목련

미카엘2015ㅣ설본
2024.03.25 15:21 | 조회 218

목련

이정하

당신은 내게

만나자마자 이별부터 가르쳤지요

잎이 돋아나기도 전에

꽃이 지고 마는 목련처럼

당신은 내게

사랑의 기쁨보다 사랑의 고통을

먼저 알게 했지요

며칠간 한껏 아름답다가

끝내 속절없이 떨어지고야 말

저 목련꽃

겨우 알 만했는데

이제사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

당신은 어느새 저만치 가버렸네요

그렇게 훌쩍 떠나고 없네요

토요일 현충원에 들렀을 때 아직 꽃이 피지 않아 조금은 실망하였던 터라 다음날 용산가족공원에 갔을 때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하루 사이에 천지개벽을 한 듯 꽃이 만개를 했더군요. 특히 목련은 이미 절정을 맞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활짝 핀 목련을 보면서 만나자 이별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것은 목련이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목련은 나무(木)에 피는 연(蓮) 꽃이라는 뜻으로 나뭇가지에 연꽃이 붙어 있으니 그 무게 때문에 오래 매달려 있지를 못하고 땅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뉴턴이 좀 더 감성적인 사람이었더라면 어쩌면 목련꽃의 낙화를 보고 중력을 발견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어제 교회 갔다가 지하철로 이촌역에 내려 동부이촌동 시장에서 점심 먹은 후 중앙국립박물관을 시작으로 용산가족공원과 커플들의 인증 사진 핫스팟인 용산 반환부지공원까지 돌고 나니 무려 이만 보 넘게 걸어 다녔더군요. 그런데 그다지 피곤하지 않았던 이유가 용산가족공원 안에 맨발로 걷는 황톳길을 걸은 후 개운하게 발을 씻었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더불어 동부이촌동은 동네 사람 상대로 장사를 하기 때문에 일요일에도 문을 연 맛집이 많아 식사도 훌륭했고 포장해서 공원에서 맛본 팥빙수(동빙고)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그런데 나이 탓인지 목련을 보며 일 년 만에 재회한 기쁨은 잠깐이었고 곧이어 이별의 아픔이 떠올라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내게 만나자마자 이별부터 가르쳤지요 잎이 돋아나기도 전에 꽃이 지고 마는 목련처럼’라는 이정하 시인의 말은 참으로 정곡을 찌르는 말이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겨우 알만 했는데 이제사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 당신은 어느새 저만치 가버렸네요 그렇게 훌쩍 떠나고 없네요’라는 시구에서 말하는 당신은 목련 대신 인생이나 청춘이라는 단어를 넣어도 별반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목련을 보며 마음이 아련해지고 애잔해진 이유는 목련이 그렇듯 내 인생의 낙화도 그리 멀지 않았음을 어렴풋이 알기 때문이겠지요. 목련이 지기 전에 부지런히 사진에 담아 두어야겠습니다. 그것도 부질없는 짓인 줄 알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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