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드라마나 영화나 책이나 만화를 보면 몰입도 잘 하고 울기도 잘 하지만 제 실생활에서는 남편이 매말랐다, 라고 말할 정도로 감정 표현이 격하지 않은 편입니다.
그래서 2년 전 처음 암 4기 진단을 받고 지금까지 오면서도 크게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고 잘 버텨온 것 같아요.
가족들이나 지인들이 제가 투병생활을 잘 버텨온게 긍정적이고 강인한 성격 때문이라고 다들 말하거든요.
근데 겉으로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지 제 마음 속은 썩어들어가고 있나봐요.
어제 정말 사소한 것으로 터져서 혼자 화장실에서 문 걸어잠그고 한참 동안 펑펑 울었네요.
간과 난소 두군데로 전이된 수술 불가 4기 대장암 진단 받고, 1년 항암 후에 정말 운 좋게 수술을 하고 딱 1년이 됐어요.
3개월에 한번씩 찍는 CT도 늘 깨끗하고 2달에 한번씩 검사하는 종양표지자 수치도 늘 2미만으로 찍힌 결과지를 보면서 마치 제가 완치라도 된양 착각했나봐요.
지난번 CT 결과를 이메일로 받았는데 폐에 결절이 보인다고 써있네요.
폐 전이는 없었지만 처음 암 진단을 받게 된 계기가 폐에 흉수가 찼기 때문이라 의사들이 늘 폐 걱정을 하고 있어요.
막상 폐에 결절이 보이니 정밀 검사를 요한다는 결과를 받으니 가슴이 쿵 내려앉고 1년간 아무렇지 않은척 포장했던 제 일상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나봐요.
내일 의사를 만나는데 의사 입으로 얘기를 듣기 전에 걱정시키기 싫어서 가족들에게는 얘기를 안 했어요.
저 처음 아프고 투병하는 동안에는 그렇게 애틋해하던 가족들도 제가 이제 보통 사람처럼 다시 하고 그러니 다 나았다 싶은 것 같고요.
뭐 저도 그러길 바래요, 아내 엄마 아프다고 온 가족이 매일 슬퍼하고 걱정만 하면서 어떻게 살아요.
근데 정작 저는 매일매일이 걱정이에요.
나 아파서 걱정이 아니라 내가 다시 아프면 남편은 어쩌나, 애들은 어쩌나.
아픈 동안 엉망이었던 집안이며, 1년 넘게 투병하면서 망가진 집안 경제상황도 이제야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데.
우리 집안 모든 돌아가는 건 내 손이 닿아 있는데 내가 다시 아프면, 내가 죽으면 그걸 다 어쩌나.
도대체 난 이렇게 아프면서 왜 내 몸 아픈 것보다 다른 걱정이 태산인가.
지겹다, 너무 지겹다.
어제 별 것도 아닌 일로 저한테 짜증내는 가족들을 상대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면서 복받치더라고요.
그냥 확 죽으면 이런 걱정도 안 해도 될텐데.
죽으면 다 끝인데 난 뭐하자고 나 죽은 후까지 걱정하고 있나, 산 사람은 다 살아질텐데.
가족이고 애들이고 없이 혼자였으면 아파도 이런 걱정까지 안할텐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펑펑 울고 나니까 속이 좀 시원하더라고요.
내 속 시끄러운거 어떻게 알고 점심 먹자고 전화 온 지인을 만나서 오늘 점심 같이 먹다가 이런 저런 얘기 하면서 또 울었네요.
그래도 이런 얘기 하고, 들어줄 지인 있어서 전 참 인복있는 사람인가봐요, 그쵸?
이미 다 커버린 애들 걱정도 좀 그만 하고, 남편 걱정은 더군다나 접어두고 얼마를 더 살지 몰라도 저한테 집중하면서 살아봐야겠어요.
근데 암수술 세번이나 받으신 우리 아부지, 본인 몸보다 제 걱정이신 거 보면 부모란 눈 감는 날까지 자식 걱정을 덜을 수는 없나봐요.
울 아부지보다 제가 하루라도 더 살아야 울 아부지 마음 덜 아프실텐데요.
내일 부디 의사가 말이라도 별 거 아니라고 해줬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