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나를 사랑해줬던 남편의 49재가 끝이 났어요
동행이란 카페를 알고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보기도하고 남편과 비슷한 케이스를 보며
어쩌면 마음의 준비를 했는지도 모르겠네요..
남편은 2023년 9월부터 소화불량으로 병원을 다니며
11월 내시경 조직검사에도 정상
(심지어 헬리코박터균도 발견안됨..)
2024년 1월 ct결과도 정상
살이빠지고 약을 먹어도 호전이 없어 새로한 검사에서
2024년 3월 보만4형 반지세포암 위암4기 판정을 받았어요.
병명을 말해주며 평균생존기간 1년6개월이라는대..
저희 남편은 발병후 8개월만에 하늘의 별이 되었어요.
위암을 알기 전까지 회사도 잘 다니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어느다를 것 없는 평범한 가장이였는대 그 날 이후로
제 전부였던 하늘은 무너졌습니다.
귀한 막내아들로 태어나 고생 한 번 안해본 아들같은 내남편
마음약한 남편이 병에 대해 자세히 알면
너무 절망할까봐 카페 가입도 못하게하고
속 시원하게 한번도 이야기 꺼내질 못했어요.
항암하면서도 피검사 결과는 항상 좋았고
컨디션도 좋아서 우리는 젊으니까 더 잘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9월부터 끔찍한 복통이 시작되며 패치를 붙이고 진통제를
먹어도 허리통증과 위경련같이 심한 통증이 잡히지 않아
어린 아이들이 잘때 응급실에 가서 몰핀을 맞기도하고
극심한 통증에 폴대를 잡고 앉지도 서지도 누워있지도 못했던 모습에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음에 너무 미안했어요.
다발성 뼈전이와 복수가 차며 3차약 폴피리를 맞고
지방으로 전원하여 방사선치료를 하고
그때부터 급격하게 살이 빠지며 음식을 먹지 못하고
하루종일 토를 하기 시작했어요.
방사선치료를 하며 체력관리를 하기위해 들어갔던
요양병원에서 한 피검사 수치는 정말 처참했어요.
방사선 휴우증으로 알고있었는대 몸이 정말 망가지기
시작했어요. 저나트륨혈증. 고칼륨혈증 말도 안되는 수치에
당장 심장마비가 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하셨어요..
요양병원에 입원했을때 모습은 늙은 노인처럼 온몸에 살과
근육이 다 빠져 눈을 제대로 감지도 못하고 뜬채로 꾸벅꾸벅 졸거나 앉지도 눕지도 거동도 잘 하지 못하게되었어요..
마지막으로 간 응급실에서 의사가 장폐색과
신장이 망가진 것 같다며 긴급투석을 해야 할 것 같다며 정신있을때 결정하시라도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남편 앞에서 물어보시는대.. 많이 지쳤는지
'우리 이제 그만하자' 라고 말하더군요..
그때 정말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남편을 부둥켜 안고 절대 포기 안한다고 펑펑 울었어요.
남편은 눈물도 말랐는지 담담하게 자기 이야기를 했어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녹음을 했어요.
다 나으면 돈은 많이 못 벌어도 밭에 유자나무 심어서
우리둘이 3층 집 지어서 1층에 카페도 하고 2층에는
우리살고 유자도 팔고 유자청 같은거 만들어서 그렇게살자.
이렇게 이야기 한 줄 알았는대.....
녹음 다시 들어보니.. 그렇게 한번 살아보고 싶다.....
라고 이렇게 말한 걸 듣고 진짜 오열했어요...
얘들이랑 자기 영정사진 들고 신혼여행갔던 산토리니에
데려달라고.. 정말재미있겠다고.. 웃으며 말하기까지 했어요
말할 기운도 없어 대답만 하던 남편이..
이제 정말 마지막을 준비할 시간이 되었구나..
실감이 났어요.
