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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희덕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꽃과 분홍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가만히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복숭아꽃의 색은 참으로 특별하고 남다릅니다. 연한 핑크빛이라고 해야하나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봄 햇살에 기지개를 켜고 깨어난 복숭아꽃은 오묘하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하며 폭싹 속았수다의 주인공 요망진 애순을 닮은 듯합니다. 그나저나 하루 못 본 사이에 한강공원 잠원지구 작은 정원에는 복숭아꽃은 물론이요 만첩홍매에 제가 좋아하는 옥매까지 피어습니다. 어쩌면 하루 사이에 깜짝 선물처럼 이렇게 앙팡 지게 꽃을 피워냈다니 대견하고 놀랍습니다.
뭐가 그리 바빴는지 살구나무 그늘에 앉아 보지도 못했는데 꽃은 이미 다 졌고 이제 복숭아꽃이 한창이니 오늘 퇴근할 때는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저녁이 오는 소리를 들어봐야겠습니다.