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뉴키즈 온 더 블록에서 조경가 정영선이라는 분이 나오셨습니다. 팔십이 넘으셨는데도 현역으로 일하시는 분으로 우리나라 조경가 1세대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분의 작품이 소개되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답니다. 선유도 공원과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 그리고 아시아 선수촌 공원이 그분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선유도와 여의도 샛강은 자출 하면서 수시로 들락거리는 곳이고 아시아 선수촌 공원은 주일 교회 갈 때마다 지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분의 손길 덕분에 내가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음을 이제야 알고 나니 얼마나고마운 마음이 들던지요. 특히 여의도 샛강의 경우 습지를 주차장으로 만들 계획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소식을 듣고 화들짝 놀라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물러주자고 관계자들을 간곡하게 설득하여 지금의 아름다운 생태공원으로 남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의도를 지날 때 샛강과 둔치 길이 나뉘는데 둔치 길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늘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샛강으로 접어들면 갑자기 원시림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다시는 사람들도 적고 나무가 우겨져 그늘이 지기 때문에 서늘하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한 묘한 기분이 드는 곳입니다. 워낙 사람이 적어 늦은 밤에 자전거를 타고 갈 때 달이라도 휘영청 떠있으면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듯한 착각이 드는 곳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무더운 여름에 우거진 나무그늘 아래를 달리고 있으면 자전거 핸들에서 손을 떼고 두 팔을 양편으로 뻗친 채 타이타닉의 한 장면을 흉내 내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구치기도 합니다. 사실 몇 번을 할까 말까 고민한 적이 있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두 손놓고 폼 잡으면서 탄 적도 있었으니까요.
선유도 공원 입구에서 저는 흐드러지게 핀 작약을 만났고 이름이 특이한 댕강 나무도 만났으며 수련이 피기 시작한 것도 알았습니다. 역광으로 빛을 받으면 더 신비한 기운이 느껴지는 팽나무와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 모든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 조경가 정영선 한사람의 선견지명때문이라고 하니 한 명의 지혜자의 힘이 이렇게 크구나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나저나 방송 때문인지 오늘은 아마추어 사진사들이 많이 와 계시더군요. 제가 오늘 선유도에서 만난 꽃들과 정영선 조경가께서 관계자들을 설득할 때 인용한 시를 함께 보내드립니다. 즐감하세요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