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0일 저녁 9시13분
우리엄마는 4년여간의 투병을 그만 내려놓으시고 훨훨 하늘로 소천하셨습니다.
저는 임종을 지키지 못했지만, 엄마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의 목소리를 곁에서 듣고 쓸쓸하지 않게 가셨어요.
의료분쟁까지 갔을 뻔한 이전 병원의 일을 저는 끝까지 밀고 가려고 했지만, 부모님과 다른 가족들의 만류로 병원측과 말도 안되게 일단락 짓고 부터 엄마에게 그쪽 병원비 걱정하시는 엄마에게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고. 이제는 엄마 곁에서 항암과 재활에 더 신경써드려야겠다. 마음 먹었을 때 부터 엄마는 식사가 힘들어지시더라고요. 으레.. 암 환자들이
특히 투병이 길어질 수록 먹는것의 한계가 다가오고 하루에 한끼라도. 뭐라도 드시면 다행인 일을... 그냥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주말에 해당 병원 당직의사가 갑자기전화가 오더니 산소포화도가 갑자기 떨어지고 기도삽관을 이야기 하며 응급상황이라고 전화가 오더라고요.
저는 당황했죠. 우리는 이전에 담당교수님으로 부터 엄마의 여명에 관한 그 어떤것도 들은 것이 없다. 담당교수랑 전화하게 해달라... (하지만, 절대 안된다고) 저는 해외에 있는 남동생과 병원근처에 사시는 아버지에게 이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남동생이 올 수 있는 시간만이라도 엄마한테 기다려달라고 산소포화도 최대치로라도 유지해달라고 병원에 이야기하고 저 먼저 엄마 입원병원으로 달려갔죠.(엄마는 욕창 4기완치불가, 당뇨, 식음전폐, 위암 전이 림프암, 전이 척추암 다시 항암 첫번째를 진행한상태, cre와 vre인가 감염 상태.) 엄마는 이미 눈동자가 천장을 바라보고 있고 두꺼운 산소호스 호흡기를 달고계셨습니다.
뜬눈으로 엄마와 수치, 시계만을 보며 동생이 올때까지 12시간을 꼬박. 엄마곁을 지켰고. 오르락 내리락 산소수치이외의 모든 수치는 걱정할 수준이 아니였지만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면 엄마는 사경을 헤매셨던 것 같아요. 남동생이 오고 약 일 주일 정도 엄마는 산소수치 떨어지면 다시 오르시고를 두어번 하셨어요. 우리 가족은. 엄마를 보며 안이한 생각을 했죠. 남동생을 모든 휴가를 다 쓰고 한방에 해외에서 날아왔지만 엄마는 늘 우리 기대 이상이었으므로 휴가를 아끼고자 예정보다 일찍 출국하려고 그래서 남은 하루는 엄마가 살아계실 때 어쩌면 마지막으로 같이 있을 수 있는 날 이라고 생각했었던 남동생은 출국준비를 마치고 캐리어를 밀고 엄마병실로 오고 엄마는 그리고 2시간 내에 떠나셨습니다.
남동생한테 그랬죠. 너가 엄마 얼굴을 한번 보고 곁에서 간병도 해보고 그것 만으로도 너무 다행이다. 임종에 장례까지 하는 건 솔직히 국내에 있는 나도 장담할 수 없고. 너에게는 무리이고 욕심일 수 있다고. 엄마 죽음을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고 하니까 저가 돌아가라고 했죠. 그런데 엄마는 아니었나봐요.
엄마의 투병은 뭐하나 쉬운게 없었는데. 장례는 너무 허무했어요.... 너무 착착. (친구들말론 남동생과 함께해서 그런거라고) 순식간에 그리고 빠르게 진행되었어요.
아직도 실감은 안나요. 제가 엄마의 임종 후 30분내에 도착해서 엄마 눈을 뜨게 하고 나 왔다고 아직 아니라고 수치가 모두 일자였지만 잠깐 산소포화도가 88이었거든요. 엄마의 눈동자는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병원에서는 저가 오고 사망선고를 해주셨습니다. 하늘이 무너진 날입니다. 그런데 엄마는 이제 편하게 먹을 수도 있고, 걸을 수도 있고(척추전이로 못걷게 된걸 아셨을 때 세상에 살아갈.. 의미를 잃으셨음.), 예쁜 옷도 (더이상환자복이 아닌) 입을 수 있겠죠.??
거동이 어려운 3월경에 요양등급 따게 해주려고 공단에 신청해서 다 받아 두었는데. 4월 3일에 입원 ,, 5월 5일 대학병원 1층에 저와 손자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엄마의 병실 외출은 불가했었네요. 병원비 필요해서 아버지 차도 팔고. 엄마만 잠깐이라도 퇴원하면 모든게 다 준비되었는데. 엄마는 다른길을 선택하셨어요.
기록을 남겨두는건. 엄마 상황이 어땠었는지 조차 저에겐 추억이고 잊고 싶지 않은 기억 이기 때문이예요.
전 평생 그리워 할 거예요. 더 울 거고요. 엄마한테 원망의 소리도 할 꺼고 사랑한다고도 말할 꺼고. 할 거예요.
"엄마, 오늘은 동생생일이니까. 오늘은 그나라에 가 있어요. 비행기 안타고 한방에 갈 수 있으시겠네~"
다음달엔 내생일이니까 그땐 내꿈에서 노래 불러줘~
참.. 돌아가시고 장례식 장 알아보시는건 좋은데. 저는 최대한 그시간을 늦췄으면 합니다. 따듯한 엄마의 온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안치실에 보내는게 제일 마음이 아팠어요. 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