그 날 응급실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기적적으로
크레아틴이랑 나트륨 칼륨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와서
퇴원하고 요양병원으로 돌아왔어요.
밤새 응급실에서 지쳐 남편이 가지말라고 계속 붙잡았는대 저도 너무 피곤하기도하고 사람도 많은대
오늘 하루 쉬고 내일 보면 되지 하는 마음에
누나들과 시부모님께 맡기고
내일 얘들 데리고 오겠다고 이야기하고 집에갔어요.
아침에 누나가 연락와서 남편이 밤새 잘 자고 아침에는
처음으로 밥도 먹고 토도 안했다며 걱정하지말고 오라고
이야기 듣고 한편으로 이상하기도 했지만
이제 컨디션이 돌아오는구나 싶어서 안심하고
밀린 빨래도 하고 얘들이랑 짐챙겨서 가는대
남편이 언제오냐고 누나 통해2번이나 전화를 더했네요.
(내심 가고있는대 독촉이냐며 마음속으로 짜증도 냈어요..)
병원 앞에다와가는대 어머니가 다급하게 빨리오라고
소리를 지르는대 들어가보니 남편이 의식을 잃어가며
산소호흡기를 하고있었어요..
빨리 응급실로 옮기려는대 남편이 제가 오니까 의식을 찾고
가쁜 숨을 들이마시며 제 손을 꼭 잡더라구요..
너무 힘이없어 숟가락도 못들던 사람이 저를 보더니
이름을 부르며 저를 끌어당겨 안아주었아요..
저를 많이 기다렸나봐요.. 제가 말하면 '응' 하고 대답하며
애들보고 가야지. 조금만 기다리라고..
손 발은 얼음장 처럼 차가워지고 혈압이 계속 떨어졌다
올랐다 반복하며 눈을 감으면 영영 떠날까 무서워
계속 남편을 깨웠어요..
그동안에도 혈압이 떨어진다며 다리를 들고있으라는대
허리가 아파서 고통에 온몸을 틀었어요..
그렇게 응급실로 오고 3시간 만에 남편은 멀리 떠났어요..
호스피스로 가서 처음부터 마지막을 준비했으면 어땠을까? 제가 일찍 왔더라면 얘들도 보고 이야기도 하고 갈 수 있었을텐대.. 어제 가지말고 남편 곁은 지켰더라면.
밤새 저만 찾으면서 이상한 소리를 했다는대..
제가 옆에있었더라면 섬망증상인 줄 알았을텐대...
어느하나 후회되지 않는 순간이 없었어요..
다른사람들처럼 마지막을 준비하고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거나 영상을 남기지도 못하고 저만 생각하며
하늘로 떠나버렸어요..내사랑..
예쁜 아이들을 내게 남겨준 것.
남 부럽지 않게 자상하고 좋은 아빠였다는 것
내 인생에서 아빠보다 더 나를 사랑해줬던 내편.
저는 그 사람한테 받은 것 밖에 없는대...
고맙다는 말보다 미안하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어요.
저는 이제 그 사람 몫까지 우리아이들을 지켜내야
하기때문에 계속 울고 슬퍼 할 수만 없어요..
이제 오빠가 아픔도 없는 좋은 곳으로 갔을 거라 생각해요.
너무 짧았던 투병생활이였지만 그만큼 덜 아팠다 생각하며
제 마음에 위로를 해봅니다.
어디에라도 사랑했던 내 남편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가장 위로받고 힘이 되었던 이 카페에 글을 남겨요.
투병을 하고계신 많은 분들은 건강해지셨으면 좋겠고
저 처럼 사랑하는 배우자나 가족을 잃은 분들은
너무 많은 앞일까지 걱정하며 슬퍼하시지 말고
그냥 하루하루 벼텨내보아요.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어요..
모든 분들에게 평안하고 쨍쨍한 봄날이 올 거예요..
오빠, 우리 언젠가 다시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