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일상(feat. 사춘기와 갱년기)

야아츠lYaatsl위본
2024.04.15 20:04 | 조회 1.8k

주말을 맞아 집에 돌아온 중3 아들은 늘 예민합니다. 조금만 건드려도 일주일간 학교에서, 기숙사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쏟아내기 일쑤입니다. 이번 주는 중간고사 직전이라 그런지 날카롭기가 극에 달했습니다. 참다못한 아내와 아이의 기싸움 한판이 시작됩니다.

성경에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라는 구절 몰라? 엄마는 왜 자꾸 나를 화나게 해?. 너는 성경에 "부모에게 순종하라"라는 구절 안들어봤어? 어디 엄마한테 언성을 높여?

엄마한테 버릇없게 군다며 선제 포문을 연 아내에 맞서, 자기가 소장하려고 둔 책들을 당근했다며 아들이 맞받아 칩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저는 책을 당근했다는 말에, 무슨 책을 당근했냐 물었고, 그 책이 제가 어렵게 구해온 한정판이었다는 사실에 제 입에서도 사자후가 터져 나왔네요. 졸지에 아들과 제가 한 편이 되어 아내와 싸우는 형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에게 기념이 되라고 보스턴 하버드쿱에서 사온 하버드 버건디 맨투맨, 후디, 볼캡까지 당근해 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나고 말았네요.

미니멀라이즈를 실천하기 위해 그랬다. 책장과 옷장에 수납할 공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변명같은 반박을 하는 아내는, 방 2개와 알파룸 2개를 독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알파룸 2개 중 하나는 안방보다 큽니다. 방 4개를 꽉꽉 채워 독점하고 거실의 일부까지 자기 물건으로 알박고 있으면서 미니멀라이즈를 이야기하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결국 본인 방에 들어가 문을 잠궈버린 아내의 퇴각으로, 이번 주 사춘기와 갱년기의 대전은 사춘기의 완승으로 끝이나나 했는데.. 자기 시험공부하는데 방해되니 엄마, 아빠 다 나가서 놀라는 아들의 요구에 강아지와 함께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올들어 최고기온인 날 땡볕에 쫓겨나 4km 산책하고 나니 사람도 기진맥진, 강아지도 기진맥진... 몸에 힘 빠지니 아내와도 자연스레 화해... 아들의 노림수였을까요?아내에게 성경에서 "남편 대하기를 하나님 대하듯 하라"라는 말이 있어라고 나즈막히 이야기 했더니, "아내를 사랑하고 괴롭게 하지말라"라는 성경구절이 있어 라며 응수합니다. 말로 못당합니다. 그런데 당근하고 받은 돈은 응당 저에게 돌여줘야 하는거 아닌가 싶네요 ㅠㅠ

우리집 사랑이도 이제 10살 노견이 되었습니다. 털갈이 중이라 매일 지 몸만한 털뭉치를 뿜어내는데 치와와는 단모종이라 그 털이 옷에 박혀 골치가 아픕니다. 강제 케이지 행 ㅠㅠ. 이 놈이 말귀도 잘 알아듣고 똘똘한데, 조금만 섭섭하게 하면 복수를 합니다. 일부러 소변을 안가리거나 배변패드를 다 물어뜯어 놓거나, 팬트리를 헤집거나.. 팬트리에 두 번이나 난입해 쵸콜릿을 뜯어먹는 바람에 응급실도 두 번이나 다녀왔더랬죠. 피같은 내돈 ㅠㅠ, 출근할 때나 퇴근할 때 쓰담쓰담 안해주면 아주 동네 떠나가라 목놓아 울어요. 관종같은 놈.

일요일 저녁, 아들을 다시 기숙사에 보내고 아들 방에 들어가 봅니다. 침구도 정돈해 주고, 무슨 책을 보는지 살펴보기도 하고. 개학하면서 읽기 시작한 넛지를 완독하고 조지오웰의 1984를 읽고 있네요. 언제 질문이 훅 들어올지 모르니 밑천 들어나기 전에 미리 읽어야 겠습니다. 범이야님 처럼 훌륭한 아빠가 되려면 미리미리 공부해 둬야 그나마 아빠의 권위를 유지할 수 있을테니까요.

빈 침대, 아들의 체취가 남아있는 공간에 있다보니, 그 잠깐사이에 아들이 그립습니다.일주일에 얼굴 마주하는 시간이 고작 10시간 남짓인데 그 시간마저 투닥거리느라 허비하고 말았네요. 어린 나이에 기숙사생활 하는게 쉽지 않을테고, 24시간 사춘기 아이들끼리 부대끼는 것도 힘든 일일텐데.. 토닥여 주지못해, 위로와 격려를 전하지 못해 미안하고 아쉽습니다. 이번 주에 시험이 끝나니 금융치료라도 해줘야 겠습니다.

투병하면서, 새벽마다 "아들 결혼할 때, 건강한 모습으로 혼주석에 있고싶습니다" 라는 기도를 드리곤 했습니다. 이젠 그 기도의 응답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느낌이네요. 고딩엄빠처럼 아들이 사고쳐주면 그 시기는 더 빨라질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대학에 입학하면 집을 떠날테고 고등학교도 목표로 하는 곳에 합격한다면 한 달에 한 번 얼굴보는 것도 힘들어 질텐데, 주어진 시간에 조금 더 든든한 아빠가 되어주도록 마음써야 겠습니다.

단상에 올라 수 백명 앞에서 인사하는 아들을 보니 대견하고 뿌듯합니다. 힘들었던 투병생활을 견디고 무사히 사회복귀 하도록 힘을 준 아들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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