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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고 긴 여자 / 나정호
이름을 몇 개씩이나 가진 여자가 있다
어머니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아온
이 여자
도무지 용서가 안 되는 이 남자에게
가늘고 긴 손으로
스스로 백기를 들어준 여자
아무리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스피노자의 에티카 몇 쪽지 같은 여자
어머니이기도 하고
큰누나이기도 하면서
이따금 어린 누이 같은, 그러나
속으로만 강물처럼 한없이 가늘고 긴 여자
그 가늘고 긴 손으로
자기 어머님 악성 바이러스를 들고
물 건너온 철없는 여자
외딴 산길에서
봄볕에 몸 말려가는 아지랑이처럼
내게서 아른아른 멀어지는 여자
그래도 그 가늘고 긴 손을 흔들어 주며
쓰게 웃는 이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