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에 돌아가신 아버지 묻어드린지 한달...
만 5주가 지났습니다.
참 염치가 없게도 제가 동행님께 도움드리는 일은 많이 없었습니다.
직장암 초기로 진단받으신 우리 아버지.. 돌아가시기 한달 반 전만 해도 무난히 수술받고 건강한 일상생활 하실 지금 즈음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 하고 있었거든요.
참 운도 없으시고 억울하시게도 간전이를 해도 하필 다발성으로 전이되셔가지고..지금은 하늘에 계시지만 말이죠..
너무 당연하게 나으시고 평소처럼 강한 아버지로 돌아와서 집을 지키실줄 알고 동행이란 카페의 존재도 몰랐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시기 한달전부터 부랴부랴 암관련 정보 찾아보면서 이곳을 알게되고.. 겨우겨우 글쓸 자격을 획득했을땐 이미 임종이 임박한 상황인지라
당혹감과 억울함에 동행분들 도움되실만한 정보공유는 커녕.. 하소연을 담은 절규의 글밖에 남기질 못했었습니다...
이제서야 다른 동행분들의 상황이 궁금해지고 걱정의 마음이 듭니다..
제 나이가 올해 36살입니다.. 가정마다 다르겠지만 아버지를 여의기엔 제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친한 친구의 아버지도 저희 아버지를 따라가실수 있다는..저희집 비보 한달전과 똑같은 상황을 말하며 절규하는 친구의 전화 목소리로 소식을 들으며..하늘이 참 너무하구나...싶은 생각이 참 많이 듭니다...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한달동안 참 바쁘게 살았습니다.
일단 직장과 독립해서 살던 집을 정리해서 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본가로 돌아왔구요.
크진 않지만 혼자서 청춘바쳐 일궈오신 공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독립도 아버지와의 다툼으로 시작된거였는데..참..
어찌됬든 어릴적 투정부려 배우고 돌렸던 기계를 이젠 제가 주도적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일할땐 그렇게 싫었는데... 그 경험이 이렇게 제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가업을 잇게되서 다행인 사실로 바뀔지 몰랐네요
공장일만 아니면 친구같은 최고의 아버지였기 때문에 상당히 오랜시간을 아버지를 보내드리느랴 눈물로 지새울줄 알았습니다만...
장례가 끝나고 바로 다음날부터 발주를 받는 바람에
아버지가 일했던 흔적을 찾아가며 일하느랴 어느새 눈물이 쏙 들어갔습니다.
다른 재산은 몰라도 사업자는 빠르게 상속받아야 되는 사정에 납품까지 겹쳐서 새벽부터 공장 문을 여느랴..
그렇게 하루에 4시간정도만 겨우 잘수 있던 바쁜 한달이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바빠서..잠시 방황했지만 아버지께 배운 기술을 기억 하고 있어서..참 다행스러운 한달을 보냈습니다.
아버지의 흔적을 더듬어가며 일하다보니..구석구석 못난 아들이 돕지 않던 탓에 혼자 하셨을 상상이 들면 눈시울이 잠시 붉어지지만..그럭저럭 묵묵히 기계를 돌리며 저녁에 어머니 손잡고 퇴근하며 저녁을 차려먹는 ..그런 무난한 한달을 보냈습니다.
매주 일요일마다 혼자서 아버지 모신 산소로 좋아하시던 소주 한병에 육포랑 짱구과자 한봉지 사가서
한잔은 아버지 비석에, 한잔은 제 입에 털어넣으며
마주 앉아있을 아버지를 상상하고 원망과 그리움에 눈물 흘린것 밖에 없네요.
생각보다 씩씩하게 아버지 없는 첫 한달을 보냈습니다.
이정도면 무난하게 당신의 뒤를 이은 아들을 하늘에서 대견해 하실까..싶기도 하고..
진작에 그렇게 공장을 잘 운영할 수 있었으면 진작에 돌아와서 아빠랑 같이 일하지 그랬냐.. 타박하실꺼 같기도 하고..
그럭저럭 잘 지낸 한달이었습니다.
아버지 없는 삶..생각보단 묵묵히 살아지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