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현충원 - 정호승 시인의 <아버지의 나이>

미카엘2015ㅣ설본
2024.05.10 17:40 | 조회 162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를 줄도 알게 되었다

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절벽을 휘감아 돌 때가

가장 찬란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 질 무렵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

내 이름을 한 번씩 불러보셨는지도 알게 되었다

정호승 시인의 <아버지의 나이>

예전에는 자주 현충원에 들러 호젓하게 산책을 즐겼는데 요즘에는 다닐 곳이 많아져서 조금은 소원해졌습니다. 오랜만에 들린 현충원은 화려한 꽃들은 보이지 않지만 녹음이 어찌나 우거졌는지 오래 머물고 있으면 시력이 좋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눈이 시원해집니다.

구석에는 찔레꽃이 만개하여 그 향기가 코를 찌르고 독일 국화로 알려진 수레국화의 모습도 간간이 보입니다. 연못 주변으로는 노란 꽃창포와 보라색 붓꽃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겨울을 빼고는 어느 계절이든 꽃이 없는 때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겨울에도 눈이 내리면 눈꽃이 피니 정말 일 년 내내 꽃이 떨어지지 않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를 읽으니 말기 암으로 자리보전하고 누우셔서 어쩔 수 없이 지저귀를 차셨던 아버지가 목욕하러 갈 때 내 몸에 의지한 채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시던 아버지의 눈빛이 문득 떠오르고 내 이름을 부르시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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